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가 눈에 안들어온다? 시니어 그림책이 세상에 나온 이유

기사 요약글

우리나라 최초의 시니어만을 위한 그림책을 출판하는 출판사 ‘백화만발’이 문을 열었다. 백화만발에서 ‘만’은 늦을 만으로, ‘뒤늦게 활짝 핀다’는 의미를 담았다. 교사 시절에는 학교도서관운동을, 퇴직 후에는 학부모독서운동을 펼쳐 온 백화현 작가의 세 번째 행보다. 그녀는 왜 시니어 그림책 출판사를 만들었을까?

기사 내용

 

 

 

2020년 1월 첫 번째 책 <할머니의 정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세 권의 시니어 그림책을 낸 백화만발에는 전직 교사이자 독서운동가인 백화현 작가가 중심을 지키고 있다.

 

그녀는 30년 넘게 국어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명예퇴직을 앞두고 지난 2015년 한 발 빨리 학교 밖으로 나왔다.

 

오랜 시간 교사로서 독서 운동을 펼쳐온 그녀는 아이들이 주체적이고 자율적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도 함께 올바른 철학을 가지고 독서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에 얽매여야 하는 직업 특성상 학부모 독서에 대해 설파하기 어려웠다.

 

그녀가 학교 밖으로 나오게 된 이유다. 고심 끝에 학교를 나온 이후 독서동아리 30만 개를 만들자는 목표로 활발하게 활동한 그녀가 시니어 독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평소처럼 강연회에 선 날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강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아이들을 위한 책을 물어보는데, 자신을 위한 책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왜 책에 관심이 없고 읽지 않는지 알아보니 대부분 ‘글자가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집중이 잘 안된다’라는 말을 하더군요.

비교적 젊은 40대 주부는 물론 50~70대 장년층은 말할 것도 없고요. 책을 안 읽기보다 못 읽는 사람이 많구나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한편으로 이렇게 책을 못 읽는 사람들을 두고 내가 독서 운동을 하는 게 맞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됐고요.”

 

 

 

 

책을 통해 유연해지는 사고 

 

 

그녀는 책을 평소 잘 읽는 사람들은 점점 더 높은 차원의 사고를 추구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에게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성장한다고 말한다. 그럴수록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 책과 거리가 먼 사람들은 더 소외가 되고, 결국엔 이렇게 벌어진 지식 격차의 틈새가 문화의 질, 사고의 질을 떨어뜨리며 ‘부익부 빈익빈’을 만들게 된다고. 

 

“서점에 가서 제가 그동안 사람들에게 추천한 책을 그들의 입장에서 봤어요. 책장이 잘 안 넘어가고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온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니 단어가 어렵고, 글자는 너무 작은 거예요. 그러니 내용도 모르겠고요. 책을 보는 것 자체가 답답하고 읽기 싫더라고요. 이건 뭔가 문제가 있다고 그때 처음으로 인식했어요.”

 

사람은 다양한 자극을 받으며 다채롭게 사고하고 성장한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자신이 무르익었다고 생각할 때 스스로 성장하기를 멈춘다. 성장은 나이 든 이들에게 낯선 단어일 뿐이고 확고한 믿음에 갇힌 사고는 이들의 삶을 더욱 각박하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녀는 이 지점을 지적하며 갇힌 생각은 문자, 그리고 책을 통했을 때 한없이 유연해진다고 말한다. 

 

“사고는 다양한 자극을 받으면서 성장하고 촘촘해지는데, 거기에 책을 더하면 정교하고 단단해져요. 그런데 책을 읽지 않는 대다수의 나이 든 사람들은 자신이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조자 몰라요. 학생들, 젊은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요즘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불통이 사회 문제로 조명 받는 것도 독서와 무관하지 않다고 봐요. 그래서 나이 든 사람들이 책과 친숙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떠올린 게 그림책이었어요.”

 

그녀가 그림책을 떠올렸을 때만 해도 어른들이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 아예 없다는 건 알지 못했다. 그림책 시장은 아이들 위주로 편성되어 있었고, 그나마 글자가 적은 시는 간단하지만 특유의 함축성 때문에 어려웠다. 일상 소재를 다루면서 읽기 쉽고, 동시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즉, 비독자를 독자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시니어 책이 아예 없던 것이다. 

 

“중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위로가 되어주는 책이 없다는 건 중년 층이 출판 시장에서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 알려주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는 어렵고 멋있는 그림책 말고 진짜 책을 못 읽는 사람을 타겟으로 하는 쉬운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백화만발에서 나온 시니어 그림책.
<할머니의 정원><엄마와 도자기>는 백화현 작가가, <선물>은 김은미 작가가 지었다.

 

 

쉽고 재미있는 시니어 그림책

 

 

그녀가 만들고 싶은 시니어 그림책의 철학은 단순하지만 상당히 확고하다. 시니어라면 ‘누구나’ 읽기 쉽고 ‘공감’할 수 있으면서 ‘재미’ 있을 것.

 

작품성, 문학성에 욕심을 낼수록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은 어렵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대중성을 확보한 일일드라마와 같은 그림책이어야 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할머니의 정원><엄마와 도자기>다.

 

<할머니의 정원>은 남편을 먼저 보내고 오랫동안 혼자 살면서 괴팍해진 한 노인의 성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혼자 남은 노인이 갑작스레 남편을 보내고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가사도우미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삶을 변화시키고 꿈을 찾는다.

 

배우자가 떠나고, 자식도 곁을 떠나면서 오는 본질적인 외로움과 관계의 고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로, 또 다른 관계와 배움에서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쉬운 글과 따뜻한 그림으로 엮었다. 

 

 

 

 

“책 속 노인은 가사도우미와의 관계에서 많은 것을 회복해요. 만약 남편이 곁에 있었으면 거만한 할머니로 남았을 거고, 가사도우미 역시 남편이 살아있었다면 자립하지 못했 채 살았을 텐데 새로운 관계 속에서 배우면서 긍정적으로 바뀌고, 삶도 변화했어요.

책 속의 일처럼 느껴지겠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이게 다 나의 일이고 주변의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죠.”

 

백화현 작가는 누구든 늙어가고, 거기서 비롯되는 외로움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든다고 말한다. 시니어 그림책은 읽기 쉬운 언어로 그 본질을 위로하면서 경직된 가족 간, 세대 간의 갈등을 풀어주는 고리가 되어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세대를 불문하고 위로와 위안이 필요한 이때, 백화만발의 그림책이 따뜻한 배움과 소통의 가치를 일깨울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기획 서희라 사진 박충렬(스튜디오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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