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희라의 카르페디엠

기사 요약글

삶에서 우연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내게 아픔을 준 과거 일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잖아요.

기사 내용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
누구나 다 알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은 드물다.
하희라는 그 드문 사람 중 한 명이다.

촬영 전날 밤, 하희라의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하희라가 스튜디오까지 이동 경로를 보니 시간이 빠듯할 듯싶다며 일정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 직접 자신의 동선까지 챙기는 하희라의 준비성에 다소 놀랐다.

촬영 당일, 역시 그녀는 스튜디오에 10여 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이날 화보 촬영의 조력자는 남편 최수종이다. 연기자로서 공백기를 가지며 재충전 시간을 갖고 있는 아내에게 촬영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아내바라기’답게 현장에 오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같은 시각 미팅이 잡혀 무척 아쉬워했다. 그녀는 화보 촬영이 오랜만이라고 했지만, 30여 년 연기 인생이 선물한 완숙미를 뽐냈다. 그리고 여전히 촬영을 즐겼다.

 

시간관념이 철저하네요.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약속을 잡을 때 사람들은 1시간 아니면 30분 단위로 나누잖아요. 저는 5분, 10분 단위로 나눠요.‘11시 5분에 만날까?’ 하는 식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11시면 11시이지 왜 그렇게 약속 시간을 잡느냐’며 웃어요. 어려서부터 몸에 밴 습관이에요. 내가 11시에 도착할 수 있으면 11시로 약속을 잡지 않아요. 11시 10분으로 잡지요. 상대가 늦더라도 내가 10분을 기다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저만 그렇지 상대방이 늦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답니다(웃음). 제 지인들은 제가 기다리는 것을 아니까 약속 시간에 늦질 않아요.
 

나만의 시간 관리 요령을 갖고 있네요.
5분 안에 삶이 바뀔 수도 있잖아요. 내가 남의 시간을 빼앗아서는 안 되죠. 그래서 모든 시계를 3분 정도 당겨놔요. 그 이상 당기면 시간을 당겨놨다는 생각에 여유를 부리거든요. 일상에서도 30분을 당겨 살아요. 그날 약속이 있어 집에서 11시에 나가야 한다면 10시 30분까지 준비를 끝내요. 나머지 30분은 예상치 못한 일을 대처하는 시간이지요. 안 해도 되는 실수를 줄일 수 있고 일상이 한결 여유로워져요. 하루를 굉장히 길고 알차게 보낼 수 있고요. 이렇게 사는 것이 내가 힘들면 스트레스일 텐데 지금은 일상이 돼서 좋아요.
 

잠시 재충전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자신에게 어떤 투자를 했나요?
1년 전부터 유화를 배우고 있어요. 제주도 다빈치박물관에서 다빈치 작품을 보고 매료됐거든요. 그 후에 아이들과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갔는데 그곳에서 우피치 미술관을 관람하며 그림을 배우기로 결심했죠. 무작정 시작했는데 일상에 도움을 많이 줘요.

 

어떤 점이 삶에 보탬을 주던가요?
열세 살부터 연기자로 살며 내가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유화는 실수해도 상관없어요. 수채화와 다르게 유화는 실수해도 덧칠하면 되거든요. 실수에 대한 부담이 없어 정말 좋아요. 요즘에는 라인 드로잉도 배우고 있어요.

최수종 씨와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작품 활동이 없으면 일상을 공유해요. 함께 산에 가고, 볼링 모임에 가고, 운동하면서요. 부부가 함께 취미 활동을 하니까 대화가 많아 좋아요. 서로를 너무 잘 알게 돼 갈등도 없어요. 남편이 나를 제일 많이 이해해주니 고민이 있을 때 굳이 주변 친구를 찾을 이유도 없고요. 다음 주에 저희 결혼기념일이 있고 12월에 저희 두 사람의 생일이 있어요. 요즘 저의 40대 마지막 생일을 멋지게 보내야 한다며 뭔가 꾸미는 듯해요(웃음).

한 달밖에 안 남은 40대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요?
특별한 의미는 두지 않아요. 30대에 40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았고, 40대도 50대를 바라보면서 준비했어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더 열심히 운동하고 나란 사람이 더 자랄 수 있도록 내 시간을 가졌고요. 그래서 50대의 내가 기다려져요. 왜 50대에 멋진 분들 많잖아요. 자기 삶을 너무 잘 살고 계신 분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삶을 살아서 40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요.

내 미래를 자주 그려봅니까?
그려보지만 미래를 알 수 없잖아요. 오늘 하루를 잘 사는 수밖에 없죠. 내가 오늘 뿌린 씨앗이 10년 뒤에 내가 먹게 될 열매잖아요 그래서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하루’라는 생각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요. 남편에게 유언도 남겼어요. 내가 죽는 순간 어떤 생명 연장 장치도 하지 말고, 기도해주고 내가 좋아했던 찬양 한 곡만 불러 달라고요. 최수종 씨도 그럴 거래요. 우리 둘만 남기면 안 돼서 아이들에게도 이야기를 했지요.

