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2라운드] 웰다잉 전도사된 원혜영 전 의원

기사 요약글

원혜영 전 의원은 30여 년을 선출직 공직자로 살아왔다. 그 시간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발견했다. 자신이 잘할 수 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일, 웰다잉 전도사라는 역할이었다.

기사 내용

금배지 떼고 금쪽같은 인생을 시작한 정치인들의 이야기

1편, 5선 의원에서 웰다잉 전도사가 된 원혜영 전 의원
2편, 법사위원장에서 도시농부가 된 여상규 전 의원
3편, 정치 외도 후, 라디오 DJ로 돌아온 이철희 전 의원

 

 

시작은 우연히 참가한 세미나에서 비롯되었다. “5~6년 전 국회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해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원혜영 전 의원은 그것이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직감했다. “(연명치료 자기결정권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나서 스스로 받기를 원하면 당연히 받겠지만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다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보장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해서 그가 여야 의원을 모아 5년 전에 만든 법은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3년 전부터 ‘연명치료에 관한 사전진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게 했다. “지금 그 의향서를 작성한 분들이 60만 명을 넘어섰어요. 머지않아 100만 명 가까운 분들이 사전진료의향서를 써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게 될 겁니다. 그 일이 웰다잉에 관심 갖고 관여하게 된 계기였어요.”

 

우연히 참가한 세미나는 그에게 인생 2막의 중요한 화두였고, 이후 웰다잉을 더 넓고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30여 년의 선출직 공직생활을 끝낸 후 자신이 사회를 위해 마지막으로 기여할 부분이라고 느낄 정도로. “부끄럽지 않은 정치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고, 물러날 때도 제때에 잘 물러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여유롭고 건강하게 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뭘까 고민하다가 중요하면서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웰다잉 운동이라고 생각했죠.”

 

연명치료 관련법은 웰다잉의 일부분이었다. 좀 더 넓게 웰다잉을 바라보자 함께 생각해볼 부분이 여러 가지로 늘어났다. 그가 웰다잉 운동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이유이기도 했다. “입법됐으니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삶을 마무리할 때는 연명의료뿐만 아니라 많은 걸 결정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장기기증부터 유언장, 심지어 장례 절차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잖아요.”

 

특히 그는 유언장에 대해 강조했다. “앞으로 유언장 작성 비율을 5%로 높이는 게 목표예요. 지금은 1%도 안 되는데, 그나마 통계도 없어요. 0.5%도 안 될 거라고 추정할 뿐이죠. 그러니까 아무도 유언장을 안 쓰는 거예요. 미국은 56%가 유언장을 쓴다고 합니다. 그 수치는 거의 다 쓴다는 거죠. 이것은 그만큼 우리가 죽음을 대비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인데,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죽음을 맞는 거죠.”

 

그는 웰다잉 운동이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문제이면서 한편으로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거라고도 생각한다. “자신이 결정하지 않고 떠나면 법적 기준으로만 해요. 그러다 보면 싸우는 경우가 많죠. 법이라는 도덕 최하위 기준이 잣대가 되니까 아름답지 않은 모습이 나오는 거죠. 생명의 문제, 재산 문제, 그 밖의 여러 장례 절차에 관한 문제를 자신이 결정하면 자기 삶을 품위 있게 마무리할 수 있고, 그러면서 가족과 사회에 기여할 수도 있죠. 결국 다 자기결정권의 문제잖아요. 그래서 통합적 관점에서 웰다잉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시기도 적절하다. 현재 한국사회는 초고령사회에 직면했다. 웰다잉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회적 배경이 마련된 셈이다. 그 역시 이 점을 명확히 인지했다. “올해부터 출산 인구보다 사망 인구가 늘어났어요. 인구가 줄어드는 변곡점이 올해예요. 이런 사회적‧시대적 환경 속에서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내 삶의 마무리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천하는 일은 개개인은 물론 그 사회를 건강하고 품위 있게 만들어줄 겁니다. 유언장을 한 번 써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당연히 다르지 않겠어요? 그렇게 자기 삶을 성찰해보고 결정해본 사람이 많은 사회의 품격과 사회적 통합성은 분명 다를 거예요.”

 

건강하고 품위 있는 사회. 공익을 위한다는 점에서 국회의원으로 살아온 그의 발자취와도 맞닿는다. 그에게 웰다잉 운동은 여전히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노력이다. 물론 인생 2막은 ‘은퇴자의 리듬’에 맞춰 나갈 셈이다.

 

“일종의 생활문화운동으로 하는 거죠. 20~30대 활동가처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겠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은퇴한 사람으로서 저는 제 역할을 자원봉사자로 설정하고 있어요. 그래서 은퇴기에 맞는 리듬, 강도로 일할 거예요. 물론 그런 기조 속에서도 열심히 할 건 해야죠.”

 

특히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역할은 총론적인 전파다. “강연이나 상담 활동을 하려고 해요. 전국에 노인복지관이 수백 개가 있는데, 그곳에 가서 나이 드신 분들이 자기 삶의 마무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을 강연하려고 해요. 실무적인 면에서는 오랫동안 이 운동을 해온 단체를 연결해줘야죠.”

 

그는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하려고 한다”고 했는데, 인생 2막을 들으러 간 자리도 웰다잉 운동을 생각하게 하는 강연장처럼 느껴졌다. 그의 말은 그의 눈빛만큼 빛났다.

 

기획 이인철 김종훈 사진 박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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