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째 ‘DJ 오빠’ 장민욱 씨의 마이웨이

기사 요약글

“오늘은 왠지…” 감미로운 목소리로 사연을 소개하며 신청곡을 틀어주던 그 때 그 시절 음악다방DJ. 이제는 추억 속에서 존재하는 그들이지만, 여전히 음악다방 DJ로 사는 한 남자가 있다. 바로 장민욱 씨다.

기사 내용

 

 

음악다방 DJ, 70~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에게는 추억의 직업이다. 대학가와 중심가에 유행처럼 번졌던 음악다방은 80년대 컬러TV와 라디오가 들어오면서 점차 사라졌다. 자연스레 그 시절 오빠들인 DJ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여전히 서울 한복판에 그때 그 시절 DJ가 존재하는 사실을 아는가.

 

 

 

 

서울의 중심에서 음악다방을 만나다 

 

 

그가 있는 곳은 음악다방 청춘1번지로 종로3가역 1번 출구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 다방으로들어가는 입구부터 왕년의 스타, 신청곡 종이, LP판 등 추억을 소환하는 소품들이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때 그 시절을 복원해 놓은 DJ 부스와 벽면을 가득 메운 LP가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DJ 부스로 집중된 조명과 마이크에 걸려있는 헤드셋,  오래된 전축, 통기타, 비디오 테이프 등 옛 물건들이 정겹다. 청춘1번지 사장은 "다방이지만, 최고 인기메뉴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음원이랑 다르게 지직거리는 LP 고유의 맛이 있잖아요. 종이에 사연과 신청 곡을 쓰면서 커피 마시며 옛 추억에 빠지는 분들이 많죠. 옛날에 다방에 팔던 달콤한 커피라 더 추억에 빠지게 될 겁니다.”

 

 

 

 

음악다방 전성기 시절 20대였을 것으로 보이는 중년들이 곳곳에 앉아 신청곡을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사장은 주변의 한 테이블을 가리키더니  "왕년의 잘나가던 작곡가"라고 소개했다. 

 

“저기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도 연주자로 활동했던 사람이에요. 70년대에는 음악다방에서 먼저 인기가 있어야 대중적으로 사랑 받던 시절이니 홍보도 하고 시장조사도 하려고 음악 관계자들이 음악다방에 많았잖아요. 그래서 연주자, 작곡가, 가수 등 음악을 했던 분들이 자주 오세요. 또 요즘 뉴트로라고 해서 젊은 친구들도 복고 음악을 들으러 종종 옵니다. 부모님과 같이 오는 친구들도 있는데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그때 그 시절 DJ, 아직 살아있네! 

 

 

음악다방의 오늘을 기록하는 사이, 오늘의 주인공 장민욱 씨가 등장했다. 장민욱 씨는 1976년부터 지금까지 음악다방에서 DJ로 외길 인생을 걸어온 전설. 장발에 청바지를 입고 페도라를 쓰고 등장한 그는 여전히 그때 그 시절의 DJ였다. 

 

“세월이 빠르게 변했지만, 적어도 일터에서만큼은 70년대에 시계를 맞춰 놓고 살아요. 지금 제 모습을 보면 누가 봐도 그때 그 시절의 음악다방 DJ라고 생각하죠. 이곳을 찾은 분들이 음악다방 DJ가 양복을 입고 반듯하게 부스에 앉아 있는 모습을 누가 원하겠어요. 아무도 원하지 않아요. 시대는 계속 변하지만, 추억은 변함없잖아요. 저는 그 추억 속에 머무르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제 역할이니까요.”

 

 

 

 

장민욱 씨의 DJ 경력은 올해로 44년 차다. 다른 직업을 가진 적 없이 오로지 DJ로만 살아왔던 그가 처음 DJ로 입문한 건 스무 살 때.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하는 소년이었어요. 고등학교 때 분식센터에서 음악을 들려주는 DJ를 보고 DJ를 꿈 꿨죠. 하루 종일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추천할 수 있는 DJ가 제 천직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 매일 음악 다방에 출석했어요. 그러던 중 자주 가던 음악 다방의 DJ가 몸이 아파 몇 일 못나왔는데, 사장님이 저에게 DJ를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더라고요. DJ 세계에 첫 발을 들인 계기였죠.”

