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도 있나요? 추억의 옛날 극장

기사 요약글

20대 시절, 우리는 극장 앞에서 만나곤 했다. “단성사 매표소 앞에서 2시에 봐” 같은 약속은 해묵은 단관 극장과 함께 세월 저 너머로 사라졌다. 신작 <국도극장>은 한동안 잊고 있던 그 시절 그 추억을 부드럽게 소환하는 영화다.

기사 내용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리면서 낡은 극장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삐걱대는 의자, 작은 매점, 담배연기 자욱하던 상영관은 이제 옛날 얘기다. 극장과 함께 사라진 이들도 있다. 영사실 필름 기사, 매표소 직원, 포스터를 손수 그리던 그림쟁이들. 대부분 잊고 살지만 가끔은 그리운 옛날 극장 풍경 속, 여전히 자리하는 사람들. 그들은 전부 어디로 갔을까.

 

<국도극장>은 그렇게 우리의 기억 속 극장의 추억과 평범한 사람들의 삶 한 페이지를 가만히 들춰내는 영화다. 이야기는 만년 고시생이었던 기태(이동휘)가 고향 벌교로 돌아오며 시작된다. 그는 치매 증상을 보이는 어머니(신신애)의 병원 진료 때문에 잠시 왔다며 곧 떠날 것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사실 서울에는 기태가 돌아가야 할 이유도, 그를 기다리는 존재도 없다. 하릴없이 고향에 머무는 동안 기태에게 들어온 일자리는 국도극장 관리 업무.

 

 

 

 

처음에는 유배지에 끌려온 듯했지만, 간판장이 오씨 아저씨(이한위) 그리고 우연히 다시 만난 동창 영은(이상희)과 일상을 공유하면서 기태는 어쩐지 예전만큼 고향이 싫지 않다. 영화에는 극적인 사건도, 계속 뒤바뀌는 국면도 없다. 영화는 그저 기태와 그 주변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바라본다. 카메라는 인물의 심리가 고여 있으면 고인 대로, 흐르면 흐르는 대로 따라간다. 시간이 멈춘 듯한 국도극장의 이미지도 이 고즈넉한 영화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다.

 

'점점 더 빠르고 어지러운 세상, 우리 모두 이 속도와 풍경에 잘 적응해가고 있나요?' '한 번쯤 멈춰서 무언가를 돌아봐야 하지 않나요?' 이 영화가 부드럽게 건네는 질문이다. 모든 삶이 녹록지 않다. 길을 찾지 못한 청춘인 기태와 영은도, 말 못할 사연을 품은 듯한 오씨 아저씨도, 아픈 어머니를 나 몰라라 하는 듯했던 기태의 형(김서하)에게도 저마다 짊어져야만 하는 삶의 무게가 있다.

 

 

 

 

 

 

말없이 그 모두를 품어주는 것은 언제나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극장의 풍경이다. 영화는 <흐르는  강물처럼>, <박하사탕>, <영웅본색> 등 추억의 명화들의 그림 간판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등장인물들뿐 아니라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까지 어루만진다. 우리가 그 공간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극장 역시 영화와 관객 그리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을 사랑한다는 것. 이 영화가 진정 담고 싶었던 건 ‘극장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기획 신윤영 이은선(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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