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헌학자 배철현 교수가 알려주는 2라운드 인생 설계도 그리기

기사 요약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까? 인생 2라운드를 앞둔 사람들의 고민이다. 매일 수련을 통해 변화하는 삶을 사는 배철현 교수에게 인생 재설계법을 물었다.

기사 내용

 

부동 _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교육 _ 어제의 나로부터 탈출하는 훈련

부사 _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회복 _ 내 안의 그릇을 깨뜨릴 시간

배철현 교수의 저서 <정적> 중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고전문헌학자 배철현 교수는 지난해 서울대 교수를 그만둔 뒤 9개월여 동안 별다른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잠수를 탔다”고 말하지만, 실은 가평 집에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며 변화를 위한 시간을 가졌다. 세상과의 소통은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매일 쓴 ‘묵상일기’가 전부였다. 그런 그가 최근 신간 <정적>(21세기북스)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위대한 개인을 발견하고 완성시키는 과정인 심연-수련-정적-승화 중 세 번째 단계를 다뤘다. <정적>에는 단락마다 중심 단어가 하나씩 제시된다. 그리고 단어마다 우리 의식을 성장시킬 짧지만 강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 단어들은 그가 독자에게 제공하는 마음의 씨앗이다. 그는 독자들이 마음에 이 씨앗의 싹을 틔워 위대한 개인으로 변화하길 바랐다.

  

 

잠수를 타신 건 집필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나요?

오랫동안 일해온 서울대를 그만뒀으니 저도 새롭게 출발해야 했지요. 그래서 하루 세 시간씩 묵상일기를 썼습니다. 지금까지 230회 썼는데, 내년 2월 25일까지 400회를 쓸 예정입니다.

 

매일 묵상의 주제는 어떻게 결정하나요?

매일 아침 명상하면서 전날 읽었던 책이나 신문, 공부 주제 중에서 화두를 하나 떠올립니다. 오늘은 여명에 대해서 썼습니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났는데 새벽의 기운이 참 좋더라고요. 집이 서쪽을 바라보는데 뒤에서 해가 다가오는 게 느껴집니다.

우리말로 여명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여명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묵상일기를 썼습니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쓰다 보니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섬광처럼 지나가는 게 많아요. 그중 하나를 포착하는 거죠.

 

훈련의 결과인가요?

세상에 운은 없고 천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훈련의 결과이지요. 육체의 훈련만큼 생각도 훈련을 의도적으로 정성스럽게 해야 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신중한 연습이에요.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행동과 말, 생각을 매일 똑같이 하는 것이지요.

그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고 그것만큼 자신의 삶의 고삐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없어요.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훈련은 항상 스케줄이 짜여져 있습니다. 스케줄 안에서 자신이 가진 천재성이 조금씩 나오는 겁니다. 그걸 천재성이 아니라 심연(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케줄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교수님은 일정한 스케줄을 어떻게 유지하나요?

스케줄을 맞추는 게 제 종교입니다. 그 스케줄 안에서 연습하는 것만이 나를 변화시키니까요. 제 일과를 소개하면 아침에 일어나 명상하고, 진돗개 두 마리와 함께 달리기를 하고, 글 쓰고, 독서하고 저녁엔 책을 쓰지요. 아홉 달째 이 스케줄로 지냅니다.

 

스케줄을 유지하는 데 고려해야 하는 것이 있나요?

일정한 시간과 장소이지요. 훈련은 시간과 공간 두 가지를 내가 장악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예배를 볼 때 항상 정해진 시간에 봐요. 또 아무 데서나 보는 게 아니라 정해진 장소로 갑니다. 다른 공간과 구별하는 것이지요.

 

그럼 구별된 장소를 어떻게 찾나요?

내가 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그 공간을 지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버스, 지하철도 괜찮아요. 그 공간에서 내가 시간과 장소를 구별해 철저히 지키면 됩니다. 그럼 그 공간이 나에게 보답합니다. 내가 변화하게 되지요.

 

 

변화란 내 인생을 찾아가는 여정 같네요.

책 시리즈로 설명하면 심연은 현재의 나를 벗겨보는 겁니다. 고독을 통해 과거의 이름을 버리고 자신을 유기하는 거죠. 자기가 갖고 있는 전부를 벗어던져야 심연에 갈 수 있어요. 심연에 가려면, 심연 상태를 지속하려면 훈련이 필요해요. 그게 곧 수련이지요. 태권도를 배울 때 도장이 심연이면 노란띠, 파란띠까지 가는 게 수련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럼 수련은 뭔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 봐야 할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훈련입니다. 정적은 그 수련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한 가지를 찾는 단계입니다.