삶의 마무리까지 준비해놨네요.
저희는 장기 기증, 인체조직 기증 서약을 했어요. 되도록 더 건강한 장기를, 건강한 피부를 제공해야지요. 50세가 넘으면 이제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는 데 동의해요. 그래서 남편과 삶의 마무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돼요. 최수종 씨가 저보다 일곱 살 많아요. 그래서 ‘나보다 7년만 더 살라’고 하지요(웃음).

내년이 결혼 25주년이에요. 은혼식 이벤트는 어떻게 준비 중인가요?
최수종 씨가 뭔가를 하겠다고 하기에 알았다고 그랬어요(웃음). 어르신들 모시고 뭔가를 하려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는 저도 몰라요. 제가 스물다섯에 결혼했어요. 내년이면 결혼해서 산 날이 더 많아져요. 저는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 한 가지 약속한 것은 은혼식 반지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새기기로 했어요. 저희가 좋아하는 말이에요. 내가 힘들었을 때도 위안이 되고요. 기쁘고 행복했을 때도 교만하지 않고 너무 빠져 있지 말자고 저를 돌아보게 하는 말이거든요. 물론 우리가 1년 뒤에 계획한 대로 은혼식을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요. 그래도 좋은 것을 생각하고, 좋은 목표를 가지면서 그날을 위해 잘 살아가는 거잖아요. 저는 과정에 의미를 둬요. 책에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우리 둘은 이런 이야기에 맞장구치며 공감해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는 어떻게 이겨냈나요?
저희라고 왜 고난이 없었겠어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마음으로 그 순간을 견뎌냈죠. 몇 년 전에 최수종 씨가 낙마 사고를 당했을 때예요. 응급수술을 위해 촬영장이 있던 지방에서 서울로 이동 중이라는 말을 듣고 아이들이 울었어요. 사고 3주 전에도 낙마 사고로 인대를 심하게 다쳤고, 2주 전엔 교통사고가 났어요. 그렇게 3주 연속 그런 일이 생기니까 순간 너무 기가 막히더라고요. 정신을 차리고 우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도 왜 이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확실하게 이건 말해줄 수 있어. 엄마가 너희를 낳기 전에 세 번의 유산이 있었어. 그 세 번의 유산이 없었다면 지금 너희들은 태어나지 못했어. 엄마에게 그 세 번의 유산은 괴로움과 두려움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감사해. 왜냐면 너희들이 태어나서 얼마나 축복이야. 지금 이 힘든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감사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거야.’ 정말 그 순간이 지나면 죽을 것처럼 괴롭던 아픔도 다 지나가더라고요.

 

삶의 태도가 무척 긍정적입니다.
삶에서 우연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내게 아픔을 준 과거 일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잖아요. 의미가 있어서 내게 닥친 일이라고 받아들여요. 그래서 내게 일어난 작은 일조차 감사하게 여깁니다. 가끔 저더러 ‘맨날 뭐가 그렇게 감사하냐?’고 묻는 분들도 있어요. 있는 그대로 감사하니까 감사한 거지요(웃음).

두 분이 나눔에 열심인 이유가 있네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의 기쁨을 알게 돼서죠. 최수종 씨는 굿네이버스, 저는 하트하트재단의 홍보대사로 있어요. 필리핀에 사는 아이들 세 명을 지원하는데 이 아이들이 저희에게 주는 행복감이 무척 커요.

부부가 모두 나눔 활동가들이라서 주위에서 지원 요청이 많을 것 같습니다. 돕는 기준을 어떻게 세웠나요?
이런저런 요청이 많이 와요. 예전에는 무조건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분별을 잘하려고 노력해요. 선한 도움이 악용될 수 있거든요. ‘그 사람을 어떻게 잘 도와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요. 그러려면 도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해요. 외국일 경우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요. 그리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렸어요.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연결해주지요.

요즘에는 어느 쪽에 관심을 두고 있나요?
최수종 씨의 매형인 조하문 목사의 ‘사랑의 빛 공동체’에서 나눔 활동을 해요. 연탄 봉사도 하고 시설에 있는 아이들과 체육대회도 하고요. 요즘에는 화상 환자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몇 년 전에 피부이식의 어려움을 전해 듣고 전화로 인체조직 기증을 신청했고, 지금은 목소리로 재능 기부를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나눔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조언해주세요.
일단 나눔에 관심을 두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관심을 가지면 ‘내가 무엇을 거창하게 해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도움을 줄 곳이 보일 겁니다.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