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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래바'처럼, 퇴직 후 월 수입 300만원 인생술집
일∙2라운드 17,252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20년간 중견기업 영업 파트에서 일해 온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나이 오십이 가깝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 있다. 결혼한 친구들과는 공감대가 없어서인지 점차 소원해져서 직장 생활이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인간관계도 거의 직장 동료, 선후배들 위주로 이뤄졌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사내 동호회 활동을 활발히 했고, 퇴근 후 동료들과 한잔 하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일상이었다. 술도 잘 마셨지만 술자리를 더 좋아했다. 좋은 사람들과 술 마시면서 긴장이 풀리고, 웃고 떠들고 때로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서너 번은 술집에 갔고, 회식 자리도 웬만해선 빠지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직장과의 작별

 

 

그러다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게 돼 부서가 통폐합 되었고, 팀장을 맡고 있던 나는 진퇴를 결정해야만 했다. 20년 간 다닌 직장을 그만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갈등이 컸지만 고민할수록 그만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회사에서 좁아진 입지 탓도 컸지만 이번 기회를 새로운 터닝 포인트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었다.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내 일을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딸린 식구가 없어 경제적 부담감이 적은 것도 퇴사 결정을 내리는 데 한몫했다.

 

 

 

 

막연했던 꿈, 술집 창업

 

 

사직서를 내고 송별회를 하던 날, 직원들이 “팀장님과 퇴근 후 한잔을 못하는 게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그래? 그럼 내가 아예 술집을 차릴까?” “정말요? 우리야 좋죠, 개업하시면 매일 갈게요. 하하”

 

농담처럼 주고받은 얘기였지만, 언제부터인가 내심 생각해 보던 내 노년의 모습이었다. 사람들과의 술자리를 좋아하는 나는 퇴직 후 자그마한 술집을 열고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야기도 나누며 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실제적인 청사진이나 창업 준비는 전혀 없는 막연한 희망사항이었지만, 이제 그 꿈을 실현시켜볼 시점이 아닐까 싶었다.

 

막상 내가 술집을 열겠다고 하니 주위에서는 걱정과 만류의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가족들은 “장사 경험도 없는 여자가 술집을 혼자 하기는 힘들다”고 반대가 컸다. 술집은 늘 고객으로만 익숙했을뿐 직접 운영하거나 관계된 지인도 없어 낯설긴 했다. 하지만 난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나. 누구나 다 처음엔 초보 아닌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고집을 꺾지 않고 창업을 추진했다.

 

 

Step1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만난 전문코치

 

그러나 막상 준비를 시작해보니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술집에도 유행이 있고, 트렌드가 있었다. 와인, 호프, 수제맥주, 막걸리, 소주 등 주종도 다양하고 곁들이는 안주에 따라서도 종류와 규모가 각양각색이었다. 상권과 입지, 입점 층, 아이템과 규모 등에 따라 창업 자금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매장 규모, 주류 종류, 수익 구조 등 꼼꼼하게 따져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인터넷을 뒤졌지만 참고할만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서점에서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기 어려웠다.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자칫 성급하게 창업을 했다가 퇴직금마저 다 날리는 것 아닌가 슬그머니 겁이 났다.

 

나는 지인의 소개로 전문코치를 만나 코칭을 받기로 했다. 시행착오 없이 해내려면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감부터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코치는 “창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술집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10년 후 나의 모습은 어떠할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 여러 가지 질문을 내게 함으로써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Step2 술집을 하고 싶은 이유 찾기

 

내가 창업에서 원하는 것은 경제적인 수익 그 이상이었다. “장사해서 돈 많이 벌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음주문화와 분위기를 만들고 그것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편의점이나 카페, 음식점 등이 아니라 콕 짚어 ‘술집’을 하고 싶은 이유였다. 술과 술자리의 분위기를 좋아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내게 잘 맞는 일 같았다. 남편이나 자식이 없는 내게 무엇보다 소중하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존재가 바로 술과 동료, 선후배들이었다.

이러한 것들을 기준으로 삼고 보니 조금씩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술집의 콘셉트는 직장인들이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술 한잔 한다’는 기분으로 올 수 있는 분위기로 하고 싶었다. 퇴근길에 혼자 또는 동료들과 부담 없이 들러 피로를 푸는 곳, 그리고 일상을 이야기하며 공감하고 또 위로 받는 곳이 바로 내가 만들고 싶은 인생술집이었다.

