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인생훈련_손흥민, 메시처럼 프로답게 사는 법

기사 요약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까?’ 인생 2라운드를 앞둔 사람들의 고민이다. 매일 수련을 통해 변화하는 삶을 사는 고전인문학자 배철현 교수가 인생 재설계법을 알려준다.

기사 내용

 

 
 
 

하루라는 시간은 나에게 자유(自由)를 허락하였다. 나는 이 자유를 어떻게 만끽할 것인가? 속박에 익숙한 자에게 자유는 구속이다. 차라리 구속당한 상태가 편하다. 자유에는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자유와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자유 두 가지가 있다.

 

 

'~로 부터의 자유', 탈출하려는 마음은 소극적 자유

 

 

소극적인 자유는 자신이 벗어나고 싶은 상태에서 탈출하려는 마음이다. 자신의 생계를 위해 마음으로 내키지 않은 일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때, 그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자유는 ‘-로 부터의 자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 일은 애초에 내가 정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은 당연하다.

 

현대인들은 소극적인 자유에서 벗어나 다시 길을 잃고 구속의 삶으로 연명하기 일쑤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미디어와 대중이 열광하고 광고하는 쾌락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소진시키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한 순간의 쾌락에 슬그머니 중독이 된다. 우리의 하루 일과를 보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는 이미 중독자다. 재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적극적 자유

 

 

적극적인 자유는 다르다. 창의적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독보적이고 독창적이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그것에 절대적으로 충성한다. 그 충성이 ‘믿음’이다. 믿음이란 자신하고 상관없는 기관, 특히 사회적인 권위를 가진 기관이 나에게 요구한 도덕이나 교리에 대한 충성이 아니다.

 

‘믿음’이란 그리스 단어 피스티스(pistis), 라틴어 피데시(fides), 그리고 영어단어 빌리프(Belief)가 모두 선포하고 있듯이, ‘자기설득,’ ‘자신을 설득한 것에 대한 충성,’ 그리고 ‘그것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려는 사랑’이다. 히브리어 헤세드(Hesed)는 흔히 ‘신의 아낌없는 사랑’으로 번역하는데, 원래 의미는 ‘뜨거운 가슴을 지닌, 열정적인’이란 의미다. 내가 뜨거운 가슴으로 적극적으로 몰입하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적극적인 자유는 자발적이다. 자발은 그 원인이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외부의 자극이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자발적인 자유는 스스로에게 훈련을 부가한다. 훈련이란 일상에서 일정한 시간을 구별하고 일상의 장소를 구획하여 내 몸, 정신, 그리고 영혼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다. 세상에 훈련을 통하지 않는 결실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자유라는 단어에 우리는 흔히 ‘정치적인 자유’ 혹은 ‘경제적인 자유’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런 자유는 더 근본적인 자유로부터 솟아나는 결과물이다. 이것들은 ‘심리적인 자유’의 표현이다. 심리적인 자유는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로부터의 독립이다.

 

 

 

심리적인 자유란 내 자신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엄격하게 관찰하려는 마음가짐이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나를 퇴행시키는 나쁜 습관들, 그것들이 야기하는 콤플렉스와 패배심리를 인식한다. 심리적인 자유란 내가 선정한 삶을 위한 독립선언이다. 우리는 패배의식이 만들어내는 정신병리를 치료하기 위해 처방을 받는다.

 

과학과 유물론을 신봉하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패배적인 습관과 그것이 야기하는 원인을 뇌의 한 부분에서 찾으려한다. 그리고 그것이 원인이라고 단정한다. 원인은 완전한 치료를 요구하지만, 처방전은 원인치료가 아니라 임시방편이다. 오히려 처방 약은 또 다른 중독으로 돌아온다.

 

아마추어는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서 일을 하지만, 프로는 자신이 원하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수련한다. 아마추어는 남들이 좋아할 것을 흉내 내지만, 프로는 탁월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훈련한다. 아마추어의 놀이는 현재의 자신을 즐겁게 만드는 행위지만, 프로의 놀이는 현재의 자신을 극복하고 초월하는 놀이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른다.

 

약간의 고통으로 그 놀이를 포기하는 사람은 아마추어다. 아마추어는 파트 타임이고 프로는 24시간이다 풀 타임이다. 호날두, 메시, 그리고 손흥민의 공통점은 공식적인 팀 연습 이외에, 남들보다 먼저 축구장에 가서 공차기를 연습한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더 나은 호날두, 더 나은 메시, 더 나은 손흥민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남들과 경쟁하기 않고 더 나은 자신과 경쟁한다.

 

프로에게 자신의 직업은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소명(召命)이다. 누군가가 태어날 때부터, 그(녀)에게 부과한 임무다. 내가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노력이 ‘신중한 연습’이다. 신중이란 자발성과 의도성을 포함하고 연습이란 완벽을 추구하는 삶에 필요한 고통과 인내다.

 

 

 

 

프로는 내가 원하는 자신을 위해 수련한다

 

 

내가 선택한 분야를 나는 아마추어처럼 대했는가 아니면 프로로 대했는가? 만일 내가 하는 일이 순간을 사는 인생의 소명이라면, 탁월을 위해 습관과 기술연습이 오락을 대치할 것이다. 적극적인 자유란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가하는 임무를 기꺼이 수용하는 마음이다.

 

내가 인생이란 엄연한 경기에서 항상 아마추어로 살기를 원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기 때문이다. 약간의 돈과 명예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약간이 생기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욕심의 노예가 되고, 혹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덩달아 좋아하다, 자기-파괴적인 중독의 삶을 산다.

 

<도덕경> 9장 마지막에 이런 문구가 있다. 功遂身退 天之道也(공수신퇴 천지도야) 학자들은 대부분 이 문장을 “공을 이루고 명성을 얻었으면 구질구질하게 그것들에 연연해하지 말고 물러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로 해석하는 것 같다.

 

나는 이 문장을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히려 돼지가 돌진하는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 수련하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로 해석하고 싶다. 남들이 환호하는 업적(功)이 아니라, 자신에게 감동적인 업적(功)을 위해 삶의 방향을 틀기는 어렵다.

 

오랫동안 수련한 사람에겐 자연스러운 깨달음으로 오고, 범인들에겐 갑작스런 불행으로 다가온다. 어려움과 불행은 나를 바닥으로 던지지만, 그 바닥은 나를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로 만드는 굳건한 기반이다. 나는 아마추어인가? 아니면 프로인가?

 

 

글 배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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