나비가 되기 전 누에고치에 있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는 움직이지 않는 상태이지요. 부동, 움직이지 않는 건 굉장히 힘듭니다. 사람은 자기 습관대로 움직이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선 움직이지 말아야 해요. 마치 100m 달리기 선수가 출발선상에 있는 폭력적인 멈춤, 튀어나오기 직전의 상태라고 할 수 있지요. 누에고치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안에서 천지개벽하고 있어요. 나비로 변하기 위해 눈도 만들어지고 코도 만들어지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정적은 조용한 변화이지요. 밖에서 들리는 소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있는 미세한 소리에 집중하고 전념하는 것입니다.

 

인생 2라운드를 준비하며 새로운 삶을 준비 중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훈련이네요.

100세 시대를 사는 50~60대는 지금이 진짜 인생의 전성기, 헤이데이입니다. 나머지 40~50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 자기 인생의 설계도를 정성스럽게 섬세하게 그려야 해요.

 

많은 중년들이 공감하면서도 막상 설계도를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습니다.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인생 설계자는 자신이에요. 자신이 깊이 생각하면 됩니다. 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느냐? 깊이 생각을 안 해서, 연습을 안 해봐서 그래요.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마세요. 조언도 필요 없어요.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소리를 듣는 게 중요해요. 생각이 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내 환경을 만들고 환경이 내 운명을 만듭니다. 사람들이 운명을 탓하는 것은 자기 생각, 자신을 돌아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인생 재설계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데 집중하는 것이 먼저겠네요?

저는 명상, 묵상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묵상이란 응시입니다. 응시는 자기 절제이며 나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한 연습입니다. 자신의 심연에서 나오는 희미한 목소리를 듣는 훈련이지요.

어떻게 하느냐? 눈을 감고 자기를 봐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에게 3인칭이 되어 바라보는 겁니다.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원제가 ‘그 자신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들’이에요.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위해 당부하고 싶은 말을 자기한테 한 겁니다.

자신에게 가장 혹독한 스승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3인칭으로 일기를 써보는 것도 좋아요. 글은 아주 정제된 생각이에요. 또 글을 모아 책으로도 낼 수 있고요.

 

세상에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과 조절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조절할 수 있는 것을 가려내는 힘이 분별력이고 그것을 발휘하는 능력이 용기이다.

 

삶의 원칙이 안 하기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나요?

안 하기는 수련에서 제일 중요한 대목입니다. 기독교, 불교, 힌두교 모든 종교는 하지 말라고 그래요. 십계명을 보세요. 전부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매일같이 묵상하면서 뭘 안 할까를 고민하는데 굳이 안 해도 되는 걸 안 하는 겁니다.

가장 크게는 체면 때문에 만나야 하는 사람, 강요에 의해 만나야 하는 사람은 안 만납니다.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나예요.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일치해요. 

또 제게는 하루하루가 올림픽 결승전이에요. 내가 지금 올림픽 결승전을 치르는데 휴대전화를 받고 있으면 되겠어요? 그래서 휴대전화 보는 시간도 오후 5시에서 6시로 정해놨어요. 휴대전화가 도움이 되는 기기지만, 나를 방해하면 안 되잖아요. 이런 식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일에 방해가 되는 걸 빼는 것이지요.

 

인간의 변화를 다룬 마지막 편 <승화>가 기대되는데요.

9개월 전 모든 직책을 벗고 내가 스스로 선택한 정적이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갖게 돼 정말 감사해요. 이 책도 완성할 수 있었고요. 이제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이 남았는데, 어떻게 나비가 될 것이냐, 변신을 어떻게 할 것이냐입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 해탈이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성령을 만난다고 하는데 ‘회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복이란 건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되는 거거든요. 맨 처음 애벌레는 나비가 되게 돼 있었어요. 그러나 나비가 되는 걸 모르고 헤매다가 애벌레로 죽는 게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내가 원래 되고 싶은 나로 조절하는 것에 대해 다룰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인생에서 더하고 싶은 게 있나요?

5년 전에는 생각이 다른 젊은이들이 만나 마음껏 뛰놀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자는 취지로 세운 건명원이 중요한 화두였지만, 지금은 다른 걸 하고 싶어요. 개인의 변화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와서 공부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성북동 쪽에 50여 명 정도 수련할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획 이인철 사진 박충열(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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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실
생각이 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내 환경을 만들고 환경이 내 운명을 만든다는 말씀이 공감가는 아침입니다. 내가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내 안의 소리를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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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
'무엇을 보다 어떻게' 참 마음에 오는 말입니다~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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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리
세상에 운은 없고 천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훈련의 결과이지요. 공감합니다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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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동자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소리를 듣는 게 중요하다고 하니 곰곰히 생각해 봐야겠어요.전성기 지금 바로 제2의 전성기에 접어 들었거든요.저도...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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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9058
인생 후반전 마무리에 가장 바람직함이 어떤 삶이 였는지?을 관조하여 스스로에게 답을 얻고 그래! 그런 너 였구나.! 라고 나 다음을 알고 살어짐이 행복이요.평화로운 삶이 아닐까고? 생각합니다.비로소 나의 향기를 위함에서...배철현선생님으로 인해 느신해진 마음을 조여 봅니다.감사합니다
202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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