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중에는 늘 ‘대륙’이라는 두 글자를 또렷하게 실감하곤 했다. 하지만 ‘최대’, ‘최고’, ‘최장’, 이런 단어들이 강소성에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들은 긴 세월 유유히 흘러온 뿌리 깊은 감성들, 그 감성의 물줄기들이 하나로 모인 거대한 호수였다.

EDITOR + PHOTO김관수

중국인들은 강소성을 이토록 예찬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은 낯선 이름 ‘강소성’. 중국에서 가장 면적이 큰 성이며, 중국에서 가장 긴 양쯔강과 세계에서 가장 긴 운하인 경항대운하가 교차하는 지리적 특성 탓에 예로부터 운송과 교역의 중심지로, 그리고 강남江南 경제의 중심지로 이름이 높던 지역이다. ‘물길이 만나는 곳에 사람이 모여들고, 사람이 모여드는 곳에 돈이 넘쳐나고, 돈이 넘쳐나는 곳에 문화가 꽃을 피우는 세상의 이치가 강소성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강소성의 성도인 난징과 2600년의 역사를 지닌 양저우 그리고 인근의 경제 도시인 전장을 둘러보며 내내 그 흔적들을 찾으려 애썼던, 또 그렇게 혼자만의 확신마저 갖게 됐던 값진 고증의 시간들.

양저우扬州

춘추전국시대에서 시작된 무려 26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 베이징부터 항저우를 잇는 경항대운하가 흐르는 양저우는 고대 교역의 중심지로 소금의 생산과 유통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예술가와 학자들을 후원하여 문화예술을 꽃피웠다. 양저우에는 강남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호수와 정원, 고풍스러운 전통가옥 등이 남아 있으며 신라 시대의 학자 최치원을 위한 기념관이 있어 당시 신라와 중국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미식의 힘, 조식문화

이른 아침 안내를 받고 찾아간 아침식사 장소는 뜻밖에도 화려했다. 테이블 위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음식들은 저녁 만찬이라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하고 넉넉했다. 육즙이 가득한 만두와 실처럼 가는 두부 요리, 정갈한 양저우 식 반찬, 함께 음미하는 따뜻한 차 한 잔까지. 도시의 일상에서 가장 분주한 시간, 아침식사를 거르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 버린 요즘에도 이렇게 격식을 갖추고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모습은 양저우를 찾은 여행객들이 제일 먼저 경험하고 맛봐야할 그들만의 전통문화였다. 과거 소금을 생산하고 판매하며 부와 여유를 얻게 된 양저우 사람들은 아침식사를 함께 하며 간밤의 안부를 묻고 하루의 일을 계획하고 의논했다. 이러한 그들의 조식문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양저우 사람들은 가족이나 연인들끼리 전통음식점에 앉아 아침식사를 함께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양저우가 중국 4대 요리 중 하나인 회양요리의 본 고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문화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이른 아침에 즐기는 특별한 미식체험은 삶의 달콤함을 음미하며 시작하는 양저우 여행의 백미였다.

Info. 회양淮揚요리

일반적으로 중국의 4대 요리로 광둥요리, 쓰촨요리, 산둥요리, 회양요리를 꼽는다. 회양요리는 강소성의 난징과 양저우 등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중국 남부의 풍부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이 특색이다. 세심한 불 조절을 통해 신선함과 아삭함, 부드러움 등의 다양한 식감을 구현하고, 정교한 칼질로 실처럼 가는 요리를 연출하기도 한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볶음밥의 원조 역시 회양요리로 알려져 있으며, 계란과 소시지, 오이, 당근, 양파 등을 넣어 만든 양저우의 볶음밥은 대표적인 회양요리 중 하나로 꼽힌다.

 

신라의 천재를 만나다, 최치원 기념관

신라 판 비운의 천재로 일컬어지는 학자이자 문장가 고운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이름을 양저우에서 만났다. 한국에서도 쉽게 듣기 어려운 그의 이름을 내건 기념관과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가 활동하던 9세기 무렵,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양저우와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당시 신라는 엄격한 신분제인 골품제로 인하여 출세에 한계가 있었고, 6두품 집안 출신이었던 최치원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기에 이른다. 꽃다운 18세의 나이에 빈공과에 장원으로 합격했고 양저우에서 관직 생활을 했는데, 당시 소금 장수였던 황소가 장안을 점령하고 스스로를 황제로 칭한 ‘황소의 난’이 일어났다. 이때 황소의 토벌에 참여한 최치원은 ‘토황소격문’을 써 황소를 진압했고 중국 전역에 그 이름을 떨쳤다고 전해져온다. ‘황소가 읽다가 너무 놀라 침상에서 굴러 떨어졌다’, ‘황소를 격퇴한 것은 칼이 아닌 최치원의 글이다’. 단지 이 두 문장에 담긴 역사적 사실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양저우를 찾아야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중국마을 산책, 개원个园과 동관가东关街

