대통령의 참모 이광재 의원이 본 김대중, 노무현의 '디테일'

기사 요약글

21대 국회에 귀환한 이광재 의원이 최근 <노무현이 옳았다>라는 책을 냈다. 사람들은 그에게 ‘왜 다시 노무현인가?’라고 반문하지만, 그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노무현의 근본적인 질문들이 ‘옳았다’고 말한다.

기사 내용

 

 

이광재 의원은 제17, 18, 21대 국회의원(강원 원주시갑)으로 국회의원 노무현 보좌관,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실장을 역임했다.

 

 

국회의원회관 이광재 의원 사무실 한쪽 벽면을 채운 화이트보드에는 ‘노무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이광재의 크고 작은 메모가 가득했다. '삶의 질', '1등 국가’, ‘디지털 집현전’, ‘사람답게 사는 세상, 어떤 세상인가?’ ‘우리 삶의 방식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그가 그리고 있는 세상이 활자로 펼쳐져 있었다.

 

 

Q. 곳곳에 메모가 붙어 있는데, 이 많은 내용을 다 기억하나요?

 

저만의 분류 코드가 있어요. 향후 ‘국가 흥망사’ 관련 책을 내는 것이 목표인데, 이와 관련한 10가지 키워드별로 정리합니다. 10년 넘게 기초 자료를 모아왔습니다.

 

 

Q. 보좌관과 청와대 비서관 시절 몸에 밴 습관인가 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이 큽니다.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저를 불러 “내가 너희들을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도록(웃음) 자료 분류 체계를 만들자”고 제안했죠. 말로 그치지 않고 파일링 시스템 연구소에서 분류 체계를 공부했어요. 그게 무려 20여 년 전 일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도 이를 적용했죠. 처리해야 할 국정 과제가 장관에게 가 있는지, 차관에게 있는지, 아니면 어는 부서에서 논의하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게 ‘이지원(청와대 업무 관리 시스템)’을 개발해 적용했어요. 노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는 왜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가?’를 고민했는데, 이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기록을 기초로 연구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Q. 기록하고 분류하는 습관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가장 큰 건 디테일의 힘을 키워준 것이죠. 대학에 입학한 뒤 한국로터리클럽의 서울 모 지부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야학 교사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그 클럽에는 김광균 시인, 벽산그룹 김인득 회장 등 쟁쟁한 분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을 보면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몇 가지를 발견했어요. 일단 부지런하고 시간을 굉장히 아껴 씁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대체로 독서광이거나 메모광입니다. 마지막으로 디테일에 강합니다. 그 디테일은 독서와 메모 습관 등에서 나오죠.

 

 

 

 

Q. 성공한 사람의 디테일이란 어떤 것일까요?

 

대표적 메모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을 예로 들면, 이면지를 반으로 접어 메모합니다. 왼쪽에 해야 할 일을 적고, 오른쪽에 그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 결과를 적어요. 그래서 한 일은 지우고 못한 일은 다음 과제로 삼더라고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서민적이고 투박해 보이지만 디테일에 강한 분입니다. 언젠가 화장실에 책꽂이를 설치할 때였습니다. 본인이 직접 변기에 앉아서 책을 짚었을 때 위치, 높이까지 다 확인했죠. 또 하나 예를 들면, 제가 비서관 시절 수동 타자기로 작업을 한 자료를 보더니 여백은 몇 cm 주고 간격은 몇 cm 떼고 하는 식으로 가이드를 줄 정도로 꼼꼼했죠.

 

 

Q. 참모가 좋은 피드백을 가져올 수 있도록 자시만의 방식을 분명히 갖고 있었군요.

 

노 전 대통령 지론 중 하나가 '스스로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은 지도자가 못 된다’였습니다. 당신이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때 초선 국회의원으로서 던진 신랄한 대정부 질의가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어요. 당시 DJ가 “연설은 저렇게 하는 거다”라고 했을 정도였죠. 본인이 직접 글을 썼기 때문에 국민들을 감동케 하는 연설이 나올 수 있었지요. 여기에도 디테일이 숨어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글은 굉장히 단순하고 간결합니다. 군더더기가 없어요. 문장이 긴 글을 굉장히 싫어했죠. 대신 다양한 비유를 사용했고요. DJ도 문장이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Q. <김대중 일기>를 보면 쉽고 간결한 문장이 특징이더군요.

