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당신이 일일극의 복수에 빠져드는 이유

기사 요약글

<우아한 모녀>의 <위험한 약속>, <비밀의 남자>까지 저녁 8시, TV에서는 복수가 시작된다. 그리고 당신은 드라마 속 주인공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 우리들이 그 복수에 보내는 이유있는 응원.

기사 내용

 

 


저녁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까지 다 끝났을 시간, 이제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느긋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사람들은 일일드라마에 채널을 고정한다. 화면에서는 배우들이 “차은동!” 이라고 이름 세 글자를 꼭꼭 채워 부르며 서로 소리치고 있거나,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고 있거나 한다. 저녁 8시, TV에서는 복수가 벌어지고 있다.

 


저녁 8시 일일극, 복수가 주제인 이유는? 

 


아무래도 시간대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8시 즈음에 시작하는 저녁 일일극은 늘 일정 시청 층을 확보한다. 이 시간에 방영한 <위험한 약속>은 2020년 6월부터 8월의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갤럽 조사에서 계속 11위를 차지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던 소녀 차은동(박하나)이 재벌과의 갈등 때문에 감옥에 가고, 그 와중에 정의롭고 온정 넘치던 아버지 또한 살해당한다는 도입부로 관심을 끌었던 <위험한 약속>은 전형적인 복수극이다.

 

 

 

 

그 직전에 방영했던 <우아한 모녀>는 후반 시청률이 줄곧 20%를 웃돈 히트작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도 비슷한 복수극이다. 차미연(최명길)은 35년 전 제이그룹의 음모로 남편이 연구해 온 제품의 특허 기술을 빼앗겼고, 그 여파로 남편을 잃은 건 물론 아이까지 빼앗겼다. 그리하여 자신의 담당 의사였던 은하(지수원)의 딸을 유괴하여, 자신의 자식 유진(차예련)으로 키운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유진은 엄마인 미연을 도와 제이그룹에 복수하려 하지만, 자신 또한 복수의 대상인 것을 알게 되고 다시 이중의 복수심을 불태운다. <위험한 약속>의 후속작인 <비밀의 남자>도 유사한 구조로 시작한다. 어렸을 때 사고로 어린아이의 지능으로 살아가는 순수한 남자 태풍(강은탁)이 자신의 재산을 노린 사람들에 의해 배신을 당하고 모든 걸 잃은 후에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여 복수를 꾀한다는 내용이다.

 

이 시간대의 드라마는 내용만 달랐을 뿐, <왼손잡이 아내> <태양의 계절> 등 전작들도 대체로 비슷한 구조로 설계되었다. 그 구조를 보면 이렇다. 열정적이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상에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려고 힘들게 노력해왔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작은 것조차 노리는 재벌이 등장한다. 그들은 가끔 옛 연인이거나 지인으로 한때는 좋은 관계로 지냈던 사람들인 경우도 있다. 공전의 히트작 <아내의 유혹>도 방송사는 달랐지만, 이 시간대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전형적인 일일극이 복수극의 형태를 띤 건 새로운 일도 아니다.

 

 

 

 

사람들은 왜 복수극에 빠져들까?

 

 

일일극에서 주인공의 복수는 100회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우리는 왜 이 시간이면 티브이 앞에 앉을까? 우리는 왜 복수극을 좋아할까? 물론 인간이 복수극을 좋아한 건 갑자기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가장 오래된 신화에서도 복수의 이야기는 있다. 유명한 오이디푸스 비극에서도 오이디푸스는 본인도 몰랐지만,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우연히 길에서 만나 죽였으며 어머니와 결혼했다. 그렇지만 천륜을 어긴 죄를 저질렀기에 그에 대한 죗값을 받았다.

 

복수란 정의와 세계의 질서가 돌려지는 과정이다. 성경에서는 복수는 신의 일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이야기 속에서는 스스로 복수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갖는 방식이고, 이럴 때만 우리는 내적인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신이 재난이나 병으로 악한 자를 벌할 수 있기를 기다릴 때까지, 인간은 그렇게 인내심이 없다. 당한 자가 갚아주는 스토리가 훨씬 긴장감 넘친다. 어렸을 때 봤던 시드니 셸던의 미국 미니 시리즈 <내일이 오면> 같은 스토리가 몇십 년이 된 지금에서도 여전히 인기 있는 이유일 것이다.

 

 

 

한국의 일일극은 좀 더 고정적인 플롯에 따라 진행된다. 마치 틀에 찍어낸 듯 비슷한 형태로 간다. 흙수저와 금수저의 대립, 거기에서 복수를 꾀하는 자의 변신, 그리고 악행을 저지른 금수저들의 처절한 몰락. 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이는 대중 심리의 일면을 대표한다. 많은 사람은 실제 경제적 계급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을 서민의 입장에 놓고 나를 괴롭히는 더 힘센 집단의 횡포에 불안을 느낀다. 재벌들이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해 서민의 것을 빼앗아가는 등, 악을 저지른다는 전제에는 그렇게 큰 의심을 할 이유가 없다. 거기에 더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가족을 잃거나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한다. 복수의 요건이 갖춰진 셈이다.

 


나를 대신해 복수해주는 권선징악 판타지

 

 

우리의 삶에서는 이렇게 극적인 상황까지는 아니라도, 누군가에게 부당한 대접을 받은 경험 정도는 반드시 있다. 사회의 계급 구조에 대한 부조리의 감각은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체로 어쩔 수 없이 체념하며 살아간다. 복수란 쉽지 않고, 계급의 역전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 주인공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먼저, 그들은 타고난 재능과 인성으로 쌓은 인맥으로 복수하려고 한다. 물론 예전에는 이런 플롯이 먹혔다. 요새는 아무리 복수 판타지라고 해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복수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복수하는 주인공들에게는 숨겨진 출생의 비밀이 있어서 알고 보면 자신도 재벌보다 더 높은 재벌이라거나, 혹은 그보다 더 재력자와 결혼을 해서 계급을 얻거나 한다. 그렇게 해서 위에서 아래로 눌러줄 수가 있다.

 

 

 

이런 욕망 자체가 부당하다고 말할 순 없다. 우리는 어떨 땐 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을이기 때문에. 거기서 얻어지는 울분에 쉽게 공감한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계급으로 주어진 힘의 불균형은 쉽게 역전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나에게도 숨겨진 다른 뒷배경이 있다거나, 혹은 누가 내게 호의를 보여 계급 역전이 된다거나 하는 스토리를 꿈꿀 수밖에 없다.

 

요새 좀 더 젊은 사람들이 보는 회귀물, 전생물의 스토리를 보면 아예 다른 계급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일극은 조금 더 고전적인 스토리이므로 그런 과격한 설정을 따르지 않고 현실의 구조 내에서 사람들의 대리만족을 실천한다. 그리고 나의 승리만큼 타인의 몰락은 늘 자극적이다.

 

일일극은 커다란 사회구조의 역전을 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상의 숨겨진 욕망을 대변한다. 나를 배신한 전 애인에게 복수하고, 나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간 세상의 갑들에게 복수하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얻어진 세상은 갑과 을의 구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은 아니다. 현재의 복수극은 내가 갑이 되는 세상에서만 성립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현실 의식은 비관적이지만 그래서 일일극이 인기 있는 이유가 된다.

 

늘 똑같은 얘기라고 불평하면서도 계속 볼 수 있는 이유. 드라마 속 세상에서는 약자가 언젠가 강자가 되는 결말이 온다는 것을 믿기에.

 

 

기획 이인철 박현주(방송칼럼니스트) 사진 드라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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