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서 할리우드까지, 전세계를 사로잡은 ‘봉준호 리더십’

기사 요약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부터 아카데미 4관왕까지, 세계 영화판을 뒤집어버린 “봉보로봉봉” 봉준호 감독. 모두가 한 목소리로 칭송하는 봉준호 리더십의 비밀을 파헤쳐봤다.

기사 내용

 

 

 

요며칠 눈만 뜨면, TV만 켜면, 인터넷만 접속하면 어디 할 것 없이 ‘봉비어천가’가 넘쳐흐른다. 사실 지난 1년 새 봉준호 감독이 이룬 것은 한국 영화사는 물론이고 아시아 영화, 아카데미 92년 역사를 탈탈 털어봐도 전무후무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작년 5월 한국 영화 100년사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기생충>은 마침내 할리우드와 아카데미의 도도한 콧대마저 뛰어넘었다. 대만의 이안 감독이 제78회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적이 있지만, 정작 그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미국 배우들과 미국 자본으로 제작한 <브로크백 마운틴>이었다. 순수하게 한국영화로, 한국어로 제작된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작년까지는 ‘외국어영화상’(Best Foreign Language Film)으로 불렸으나 봉감독이 미국 매체 <벌처>와의 인터뷰에서 “오스카는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미국의 특정 지역에서 열리는 로컬 영화제”라고 발언한 직후 웬일인지 갑자기 ‘국제장편영화상(Best International Feature Film)'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감독상, 작품상까지 4개 부문을 석권하는 순간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영화계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틸다 스윈튼, 크리스 에반스, 제이크 질렌할 같은 톱배우들에게 공개적인 러브콜을 받고, 불세출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기립 박수를 이끌어내며, 쿠엔틴 타란티노를 ‘쿠엔틴 형님’이라고 부르는 요상한 패기의 소유자, 어느샌가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라버린 봉준호 감독. 무엇이 그를 그토록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그와 한 번이라도 작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엄지 척’, 입을 모아 ‘봉비어천가’를 부르게 만드는 봉준호 감독만의 특별한 리더십, 그 비밀을 찾아보았다.

 

 

  

 

봉준호 리더십 1
헛고생 시키지 않는 리더

  

봉준호 감독의 유명한 별명 ‘봉테일’은 촬영 전 치밀하고 철저한 사전준비, 매 장면 손수 만화처럼 자세히 그리고 주석을 달아놓은 별난 촬영 콘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작업한 국내외 스태프들, 영화 현장에 대한 설명을 들은 해외 감독들과 제작자들이 매번 경악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봉준호 감독이 촬영 컷 대부분을 남김 없이 사용하고 현장에서 추가 촬영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 ‘촬영하고 안 쓰는 컷이 별로 없다’는 건 꼭 필요한 장면을 꼭 필요한 만큼 촬영한다는 의미이고, ‘추가 촬영을 하지 않는다’는 건 강한 확신과 추진력으로 사전에 짠 계획을 변동 없이 밀고 나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코딱지만한 모임 총무라도 한번 해본 사람이라면 당장 납득할 것이다. 

 

영화 <괴물>의 시각효과 감독 케빈 래퍼티에 따르면, <괴물>에서 실제로 괴물이 등장한 장면은 딱 125개에 불과하다. 비슷한 장르의 영화에서 CG가 나오는 장면이 보통 수천 컷에 달한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스토리텔링과 치밀한 계획의 승리라고밖엔 말할 수 없다. 또 <기생충>은 “일이 많고 돈은 못 버는 업계”로 요약되는 한국 영화판에서는 드물게 표준근로기준법을 적용한 촬영현장이기도 했다. <설국열차>와 <옥자>를 제작하는 8년에 걸쳐 봉준호 감독은 미국식 조합 규정에 따라 영화를 찍는 노하우를 얻었고, 그 어떤 난해한 장면과 널 뛰는 로케이션에도 굴하지 않고 <설국열차> 76회차, <옥자> 77회차, <기생충> 77회차로 촬영을 마무리하며 처음 계획한 스케줄에 딱 맞추었다. 회차당 12시간 촬영을 준수하고, 영화 스태프들에게 미국이나 일본 수준에 뒤지지 않는 보수를 지급했다. 

 

“저 리더가 하자는 대로 하면 일이 제 시간에 딱 끝나고 돈도 제대로 받고 쓸데없는 헛고생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팀을 한번 상상해보자. 굳이 시키지 않아도 리더의 말에 따르고, 그를 믿고,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타 촬영장에선 촬영 외 시간은 거의 전용 트레일러에서 보낸다고 알려진 틸다 스윈튼도 <설국열차> 촬영 현장에서만은 감독 및 현장 스태프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며 즐겁게 지냈다고 한다. 

