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제의 동상이몽

기사 요약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대한 우리 이웃들의 동상이몽을 들어봤습니다.

기사 내용

주당 근무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인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지도 어느덧 세 달이 넘어갑니다. 퇴근이 빨라지면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된 직장인이 있는가 하면, 저녁 손님이 뚝 끊겨 울상인 식당 사장님도 있죠. 제도의 변화가 사회 곳곳에 달라진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공장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근무시간이 줄면서 월급도 확 줄었어요. 우리처럼 수당에 좌우되는 사람들은 초과근무를 해야 돈이 되는데, 그걸 막아놨으니 손해가 막심하죠. 자발적으로 일을 줄인 게 아니라서 다들 불만이 커요. 돈 들어갈 곳은 매달 비슷한데 월급이 줄었으니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고민이에요. 동료 가운데 아파트에 입주하려다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사람까지 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여긴 공장 근무자가 많은 도시라 이러다 미분양 아파트 사태가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나오거든요. 정부에서는 1인당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일자리가 확충되지 않겠냐고 하는데, 이 도시에 인구 유입이 늘지, 있던 사람들마저 떠날지 앞으로 지켜보면 알겠죠.
C시에 거주하는 박민규(가명) 씨


+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일부 대기업에서는 근로시간이 줄어도 급여는 그대로 주겠다는 방침이지만, 실제 많은 일터에서 근무시간 조정에 따라 급여가 줄어들었다. 정부는 일자리 확충을 위해 신규 인력을 채용하면 근로자 1인당 월 최대 80만원, 줄어든 급여 보전으로 근로자 1인당 월 40만원까지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년이 지나면 모두 사업주의 부담으로 돌아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옛날 같으면 술손님 때문에 새벽 2~3시까지 영업했는데, 요즘은 1시까지밖에 안 해요. 31년째 이 자리에서 골뱅이, 치킨을 팔았지만 요즘처럼 회식도 안 하고 술도 안 마시는 시절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들 집에 가서 술을 마시는지 술 주문량이 뚝 줄었어요. 가게 옆에서 유료 주차장도 같이 운영하고 있는데, 하루 15만원씩 수익이 나오던 주차장에서 요즘은 7만원 찍기도 힘드네요.
형님 가게에서 20년째 일을 돕고 있는 남호범 씨
 

+ 주류업계에서는 최근 업소용 소주 판매는 하락한 반면 가정용 소주, 맥주 판매는 증가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퇴근 시간이 앞당겨져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 저녁에 손님 구경하기 쉽지 않아요. 11시면 편의점을 정리하는 상황이죠. 앓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생존에 위협을 받는 수준입니다.
아르바이트 비용이 부담스러워 주말에는 직접 가게를 보고 있다는 왕성하 씨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니까 ‘세상 좋아졌다, 우리 땐 말이야’ 하는 꽉 막힌 어르신들을 보면 솔직히 어이가 없어요. 다행인 건 이런 제도가 생기고 나서야 업무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정당한 노동시간은 얼마큼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다는 거예요. 초반엔 말이 많겠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는 중이라 생각해요.
일을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회사원 김혜연 씨
 

다들 일찍 퇴근하고 일 적당히 하자는 분위기가 생겨서 그런지 몰라도 회식하기에 적합한 큰 식당들은 인기가 시들하더라고요. 확실히 큰 매장에 대한 문의가 줄긴 했어요.
종종 인터뷰 제안이 들어온다는 공인중개사 사무소 실장 한성희 씨
 

전년도랑 비교했을 때 20% 정도 매출이 줄었어요. 저녁에는 아예 손님이 없는 수준이고요.
그렇다 보니 종업원을 계속 세워둘 수가 없어요. 나는 바쁜 시간에만 잠깐 도와 달라고 하고 싶은데, 그러면 종업원 입장에서는 수입이 얼마 안 되니까 서로 곤란해지는 거죠.
최근 가게 문을 30분 일찍 닫기 시작했다는 전순자 씨
 

2024시간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24시간.
한국은 37개 OECD 가입국 중 멕시코(2257시간), 코스타리카(2179시간)에 이어 세 번째‘ 일 많이 하는 국가’다.
출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7년)

요식업 종사 40년 만에 이런 불황은 처음이에요. 김영란법, 미투 때문에 가뜩이나 매출이 뚝 떨어졌는데 주 52시간제까지 겹치면서 다들 저녁 장사는 텄다는 분위기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최저임금으로 인건비 정해놨죠, 김영란법으로 접대비에 상한 생겼죠, 이럴 거면 가게 매출도 정해줘야죠.

이 와중에 건물주는 내년 임대료를 5%나 올리겠다는데 사정을 듣고 보면 원망도 못 해요. 건물 보수며 관리 다 누가 합니까? 사람이 하잖아요. 인건비가 올랐으니 건물주도 세를 올릴 수밖에요. 저희 가게도 전체 매출의 30%가 인건비로 나가니 버틸 재간이 없습니다.
오히려 IMF 때가 나았다는 신규철 씨

 

주 52시간제 근무 때문에 저녁엔 구내식당 문도 닫는다면서요. 요즘엔 야근하는 손님들이 종종 식사를 하고 가시죠. 그러고 보니 남아 있는 직원들이 없는지 늘 혼자 오시는 기업 임원분이 생각나네요.
바쁘게 접시를 내가며 인터뷰에 응해준 최진기(가명) 씨

+ 주 52시간 근무를 맞추려다 보니 수행 비서 두 명이 교대로 근무해야 할 처지라 요즘 ‘손수’ 운전대를 잡는 ‘높으신 분’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후문.