 

과거 조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기획실장으로 있던 당시 캠프에 들른 DJ에게 연설문을 쉽고 간결하게 쓰는 비결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 DJ는 “독서도 중요한데 중학교 사회, 국민윤리 교과서를 꾸준히 읽어보라”고 추천하더군요. 중학교 교과서만큼 쉽고 간결하게 써놓은 글은 없다는 겁니다. 언어는 사색의 옷이잖아요. 자기 언어로 글을 쓸 수 있기에 두 대통령 모두 연설의 달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Q. 반대로 리더가 디테일에 강하면 참모들은 힘들었겠는데요.

 

힘들었지요(웃음). 노 전 대통령은 성격도 급해서 오늘 이야기하면 내일 관련 자료를 챙겨 보고해야 했죠. 대신 판단은 빠릅니다. 문제의 본질을 빨리 파고드는 능력이 있는 분이었죠.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누군가와 독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판단하거나 결정할 일이 있으면 해당 이슈와 관련한 찬반 진영 모두를 부릅니다. 그리고 쟁점을 분명하게 한 뒤 양쪽에 끝없이 질문하고, 논쟁이 붙으면 가만히 지켜봅니다. 그러고 나서 판단과 결정은 직접 합니다. 리더에게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죠.

 

 

Q. <노무현이 옳았다(포르체)>에서는 정치인 ‘이광재’가 그리는 세상이 보입니다. ‘이광재’가 아니라 ‘노무현’이란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이유가 있나요?

 

삶의 질을 높이는 정치,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결국 시대정신이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시대정신은 뭘까? 위대한 질문이 위대한 답을 낳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을 꺼냈죠.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청와대의 첫 설계도, 조직표를 저와 둘이서 작업했어요. 한 장짜리 조직표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단적으로 드러나 있죠. 첫째, 동북아위원회는 미·중·일· ·러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 두 번째는 지역 균형 발전, 세 번째는 디지털 경제 리더였어요. 그래서 진대제 전 장관을 영입해 3G망을 처음 깔았죠. 네 번째는 분열된 나라는 어떻게 할 것이냐? 답은 연정이었습니다.

야당과의 연정으로 분열을 끝내고 싶었던 것이죠. 이후엔 봉하마을로 내려가서, 인생이 뭐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생태주의에 관심을 두고 오리농법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고민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이지요. 사실 분열은 이전보다 심화됐고요.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의 질문, 문제를 저를 비롯해 대통령 후보로 나갈 사람도, 국민들도 다 같이 풀어보자는 의도였죠. 이제는 대통령 후보를 선출할 때 국민이 50% 정도 참여합니다. 몇몇 정치인이 킹메이커가 아니라 국민이 킹메이커인 시대입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국민이 전략가가 돼 국가 설계도를 같이 그려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가 발전합니다. 

Q. 다시 중앙 정치 무대로 복귀했는데,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매일 ‘여의도에 온 것이 잘한 일인가?’ 생각했어요. 또 하나는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하는 설계도를 기획해야겠다는 생각, 즉 단순 설계가 아닌 구체적인 정책이지요. 이 두 가지 생각으로 한 해를 보냈습니다.

 

 

 Q. ‘잘한 일인가?’라고 생각한 이유는?

 

선거 때 식당 문을 열면 코로나로 손님이 없었어요. 명함 주고 나오는 것 자체가 미안했지요. 사실 국회의원은 4년 계약직 공무원입니다. 코로나 위기에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답이 잘 안 찾아져서 고민입니다.

 

 

Q. 그럼 요즘 같은 시기에 정치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나폴레옹은 “정치인은 희망을 파는 상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희망’이란 허황된 꿈이 아니라 실현 가능하고 구체적인 것인데, 개인적으로 3개의 렌즈로 세계를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는 망원경으로 우주를 발견했고, 현미경으로 생물학의 시대를 열었어요. 우리 정치인도 세계를 보는 넓은 안목, 국민들의 작은 생활을 볼 수 있는 안목,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게 뭘까요? 3개의 당이 필요한데, 가장 먼저 식당입니다.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서당입니다. 교육 문제로, 인간은 자식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무한 투자를 합니다. 교육은 우리 사회가 붕괴되지 않도록 하는 사다리인데, 이 사다리를 하나가 아니라 놀이터의 그물사다리처럼 여러 갈래로 오를 수 있도록 만든 것이죠.

청소년뿐만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에게도 서당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지막은 경로당입니다. 인간이 노후에 외롭고 가난하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삶의 문제로 천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와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Q. 결국 정치란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를 해결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네요.

