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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마음치유력] 김병수 원장의 활동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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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의 마음치유력 시리즈*

1편. 이나미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잘라내는 연습"

2편.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의 "활동 레시피"

3편.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긍정적인 몰두"

4편. 송정림 드마라 작가의 "고독과 친해지기"

5편. 심용희 펫로스 상담 전문 수의사의 "슬픔 인정하기"

 

 

 

 

요즘 코로나블루로 찾아오는 환자들이 늘었나요?

 

 

코로나19가 심각했을 땐 환자가 없었어요. 아무래도 병원 자체에 대한 불안감이 컸던 것 같아요. 오히려 상황이 조금 잠잠해지고 나서 환자가 더 늘었어요. 코로나19가 심할 때는 신경 쓸 것도 많고 정신없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가, 상황이 나아지니 긴장이 풀려 괜히 더 예민해지고 기분이 우울해졌다는 거예요.

 

 

중장년층도 많이 오나요?

 

 

그럼요. 10년 전만 해도 참고 참다가 끝내 안 돼서 병원을 찾는 분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정신과에 대한 편견도 있어서 더 안 오고 싶어 했죠. 그런데 요즘은 예전보다 더 쉽게 찾아오세요. 자녀들이 데리고 오는 경우도 많고요.

 

 

어떤 이유로 방문하나요?

 

 

대부분은 가족 때문이에요. 배우자의 외도가 의심된다거나, 자녀가 독립하지 못하고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다거나, 나이 많은 부모님 때문에 힘들다는 식이죠. 이처럼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 때문에 오는 분도 있고, 사업이 안 풀리거나 갑자기 건강이 나빠진 경우처럼 특정한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오는 분도 있어요. 꼭 치료 목적이 아니라 고민 상담처럼 저에게 하소연하고 싶어서 오는 분도 많아요. 

 

 

고민 상담은 주변 지인들에게도 할 수 있는데, 꼭 의사를 찾는 이유가 있나요?

 

 

가까운 지인에게 얘기했는데 공감받지 못한 거예요.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니까 거기서 오는 배신감이 커서 끝내 병원을 찾아온 거죠. 물론 처음부터 주변에 말 안 하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초라해 보이기 싫고,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 욕구가 더 큰 거죠. 가족에게 얘기해봐야 가족들만 더 힘들 테고, 친구들에게 말하기는 부끄럽고. 저는 이게 SNS의 영향이 아닌가 싶어요.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죠.

 

 

스스로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적극적인 신체 활동을 가장 권해 드려요. 스스로 마음을 치유할 방법 중에 의학적으로 검증된 게 바로 운동이에요. 약하지 않은 강도로 일주일에 3회 이상 운동하는 것이 항우울제를 먹는 것만큼이나 효과 있다는 게 증명됐죠. 그 밖에 감정을 평온하게 하거나 활력을 줄 수 있는 뜨개질, 반신욕, 명상 같은 것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힘들면 몸도 안 따라주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힘든데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라고 다짐하는 건 효과가 없어요. 몸이 스스로 느껴야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되거든요. 마음속으로 ‘힘내야지’ 하는 것보다 동네 한 바퀴 뛰면서 심박수를 높이는 게 더 힘을 내는 방법이에요. 그리고 ‘활동 레시피’를 만드세요. 마음이 불안할 땐 뜨개질을 하겠다, 머리가 복잡할 땐 반신욕을 하겠다는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는 레시피를 만들어놓으면 행동하기가 훨씬 수월해요.

 

 

선생님은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어떤 말로 위로하나요?

 

 

저는 ‘힘내’라는 말보다 ‘같이 고민해보자’ ‘함께 버텨보자’라는 말을 하는 편이에요. 병원에 온다고 해서 쌓였던 갈등이 단번에 풀리거나 마음의 고통이 한번에 해소되지 않아요.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같이 고민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거든요.

한번은 환자 한 분이 저한테 이런 고백을 하는 거예요. “선생님, 제 문제가 해결 안 될 걸 알지만 저만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게 참 억울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 말하고 나니 동반자가 생긴 기분이에요.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제 고민을 알고 있다는 게 위로가 되네요.”

 

 

공감해주고 곁에 있어주라는 것이네요.

 

 

마음을 다친 사람은 그저 자신의 감정을 인정받고 싶어 해요. 그 사람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봐주는 것, 이게 공감이죠. 이러한 공감은 마음에 공간을 만들어요. 그 공간 덕분에 자신을 사지로 내몰았던 감정들에게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죠. 

 

 

 

 

감정적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직접 경험한 것과 같은 상처를 받는다고 하는데, 환자들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선생님의 마음 건강은 괜찮은가요?

 

 

부정적인 감정은 전염이 잘 돼요. 하루 종일 “너무 힘들어요”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퇴근하면 녹초가 돼서 아무것도 못해요. 

 

 

그럼 어떻게 극복하세요?

 

 

나름의 원칙이 있어요. 퇴근 이후에는 무조건 운동을 해요. 주말에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쉬어요. 시간의 경계를 확실히 긋는 거죠. 그리고 자기 전에 꼭 설거지를 해요. 감각 경험을 활성화하는 방법이죠. 설거지를 집중해서 하다 보면 잡념이 없어져요. 물이 닿는 느낌, 뽀득뽀득 깨끗해지는 소리, 접시가 가지런하게 정돈된 모습을 경험할 수 있어요. 같은 맥락으로 제 환자 중에 한 분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욕실 줄눈에 낀 때를 박박 벗긴다고 합니다(웃음).

 

 

살면서 마음이 안 아플 순 없습니다. 덜 아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일단 저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낮춰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아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처럼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높으면 실망도 커요. 배우자나 가족들에게 받고 싶은 나의 개별적 욕구만큼 좌절과 결핍이 쌓이거든요. 확실히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나서 상처받을 일이 많이 줄었어요.

대신 살아가는 게 팍팍하고 힘들면 갈등이 크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요즘 기분전환은 잘하고 있나’ ‘스트레스는 잘 풀고 있나’ 하고 스스로를 점검해요. 그리고 저는 다른 사람의 삶을 자주 상상하는 편이에요. ‘지금 저 사람이 나한테 짜증을 내는데,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다른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닐까?’라고 말이죠. 나와의 관계 외에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상상해보고 추론하다 보면 스스로 더 관대해지고 여유가 생겨요.

 

 

기획 우성민 사진 박형주(율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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