 

 

Step3 인생술집 창업을 위한 공간 선택

 

이러한 콘셉트의 술집이라면 작은 규모라도 충분했다. 혼자 운영할 수 있으니 인건비가 따로 들지 않아 부담이 적다는 점도 좋았다. 혹시 실패하더라도 타격이 크지 않도록 초기 투자비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지 선정이 관건이었다. 임대료가 비싼 대로변이나 권리금이 있는 곳은 피해야 했다. 초기 고객 확보를 위해서는 전에 근무하던 회사 근처가 유리할 것 같아 그 주변의 이면도로를 샅샅이 뒤졌다.

 

마침내 15평 남짓 완벽한 공간을 발견했다. 이전에 미용실이었는데 폐업하고 빈 채로 남아있는 곳이었다. 상가 2층 구석진 곳에 있었지만 권리금이 없고, 월세도 저렴했으며, 상하수도, 도시가스 설비가 이미 구비되어 있어 내게는 최고의 선택지였다. 창업비용은 크게 매장 임대료, 권리금, 인테리어 비용, 시설 및 집기, 초기 운영자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 일단 권리금이 없고, 임대료가 저렴하니 한결 부담이 적게 시작할 수 있었다.

 

 

 

 

Step4 나홀로 운영을 위한 초기 투자 비용 최소화

 

기존 매장을 그대로 인수해서 운영하는 게 아니어서 도색, 간판, 가구, 조명 공사 등은 해야 했고, 주방용 각종 설비와 기물 등을 구입해야 했다. 이 단계에서 다시 한 번 친한 사람들과의 교제 위주로 혼자서 운영하자는 나름의 개업 원칙을 상기하고 적용했다. 주방장이나 도우미 없이 홀로 안주를 만들고 서빙, 카운터 업무를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술은 병맥주, 안주는 대부분 손이 안가는 간단한 메뉴 위주로 구성해 조리시설도 최소화 했다. 보증금과 인테리어, 집기류 구매 비용 등을 모두 포함해 3,5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회사 퇴직금이 있었기에 대출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꿈을 이룬지 1년, 망하지 않을 자신감

 


가게를 오픈한지 이제 1년 되었다. 막상 해보니 너무 재미있다. 성향에도 잘 맞고, 생각보다 장사에 소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오후 5시 오픈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해 자정쯤 문을 닫고, 새벽 1시쯤 퇴근한다. 오후 5시 전까지는 온전히 자유 시간이다. 최근 모든 자영업자가 그렇듯 코로나 영향으로 수입이 줄긴 했지만 이전까지는 모든 비용 제하고 월 평균 300만 원 정도 남았다. 인건비가 따로 안 들고, 프랜차이즈도 아니기 때문에 로열티를 낼 필요가 없다. 월세도 중심가보다 훨씬 저렴해서 매달 나가는 고정 비용이 적은 편이다. 직장 다닐 때보다 수입은 줄었지만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생겨서 삶의 만족도는 더 크다.

 

안주류 대부분이 사전 준비가 필요 없거나 조리 시간이 짧아 혼자 운영하기에 그리 힘들지 않다. 때로 치킨이나 족발, 보쌈 등 손님들이 원하는 안주가 있으면 근처 맛집에서 배달시켜 주기도 한다. 마음에 맞는 술친구, 혹은 아는 선후배, 친한 단골들이 오면 나는 기꺼이 테이블에 앉아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럴 때면 손님들이 맥주를 꺼내오고, 계산도 직접 하는 등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모르겠다며 웃는다.

 

우리 가게는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요즘 젊은이들의 ‘인스타 감성’과는 사뭇 거리가 먼 평범한 술집이다. 하지만 이 가게만의 독특함이 있다는 게 단골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다. 그것은 아마도 ‘친구 집에 놀러 온’ 것 같은 편안함일 것이다. 특별히 광고나 홍보를 하지 않는데도 고객이 꾸준히 찾아오고, 또 다른 고객을 데려오는 것을 보면, 큰돈은 못 벌어도 망하지 않을 자신은 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갖고 있고, 꼼꼼히 창업 과정을 체크하며 장사를 시작한다면 성공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기획 임소연 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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