 

유럽에 갔을 때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와 내 이웃의 아픔을 해결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럼 가장 아픈 게 뭐냐? 결국 먹고사는 것과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동료 정치인들에게 GDP 지표로 평가하지 말고 ‘삶의 질 지표’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 소득, 주거, 문화라는 지표를 통해 국민들에게 평가받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국민이 전략가가 돼 설계도를 가지고 정치하자는 것입니다. 한국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설계도 없이 정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전략가가 되는 시대가 와야 정치도 더욱 발전합니다. 

 

  

 

 

Q. 현실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인데, 국민들에게 정치인을 돕는 방법을 알려준다면?

 

정책 아이디어와 후원 이렇게 두 가지를 도와주는 것이죠. 이 중 정책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은 온라인에서도 가능해요. 청와대 청원 시스템이 있는데, 청원이 어느 정도 수준에 달하면 답변을 합니다. 국회에도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입법 발의권은 없지만 청원권을 주는 겁니다. 국회의원들이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이렇게 직접민주주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 같은 내용을 박병석 국회의장에게도 제안했습니다.

 

 

Q. 포용과 실용을 중시하는 이 의원이 바라볼 때 현 구도에서 여당이 야당을 품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원 구성 당시 첫 단추가 꼬인 측면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게 당시 주영호 대표가 민주당과 합의했던 안을 받았어야 했다고 봅니다. 야당한테 바라는 건, 선거 결과는 민심입니다. 민심을 얻은 당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걸 무조건 막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물론 저희도 반성할 측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조금 더 기다렸어야 했다는 것이죠. 또한 협치 내각도 필요합니다.

 

 

Q. 현실적으로 협치 내각의 구성이 가능할까요?

 

지방선거 후에 몇 사람 이야기가 됐었지만 실현되지 못했죠. 돌아보면 결국 장관을 제안받으면 ‘저기 들어가면 우리 당에서 배신자 되는 거 아니야?’ ‘의원 빼내가기로 야당을 탄압한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선거 전 양당이 내놓은 공통 공약은 법으로 통과시켜놓자고 제안합니다. 공통으로 내놓은 정책은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것이고 현재 꼭 필요한 사안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공약 실현의 연장선상에서 전문가로 내각에 들어가니 배신자 프레임을 벗을 수 있죠. 또한 표를 얻기 위해 내세운 공약을 미리 법으로 통과시켜 당선 이후 국민들에게 딴소리, 모른 척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손해 보지 않는 정치가 되는 셈이죠.

 

 

Q. 통합의 정치를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민주당은 광화문 집회 참석자들을 어떻게 포용해야 한다고 보나요?

 

광화문 집회 때 어떤 분들이 모일까 궁금했습니다. 집회 날, 우연히 광화문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저 분도 집회에 나갔을까? 하는 사람들이 있어 계속 관찰했습니다. 서초동이나 광화문에 모인 평범한 사람들은 결국 나라가 잘됐으면 좋겠다, 공정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광화문 집회와 서초동 집회를 분열로 보지 않습니다.

 

 

  

 

Q. 현재 민주당 K-뉴딜위원회 총괄본부장이신데, 뉴딜펀드는 구체적으로 어디에 투자하는 것입니까?

 

뉴딜펀드는 3개의 펀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뉴딜 관련 기업이나 뉴딜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정책형 뉴딜펀드, 데이터센터나 재생에너지 발전 단지 등 인프라에 직접 투자하는 뉴딜 인프라 펀드, 개별 금융기관과 일반 국민을 투자자로 하는 민간 뉴딜펀드가 있습니다. 미국이 2023년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 영향을 받게 됩니다. 지금도 금리가 낮으니 투자할 곳이 없어 돈이 부동산에 몰리잖아요. 개인 자산의 70% 정도가 부동산인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국가가 전망이 밝은 뉴딜에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를 유도하고, 펀드에 투자한 국민들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줘, 다 같이 풍요로운 미래를 도모하자는 취지입니다.

 

 

Q. 펀드란 기본적으로 손실 위험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민들에게 뉴딜펀드를 추천한다면?

 

2월부터 판매하는데, 국민이라면 수익은 적더라도 안전성이 큰 정책형 펀드에 투자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른 2개의 펀드는 민간에서 운용하는데 ‘하이리스크, 하이리턴(고위험·고수익)’입니다. 세제 혜택만 줄 뿐 시장원리를 철저히 준수하죠.

 

 

Q. 마지막으로 정치인 이광재,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분열의 나라를 통합의 나라로 만드는, 그런 설계도와 플랜을 짜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기획 이인철  사진 지다영(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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