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화백의 장녀, 박인숙 씨의 화려한 칠십

기사 요약글

박수근 화백의 장녀, 박인숙 씨. 아버지처럼 미술교사였고 화가였던 그녀는 ‘종심(從心)’, 즉 마음을 따르는 나이 70에 마음 가는 대로 패션모델에 도전했다. 어느덧 6년 차, 이제는 파리 컬렉션 데뷔까지 꿈꾼다.

기사 내용

 

 

 

6월 중순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모델 아카데미 연습실.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운 통유리, 검정색 런웨이를 가득 메우는 화려하고 경쾌한 음악. 모델들의 워킹 연습이 한창이다. 강사의 구호에 따라 모델들이 한 명씩, 또는 2인 1조가 되어 걷고 포즈를 취한다. 살짝 정면 위로 향한 시선, 곧추선 등과 어깨, 모델 워킹 특유의 당당한 걸음걸이.

 

워킹 마무리는 양손을 허리에 대고, 한쪽 다리를 앞으로 살짝 내민 다음 턴. 하이힐을 신고 남다른 패션 감각을 뽐내는 모델들. 평범한 모델 수업같지만 이 풍경 속에는 특이점이 있다. 모델들이 모두 60+ 시니어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 아카데미에서 2시간 정도 모델 수업을 받는다. 워킹 실습 포토 포즈, 광고 연기 등이다.

 

 

 

 

파리 컬렉션 데뷔 앞둔 77세 모델

 

 

검은색 바탕에 원색의 기하학 무늬가 도드라진 투피스 정장, 멋스러운 페도라 차림의 박인숙 씨는 77세, 6년 차 시니어 모델이다.   

“모델 동료들 중에서 나이로는 두 번째로 많아요. 맏언니 격이죠. (웃음) 모델 동기로 한 살 많은 최순화 선배, 11살 어린 김칠두 씨가 유명하죠.”

은발의 최순화, 장발의 김칠두 씨는 시니어 스타 모델이다.

 

 

 

 

“모델 워킹을 배운 후 현재까지 수십 번의 패션쇼를 경험했어요. 서울패션위크를 비롯해 이상범, 양해일 디자이너 등 다양한 무대에 올랐습니다. 사실 올해 2월 말 양해일 디자이너의 프랑스 파리 컬렉션 무대에 서기로 예정되어 있었어요. 시니어 모델로는 제가 유일하게 초대된 무대인데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연기되었습니다. 모델로서 파리 컬렉션은 꿈의 무대인데 손꼽아 데뷔를 기다립니다.”

 

양해일 디자이너는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의상을 제작하는 디자이너이다. 영부인이 대통령 취임식 때 입었던 의상, 미국 방문에서 착용했던 의상 등이 그의 작품이다.

 

 

 

 

박수근 그림 속 단발머리 소녀

 

 

170센티미터에 이르는 큰 키에 서구적 외모의 그녀. 타고난 신체조건이 모델이라는 2라운드로 이끈 동력일까. “아버지가 180이 넘는 큰 키에 서구적 미남이셨어요. 어렸을 적에는 꺽다리, 장다리라는 놀림을 받아 늘 움츠리고 다녔죠.”

 

우수한 신체조건을 물려주신 아버지는 다름 아닌 박수근 화백이다. 거친 바위에 그린 듯한 독특한 화풍으로 유명한 박 화백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중 한 명. 그녀는 1944년 박수근 화백의 장녀로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녀는 아버지 그림의 단골 모델이었다. 유명한 ‘아기 업은 소녀’(1953년작)의 단발머리 소녀가 바로 박인숙 씨다.

 

“아버지는 언제나 다정다감했고 궁핍한 살림에도 늘 최선을 다하셨어요. 자식들에게 동화책을 사주지 못하니 당신께서 직접 그림을 그려서 책을 만들어주셨어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주몽 이야기,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 등이었어요. 중학교 때는 공납금이 밀렸는데 아끼시던 화집을 팔아 제 공납금을 마련해주셨어요.”

 

 

 

 

아버지처럼 미술교사였던 그녀는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학교와 가정생활에 보통의 삶을 살았다. 은퇴 후에는 국전 입선 화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나이 70이 되자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70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 수 있는 종심(從心)의 나이다. 옷을 좋아해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어릴 적 몽상이 떠올랐다. 옷을 만들 수 없다면 옷 입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옷 입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러나 가난했던 시절이라 주로 어머니가 미군 구호물자로 얻어온 옷들만 입었어요. 창신동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어느 날은 주황, 빨강, 노랑이 들어간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갔어요. 선생님이 내 옷차림을 보시더니 인디언 소녀 같다고 하시는데 어린 마음에 너무 창피해서 화장실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새까만 얼굴에 마른 버짐이 핀 단발머리 말라깽이 꺽다리였는데 놀림감이 된 기분이었던 거죠.”

 

무작정 모델 워킹학원을 찾아 등록했다. 1년여 정도 모델 워킹을 배우고 나서는 패션쇼 무대에 올랐다.

 

“몇 해 전 아버지 고향인 강원도 양구에서 패션쇼를 가졌어요. 아버지 미술관에서, 그리고 지역 축제 등의 무대였죠. 런웨이를 오가며 생각했습니다. ‘뒷동산에 어머니, 아버지가 계신데 인숙이가 드레스를 곱게 차려 입고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떱니다’라고.”

 

 

 

 

무대 위 행복한 경험을 화폭으로

 

 

“모델로 사는 지금이 마냥 행복하다”는 그녀. “뒤늦게라도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건 굉장히 즐거워요. 시간이 모두 시니어 모델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설계됩니다. 식단부터 몸매, 자세, 피부 관리까지 생활의 모든 지표가 쇼 무대로 수렴됩니다.” 모델 동기들과 함께 옷, 액세서리, 메이크업 등 패션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도 소확행이다.

 

“안방에 옷이 살고 있어요. (웃음) 어렸을 적에는 너무 가난해서 옷이 없었고, 결혼해서는 맏며느리로 시부모님, 시동생 2명, 시누이 2명과 같이 사느라, 또 직업적으로는 학교 선생이라 검소하고 수수하게 살았죠. 지금은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너무 흐뭇해요. 마치 여왕이 된 느낌이랄까. (웃음)”

 

그녀는 최근 웹드라마에도 출연, 연기를 시작했다. 드라마 촬영은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하는 강행군이지만 주어진 기회가 고맙다. 또한 모델로서 행복한 지금의 경험이 80세 이후 집중할 그림의 소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80대에 그려질 삶의 화폭 또한 기대가 되는 이유다.

 

 

기획 이인철 김남희 사진 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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