 

 

 

 

 

봉준호 리더십 2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봉테일

 

 

봉준호는 ‘함께 일하는 사람의 잠재력을 최대치까지 끌어내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봉감독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성공한 리더들의 공통점이기도 한데, 사실 말이 쉽지, 대체 어떻게 숨겨져 있는 남의 잠재력을 찾아서 끄집어낸다는 걸까?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잠재력이 어떤 건지도 정확히 모르고 산다.) 그간 봉준호 감독과 함께 작업했던 스태프와 배우들의 증언에서 그 비결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22년 전 한 영화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얼마 후 젊은 조감독이 내 삐삐 음성사서함에 장문의 메시지를 남겨놓은 것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아쉽지만 함께 작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번에 꼭 좋은 기회로 작업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정성을 다해 녹음한 내용이었다. 그 사람이 바로 봉준호 감독이었다. 당시만 해도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내가 왜 떨어졌는지, 애초에 떨어졌는지 붙었는지 여부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게 내게는 무척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배우 송강호/ 그는 그로부터 3년 후, 신인감독 봉준호의 영화 <살인의 추억>의 주연으로 선뜻 출연한다)


“내가 뭐라도 한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 (감독님은) 그걸 알아봐 주시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채찍보다 당근이 많이 필요한 사람인데, 감독님은 그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신 듯했다. 고맙고, 감사하다.” (배우 최우식)


 “나는 배우들 중 <기생충>을 가장 먼저 관람한 사람일 것이다. 언젠가 ‘폐암 투병 중이신 우리 아버지가 엄청난 영화광’이란 얘기를 감독님께 한 적이 있는데, 그걸 잊지 않으시고 어느 날 조용히 연락을 주시더니 ‘아버님 먼저 보여드리자’고 하셨다. 당시는 3월초라 영화 내용(특히 내가 등장하는 부분)이 절대 노출되면 안 되는 시기였는데도 극비리에 시사 기회를 만들어주셨다.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배우 박명훈)

 

 

상대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려면 일단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꼼꼼하게 관찰해야 한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관찰하려면 관찰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 봉준호 감독은 한 장면 출연이 전부인 단역 배우의 이름까지 모두 외워서 현장에서 그를 이름으로 불러준다고 한다. 그와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 모두가 자신의 인생작으로 그의 영화를 꼽고 또다시 봉준호 감독과 작업하고 싶어하는 이유다. 봉준호는 영화 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봉테일이었다.

 

 

 

 

 

봉준호 리더십 3
눈치 빠른 포커페이스

 

“감독님이 현장에서 화내는 걸 한번도 못 봤다.” “현장에서 큰 목소리가 난 적이 없다.” “언제나 현장이 하하호호 화기애애하다.” 봉준호 감독의 촬영현장에 대한 공통된 증언이다. 영화 <마더>에서 연기이긴 하지만 감히 ‘국민 엄마’ 김혜자의 뺨을 수차례 때려야 했던 배우 황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감독님이 슬며시 다가와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세게 때려주세요. 그게 김혜자 선생님을 위하는 거예요’라고 하셨다. 감독님이 똑같은 디렉션을 똑같은 내용으로 수십 번을 반복하시는데, 조용조용 목소리 높낮이도 없이 매번 똑같은 톤으로 얘기하시는 거다. 듣다 보니 나중에는 디렉션이 아니라 최면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조여정도 봉준호 감독의 현장을 ‘최고’로 꼽았다. “현장에서 배우의 고민은 감독의 고민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해야 하는 결정이나 선택이 엄청나다. 그런데 감독님은 겉으로 고민하는 티를 전혀 안 내고 그냥 유쾌하시기만 하다. 현장의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는 모두 감독님이 만드신 거였다. 배우는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연기하고, 내 안에 분명히 있지만 내가 크게 생각하지 못했던 디테일을 감독님이 꺼내주는 현장. 최고의 현장이었다.” 

 

사실 그냥 포커페이스이기만 한 리더는 좀 어렵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안 되기 때문에 아랫사람 입장에선 눈치도 슬슬 보게 된다. 하지만 포커페이스인 리더가 눈치가 빠르고 유쾌하기까지 하다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배우 이선균의 말로 대신하는 게 좋겠다. 

 

“대화를 많이 하지만, 가만히 보면 늘 감독님이 내 얘기를 더 많이 들어주신다. 소통이 잘 된다는 느낌이다. 영원히 (감독님에게) 기생하면서 숙주로 모시고 싶다.” 

 

 

기획 신윤영 김진영 사진 셔터스톡 

 

 

[관련 기사 보기]

 

 

>> 직업을 3번이나 바꾼 동해소주 오성택 대표의 창업스토리

 

>> 부부창업으로 제격, 떡집 어떠세요?

 

>>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지? 쉰 넘었는데 할 수 있나요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