 

 

 

 

음악다방 DJ를 지키기 위해 1인 방송을 준비 중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 음악다방 DJ는 혼자서 PD, 작가, 엔지니어의 역할을 해야 했다. 사람들의 신청곡과 사연을 실시간으로 건네받아 음악을 준비하고 사연에 어울리는 멘트로 마음을 움직여야 했다. 당연히 음악에 대한 지식과 재치 있는 입담은 DJ의 전제조건이자, 음악다방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여기 있는 LP가 8000장 정도 되는데 전부 제 거에요. 이건 빙산의 일각이죠. 제가 가진 것만 8만 4000장이에요. 전부 들어보고 노래에 관해 공부했죠.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편하게 공부할 수 있지만 젊었을 때는 라디오로 팝송을 듣고 <월간 팝송>을 끼고 살며 공부했어요. 사실 음악다방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유행이 바뀌지 않아요. 그때 그 시절 음악을 찾으러 오시는 분들이니깐요. 그러나 사람들의 취향은 다르니 여전히 공부하죠.”

 

그야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가족들도 응원할까? 그는 묵묵히 자신을 지원하고 응원해준다고 말한다. 사실 아내를 만난 것도 일하던 음악다방 덕이다. 20대 중반 어느 날, 일하던 음악다방 근처에서 우연히 지금의 아내를 발견했다. 유명한 여가수 '나나무스꾸리'처럼 긴 생머리에 반해 무작정 아내를 따라가 구애를 펼쳤고, 5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아내는 여전히 LP판을 돌리는 남편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보낸다.  

 

 

 

 

40년 넘게 음악다방에서 한길을 걸어온만큼 그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도 많다. 수많은 사연 중 그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음악으로 위로받기 위해 찾아온 한 중년 신사를 떠올렸다.    

 

“20대 시절 아내와 음악다방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시절이 생각나 오신 분이었는데, 아내와 함께 자주 들었던 레이 찰스의 ‘I can’t stop loving you’를 신청했어요. 노랫말이 정말 아름다워요. ‘그대 향한 사랑을 멈출 수 없기에, 오래도록 그리움 가득한 추억 속에서 살기로 작정했어요’라며 시작되는 가사인데 저조차도 눈물짓게 되더라고요.”  

 

현재 한국 방송 DJ 협회의 이사인 그는 음악 다방 DJ가 잊혀지지 않도록 1인 방송도 계획 중이다.

 

“시니어의 거리인 종로에도 음악다방이 한 곳뿐이에요. 코로나가 터지니 이 곳마저도 중년들이 오기 힘들어졌죠. 그래서 옛날 음악다방을 재현해 안방에서도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을 구상하고 있어요. DJ가 잊혀지지 않도록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DJ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옛 추억이 그리운 날엔 언제든 찾아오세요.”

 

그는 인터뷰를 마친 후, 잠시 휴식을 취하더니 저녁 7시가 되자 DJ 부스에 앉았다. 능숙하게 LP 한장을 턴테이블에 걸더니 “비오는 날에 어울리는 음악”이란 오프닝 멘트와 함께 이문세의 ‘빗속에서’를 틀었다. 그리곤 들어온 신청곡과 사연을 체크하며 다음 선곡을 준비했다. 세월은 흘렀지만, 음악다방 DJ 장민욱 씨의 오늘은 변함 없었다. 

    

 

청춘1번지

주소 서울 종로구 수표로 108 지하1층

영업 시간 매일 오후 3시~오전 3시 (음악DJ 평일 오후 7시~12시, 주말 오후 4시~12시)

대표 메뉴 다방 커피 (3000원), 쌍화차 (4000원)

문의 02-765-0811

 

 

기획 이채영 사진 지다영(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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