 

저야 온몸으로 (주 52시간제 도입을) 느끼죠. 6시쯤 끝나야 출출하다며 오뎅이라도 하나씩 먹고 가는데, 4시면 하나 둘 퇴근하는 분위기라 영 장사가 안 돼요. 점심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간식 생각이 안 나잖아요(웃음). 오후 3~4시쯤 부서 간식 사 가던 사람들도 죄다 끊겼어요. 다들 부지런히 집에 가서 저녁 먹겠죠. 7시면 사람이 뜸해져서 얼마 전엔 요 앞 24시 마트가 문을 닫더라고요.
전년 대비 10% 매출이 줄었다던 박순옥 씨

 

10.3~14.7%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오후 6시 이후 광화문, 판교의 음식 및 주류 업종 매출 하락 비율
출처 KT, BC카드 공동 조사(8월 19일~9월 15일)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사내 식당을 이용하고, 점심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설명하자) 어머, 그럼 사람들이 밖으로 잘 안 나오는 거 아니에요? 나는 점심시간에 전단지를 500장이나 돌려야 하는데. 내가 전단지 배포 20년 경력자인데, 다녀보면 동네마다 사람들 특징이 있어요. 여기 광화문은 많이 배우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많아 기분 좋게 전단지를 받아준단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이곳을 선호하는데 다니는 사람이 점점 줄면 어쩌나 몰라.
전단지를 배포하며 건강을 되찾았다는 81세 이영애 씨

 

늘 야근이다 주말 근무다 바쁘던 남편 회사에 주 52시간 근무가 도입되면서 확실히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어요. 지난주엔 딸과 함께 가겠다며 주말 문화센터에 등록하더라고요. 수요가 많다 보니 백화점, 마트에서 각종 강좌가 엄청 늘어났고요.
주부 최진미(가명) 씨

 

아침에 헐레벌떡 광화문, 강남으로 가자는 손님들이 심심찮게 있었는데, 이제는 출근 시간을 늦춰서 그런가 그런 손님은 별로 없어요. 5시면 퇴근을 하는 데다 전같이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도 아니라 요즘은 회식을 해도 9시면 파장 분위기래요. 다들 적당히 취해 지하철 타고 집에 가는 거죠(웃음). 새벽에 술 취해서 택시 잡는 손님 보면 다 대학생이에요. 직장인들은 요즘 그렇게 안 놀아요. 오죽하면 취객 분실물이 다 줄었어요. 택시도 어려워요.
20년 차 경력을 자랑하는 김혁태(가명) 씨

 

+ 카카오택시가 최근 발간한 리포트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인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한눈에 보인다. 대기업 본사, 관공서, 금융사, IT 기업 등이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 밤 10시부터 새벽 2시에 택시를 호출한 비율은 확연히 감소한 반면, 초저녁 시간대 호출률은 오히려 높아졌다. 영화관, 박물관, 미술관, 전시관, 체육관, 헬스클럽 등으로 향하는 비율도 폭증했다.

 

<좋아요> <싫어요>

- 예전엔 초과근무 단위가 2시간이라, 일을 다 해놓고도 기다려야 했는데 이제는 10분 단위로도 체크되기 때문에 불필요한‘자리 지킴’을 하지 않아도 돼요.

- 셧다운이라고, 5시 30분만 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져요.

- 예전엔 부장님 눈치 보느라 30분씩 더 앉아 있다 갔는데 이젠 칼퇴근이 당연한 분위기예요.
야근한 만큼 대체 휴가가 딱딱 인정되니까, 요즘은 야근해도 딱히 불만 없어요.

- 자율 선택 근무제라 2주에 80시간만 채우면 늦게 나오든, 일찍 들어가든 아무도 신경 안 써요. 전 7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하는데 아침에 출근길이 그렇게 한산할 수 없어요. 다음 달엔 헬스클럽에도 다니려고요.

- 오늘 3시간 야근했으면 내일은 3시간 늦게 출근해도 돼요.

- 저희 회사는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30분 단위로 출근 시간을 지정할 수 있어요.

- 주 52시간 넘기는 게 더 대단해요. 저희 회사는 외국계 기업이라 주 40시간대 근무거든요.

- 저의 실제 주당 근무시간을 따져보니 75~80시간이나 되더라고요. 언제쯤 저희 회사도 주당 52시간제가 적용될까요? 솔직히 대기업 다니는 친구와 비교해 박탈감이 들어요.

- 근무시간만 짧아지면 뭐 해요. 업무량은 달라진 게 없는데. 회사 PC 꺼지면, 노트북 들고 커피숍 가느라 오히려 더 불편해졌어요.

- 규정은 지켜야 하는데, 일은 산더미라 꼼수를 쓰게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은행에 일을 보러 다녀왔다,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하는 사유를 만들어 적으래요. 따지고 보면 그거 기록하는 게 또 일이에요.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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