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치매에 걸리게 되셨다면? 진단부터 간병, 그리고 요양병원 입소까지 치매는 마음과의 싸움이자, 비용과의 싸움이라는 어느 며느리의 생생한 치매 간병기.
올해 90세의 시어머니는 강원도 고성의 어촌 마을로 시집와 5남매를 낳고, 40년 전 사별 후 혼자가 되셨다. 5남매 키우느라 정신없이 산 세월을 지나 자식들을 하나둘 도시로 떠나보내고 시골에서 홀로 적적한 생활을 하시던 시어머니에게 치매가 닥친 건 10년 전.
치매 10년 차 정도 되니 살가웠던 막내아들도 요즘 들어 어머님을 뵈러 가는 걸 계속 미루는 지경이 된다. 치매는 완치가 안 된다는 것도, 점점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도 여러 번 각오하고 받아들였지만 뵐 때마다 매번 새로운 충격과 상처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5명의 자식들은 지금 어머님의 치매와 싸우고 있다.
‘설마 우리 부모님이 치매?’라는 부정이 결국 치매를 키웠다
평소 자식들 일하는 데 방해될까 싶어 연락도 잘 안 하시던 어머님의 전화가 부쩍 잦아진 건 10년 전. 어머님이 80세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당시 어머님은 전화를 해서는 뜬금없이 지금 살고 있는 집 명의가 다른 사람으로 변경되지 않았는지 걱정하셨다.
자식들은 그저 어머님이 나이가 들어 걱정이 많아졌겠거니 싶어 안심시켜 드리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집을 빼앗길 것 같다는 불안은 집을 절대 뺏기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바뀌었고, 동네 이웃들에게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불안과 집착 그리고 분노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결국 어머님을 말려달라는 이웃들의 민원전화가 걸려왔다.
빨리 인정하고 빨리 치료를 시작해라
병원에 가니 치매 진단을 위해 여러 가지 검사가 진행됐다. 환자의 나이, 이름과 같은 가벼운 질문과 기억력 테스트 등이 포함된 인지기능 검사가 시작이었다. 가족들은 어머님이 치매가 아니길 바라며, 치매 증상보다 오히려 정상적인 행동을 의사에게 강조해 말했다.
질문의 난이도가 더해갔지만 어머님께서는 대답도 잘하셨는데 이때마다 우리는 마치 퀴즈 쇼를 통과하듯 기뻐했다. 의사는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말로 검사를 마쳤다. 그때 마냥 안도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하루라도 빨리 추가 검사를 통해 진단받아 치료를 시작했어야 했다. 초기 진단이 늦어진 탓인지 당시 어머님은 경증 치매를 진단받았지만 머지않아 중증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간병비부터 간병 용품까지, 5남매가 곧 치매 보험이 되다
치매 치료가 시작되었다. 사실상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는 것이 치료의 전부다. 어머님의 경우 약값으로 한 번 처방받을 때마다 10만원가량 들었다. 약값보다 중요한 건 간병비였다. 요즘은 국가와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치매 예방 프로그램과 다양한 케어 서비스가 있지만, 작은 시골 마을까지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자녀들도 흩어져 있다 보니 어머님을 옆에서 챙기면서 간병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심지어 어머님은 유독 집에 대한 집착이 심했기 때문에 치매가 진행될수록 집착이 커져 집을 떠나 치료받는 일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자식들이 할 수 있는 건 당번을 정해 일주일 분량의 음식을 가지고 주말마다 찾아뵙고, 청소와 빨래 등을 하고 돌아오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 할 수 없었다. 일주일 만에 가보면 모든 게 엉망이었다. 어머님 드시라고 갖다드린 반찬에는 곰팡이가 피기 일쑤였고, 집 안 곳곳에 먼지가 가득했다. 평생 어머님이 쓸고 닦던 집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식사만이라도 제대로 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방문요양서비스를 신청했다. 방문요양사의 비용은 담당하는 일의 범위와 업무 시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어머님의 경우 한 달 평균 12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는데 우스갯소리로 자녀 중 누군가 말했다. “우리 어머님은 치매 보험 대신에 자식을 많이 낳았구나.” 사실 요즘 다들 가입한다는 치매보험이 없어 간병비 등 비용이 모두 자식들 부담이었으나 5남매가 비용을 나눠 부담하니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그렇게 어머님은 방문요양사와 함께 자신이 그토록 아끼고 좋아하던 집에서 7년을 더 지내셨다.
요양보호사는 전문 양성기관에서 교육을 이수한 후 국가전문자격증을 취득한 전문 인력이다. 요양보호사의 서비스를 받을 때 국가 혜택을 받으려면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아야 한다. 65세 이상이거나, 치매나 뇌혈관 질환 같은 노인성 질병을 가진 65세 미만이어야 신청 가능하다. 장기 요양 정도에 따라 1~5등급으로 나뉜다.
치매 간병,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더라
‘더 이상 가정 요양이 어렵다’는 방문요양사의 통보는 처음 의사에게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보다 더 참담했다. 결국 어머님은 평생을 사신 강원도를 떠나 경기도에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비용 면에서 요양병원이 방문요양사보다 훨씬 부담이 덜했다.
장기요양급여로 건강보험공단에서 대부분을 부담하고, 본인부담금은 식사비와 간식비를 포함해 60만원 정도였으니 집에서 모실 때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비용이다. 하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치료비를 아끼기 위해 요양병원을 선택한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 부모가 먼저 요양병원에 가겠다 해도, 자식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게 된다.
어머님은 여전히 집을 떠나길 원치 않아 병원으로 모시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요양병원 생활도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목욕을 안 하시려 한다’ ‘방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한다’ ‘집에 간다고 짐 싸서 나가려 한다’ ‘다른 사람 서랍장을 열어 옷을 다 꺼낸다’ 등.
면회를 갈 때마다 증상은 급속도로 악화됐고, 평생 자식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는 이제 5남매 중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10년째, 여전히 치매와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잃어가는 기억과 기력 속에서 어머님이 자식에게 알려주시는 무겁고도 서글픈, 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깨달음이 있다. 치매는 마음과의 싸움이자 요양 비용과의 싸움이라는 것. 특히 치료비가 준비되지 않으면 모두에게 고통이 된다. 치매 예방도 열심히, 치매 보험 등으로 치료비 준비도 열심히 해야 한다. 치매는 언제나 우리 삶에 찾아올 수 있다.
요양병원은 의료법에 의해 설치된 의료기관이고, 국민건강보험에서 재원을 부담한다. 의사와 간호사가 있으며 입원 자격에 제한이 없다. 반면 요양원은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다. 노인복지법에 의해 설치된 요양 시설이라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재원을 부담하고, 장기요양등급 판정이 있어야 입소할 수 있다. 장기요양급여는 월 한도액 범위 안에서 제공되며 1등급인 경우 149만 8300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10년간 치매 환자 간병해 보니
치매 가족이 되어보니 왜 사람들이 치매 보험에 관심이 있는 지 알게 됐다. 그래서 형제들 모두 치매 보험에 가입했을 정도. 사실 치매는 몸이 아픈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치매로 인해 직접적으로 수명이 단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치매 보험은 암보험처럼 한 번의 진단금을 많이 보장 받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필요한 간병비를 매월 얼마나 오랫동안 보장받을 수 있는지 케어 비용을 따져 가입해야 한다. 그리고 수술 등의 치료로 완치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증상이 시작되면 점점 악화되는 일만 남았기 때문에 경증 치매보다는 중증 치매 보장금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기획 문수진 글 임민정(라이나생명 콘텐츠개발팀) 일러스트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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