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노포 에세이] 속초의 소울푸드 '함흥냉면옥'

기사 요약글

날이 더워지자 후루룩 한 젓가락에 온몸을 시원하게 해주는 냉면이 생각났다. 그리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함흥냉면의 본고장 속초로 향했다.

기사 내용

 

 

함경도 아바이가 만든 진짜 북한식 냉면  

 

서너 해 전, 평양냉면 바람이 거세게 분 적이 있다. 냉면 하면 많은 사람이 평양을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함흥 지역도 유명세로 치면 빠지지 않는다. 평양냉면의 대단한 위세에도 서울 중구 오장동과 예지동 일대의 50년 넘은 함흥냉면집들이 여전히 건재한 걸 보면 말이다. 전국에 함흥냉면 스타일을 고수하는 맛집이 꽤 있지만, 정통성 측면에서 진짜 ‘북한식 함흥냉면’을 맛볼 수 있는 지역은 서울과 속초다.

 

그중에서도 속초는 함경도 ‘아바이’들의 도시로, 강원도 안에서도 그 위상이 독특하다. 원래 양양군과 고성군에 속하던 작은 어촌이었지만, 1963년 ‘속초시’로 승격되며 지금의 구역을 갖췄다. 한국전쟁 무렵, 같은 동쪽 해안에 자리한 함경도에서 수많은 이주민이 내려왔고, 1970년대에는 설악과 동해권 관광 붐으로 인구가 빠르게 유입됐다. 명태와 오징어를 중심으로 한 어업은 절정을 이루고 지역은 흥청거렸다. 1951년 개업한 ‘함흥냉면옥’은 그 시절 속초의 상전벽해를 고스란히 목도한 원도심의 대표 노포다.

 

 

 

 

가게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전면에 걸린 큰 액자가 반긴다. 함흥냉면옥의 첫 주인인 이봉섭(1919~1992) 씨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사진 속 그는 목판과 육수 주전자, 냉면 사발을 들고 한 손으로 위태롭게 자전거를 운전하고 있다. 척박했던 시절 평범한 사람들의 풍속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그는 사이클 선수로 이름을 날릴 만큼 유명한 체육인이기도 했다. 냉면집을 차리기 전 당시 최고 회사로 손꼽히던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 직원이었다. 군대식 계급 구조와 서비스 마인드로 무장해 서울과 평양, 부산과 함흥 등지에 세워진 주요 백화점이었다.

 

이봉섭 씨는 함흥에 살다가 1·4후퇴 때 부산까지 내려갔고, 이후 고향이 가까운 속초에 정착해 냉면집 주인이 됐다. 그는 함흥냉면옥을 운영하면서 강원도 체육회에 소속해 활발히 활동했다고 한다. 전쟁의 혹독한 여파가 한창일 때부터 소시민의 심심한 입맛을 달래주던 냉면 맛이 궁금해지던 찰나, 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이봉섭 씨의 아들 이문규 주방장이 직접 치대서 뽑은 고구마 전분 면이 쫄깃해 보인다.

 

 

 

가자미 대신 명태, 남한의 첫 번째 함흥냉면

 

흔히 속초 냉면이라고 하면 명태식해를 얹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명태식해를 처음 냉면에 올린 것도, 남한에서 함흥냉면을 선보인 것도 함흥냉면옥이 원조다. “원래는 가자미를 썼어요. 일단갑빠(천막 천)를 펼치고 그 위에 ‘까재미’를 쫙 뿌립니다. 밀대로 밀어서 진액을 빼고(물가자미는 진액이 많다) 씻고 포 뜨고 뼈째 썰어요. 그런 다음 소금으로 간하고 식초를 넣어서 하루쯤 절여 짜면 시그렁기(신맛)가 빠지죠. 거기다 양념을 하면 돼요.” 비싼 가자미 대신 상어와 쥐치 등 다른 생선을 써보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정착한 것이 명태다.

 

우연히 명태를 쓰게 됐는데, 가자미 못지않은 맛이 나온 데다 값도 좋았다. 싸고 푸짐한 함흥냉면을 유지하기에 적절한 재료였다. 그렇게 70년 가까이 속초 함흥냉면을 만들어왔다. 함흥냉면은 본래 ‘농마국수’라고 불렸다. 북한에서는 아직 그 명칭을 쓴다. 남한에서 평양냉면이 유명해지자 함흥식 국수도 덩달아 ‘냉면’의 관(冠)을 쓰게 된 것. 넓지 않은 속초 시내에 함흥냉면옥을 비롯해 함흥냉면집만 대략 쉰 곳이 넘는다. 막국수를 파는 곳도 드물다.

 

 

 

억센 세월, 아린 속을 달래준 한 그릇    

 

전국에서 인구당 냉면집이 가장 많다는 ‘냉면의 메카’답다. 함흥냉면옥의 면은 고구마 전분을 쓰고 익반죽해서 삶은 것이다. 뜨거운 반죽을 만지는 이문규 주방장의 손바닥은 붉은색이다. 부친이 별세한 뒤 스물서너 해째 주방에서 일한 탓에 손바닥이 붉게 데인 것이다. 면발이 질기기 때문에 가위를 쓴다고 해서 냉면 맛을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지도 않는다. 이 집의 냉면은 장국이라 부르는 육수가 기본이고, 양은 주전자에 담겨 나오는 소 사골과 고기를 삶은 육수를 식전 또는 식후에 마시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

 

“워낙 냉면이 매워서 먹고 나면 속이 아립니다. 그러니 식사 후에 육수를 마셔서 속을 좀 달래줘야 하지요.” 매운 양념과 고명을 잘 비벼서 먹기만 하면 되는 서울식 함흥냉면과 달리, 양념을 넣은 뒤 차가운 간장 육수를 잔뜩 부어 먹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것은 막국수와 흡사하다. 그렇게 한 사발을 다 먹고 나면 뜨거운 육수로 남은 양념을 헹궈 그릇을 깨끗이 비운다. 서울의 함흥냉면이 시장 상인들의 허기진 속을 달래주었다면, 속초 함흥냉면은 뱃사람들의 해장 음식이었다.

 

여러모로 노동 음식의 색이 짙다. 함흥냉면옥은 부두에서 가까운 덕분에 고기를 내리고 어구를 정리하던 뱃사람들의 단골집이 되었고, 그렇게 입소문을 타 ‘전국구 맛집’이 되었다. 면발을 다시 씹었다. 억세고 생활력 강한 관북 사람들의 정서가 면에 스며 있다. 북한 요리 책을 보면 요즘 함경도 냉면은 물냉면이 주를 이루고 맵거나 달지 않다고 한다. 고명도 가자미회를 여전히 많이 쓴다고 알려져 있다. 전쟁과 이산이 만들어낸 고통스러운 역사의 산물, 함흥냉면. 함흥냉면옥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곳에 있다.

 

 

기획 이인철 박찬일 사진 노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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