중국의 4대 정원 중 하나인 양저우의 개원 입구 담벼락 너머로 햇살을 가득 머금은 초록의 대나무들이 푸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강렬한 오후 햇빛을 막아주는 대나무 숲 속을 걸으며, 개원을 지은 부유했던 청나라 소금상인 황지균黄至筠의 마음을 엿본다. 전형적인 중국 남방지역 형태의 정원에는 이곳 주인의 마음을 담은 사계절의 풍경이 숨 쉬고 있다. 숲 속을 지키는 연못과 연못에 핀 기묘한 모습의 조각들과 석가산들, 무심코 지나치면 아쉬운 계절마다의 오묘한 작품들이 끊임없이 발길을 붙잡는다. 군데군데 눈으로 바라본 풍경을 마음속에 담고 가는 공간들이 있다. 주인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그곳들. 이 집의 남자들이 손님을 맞이하던 사랑방 같은 공간들이다. 차담을 나누며 하루하루 변해가는 개원의 사계를 나누던 이들의 풍경을 그려봤다. 그들의 대화는 늘 같은 주제일지언정 대화 속 소재는 늘 다른 모습으로, 또 다른 언어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지나 개원의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개원의 담벼락을 옆에 두고 이어지는 기다란 골목은 다시 보통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실 세계다. 약 1.2킬로미터에 이르는 옛 중국거리 동관가. 붉은 조명이 하나 둘 켜지며 더욱 아늑해진 이 거리에는 상인들과 현지 주민들의 삶이 한데 뒤섞여 어둑해져 가는 시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중국식 회색벽돌로 지어진 낮은 지붕의 건물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기다리는 다채로운 모습들에 발걸음이 바빠졌다. 하나하나 들여다보지 못하는 아쉬움, 어디선가 이 모든 풍경을 전망하고 싶은 간절함, 중국의 10대 역사거리를 걷고 있다는 여행의 설렘. 동관가를 가득 메운 그 모든 감정들이 늦은 밤까지 긴 불빛의 행렬을 따라 이어졌다. 개원에서 시작해 동관가의 입구를 빠져나올 때까지의 마을 산책은 풍요롭던 한 시절 양저우의 낮과 밤의 세상을 걸었던, 시간으로 남았다.

 

아름다움이 수향水鄕에 더해진 이름, 수서호 瘦西湖

양저우에서 ‘수향水鄕’이라는 단어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수서호. 중국의 유명한 호수 위 정원으로 이름난 수서호는 양저우의 서쪽에 있어 서호라고 불렸지만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꼽히는 항저우의 서호와 이름이 같아 ‘마르다’, ‘작다’라는 의미의 수瘦를 붙여야 했다. 그런 사연을 알고 난 뒤에 수서호를 찾아서인지 유람선을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내내 몇 년 전 다녀왔던 항저우의 서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서호가 바다라면 수서호는 이름 그대로 호수, 그래서 호수의 정취는 더욱 깊고, 호수 위를 떠도는 여행자의 마음은 더욱 따스했다.

천하에 36개의 서호가 있지만 양주의 서호가 제일이라는 의미의 ‘천하서호, 삼십유육, 유양주적서호天下西湖，三十有六，惟扬州的西湖’ 를 온전히 느끼는 데에는 곳곳에 자리 잡은 여러 건축물들도 힘을 보탰다. 양저우의 상징과도 같은 오정교와 수양제가 중국 최고의 미인이라는 양주 미인 24명과 함께 야경을 즐겼다는 24교 등이 바로 그곳들. 유람선은 중간 중간 유람객들을 수서호 곳곳의 명소로 안내했고, 잠시 뱃놀이를 멈추고 호수를 둘러싼 수려한 자연 속을 거닐다 보면 아기자기한 재미들이 하나씩 손님을 맞이했다. 복을 부르는 조각상, 전통 악기 연주와 인형극 공연, 양저우의 볶음밥 시식과 작은 수공예 만들기 체험까지, 꽃밭에 만발한 여러 색의 꽃잎처럼 수서호에는 예쁘장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가득했다.

 

전장 鎭江

양쯔강과 경항대운하가 합류하는 곳에 자리 잡은 전장은 양쯔강과 경향대운하를 연결하는 하늘다리, 즉 ‘천교天桥’ 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장은 일대에서도 가장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춘 교통의 요지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난징이 중국의 수도였을 당시에는 강소성의 성도였으며, 금산사와 서진고도 등의 명승고적이 남아있다.

 

백사의 슬픈 운명을 품은, 금산사 金山寺

양저우에서 1시간가량 이동한 뒤 도착한 전장의 금산사 앞마당에 연꽃들이 만발했다. 금산사가 반가운 건 연분홍 꽃이 우아하게 피어있는 풍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곳에 왕조현과 장만옥이 열연했던 서극 감독의 영화 <청사>의 배경이 된 이야기 <백사전>의 전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4대 민간 전설로 전해오는 백사전은 인간이 되기 위해 1천 년 동안 수련을 했던 백사와 청사의 비극적인 운명을 노래한다. 백사 소정은 속세로 내려와 허선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금산사의 법해스님은 소정이 자신의 선단을 훔쳐 먹은 것을 알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허선에게 소정이 뱀이라는 사실을 알린 뒤, 소정을 백사로 되돌리고 뇌봉탑에 가둬버린다.

중국식 기와가 겹겹이 층을 이뤄 금산을 뒤덮고 있는 금산사가 왠지 서글퍼 보이는 것도 잠시, 절 뒤에 우뚝 솟은 팔각칠층의 전심목첨탑이 있는 금산의 정상에 올랐다. 산 아래로 펼쳐진 전장의 풍경이 펼쳐졌다. 양쯔강을 가운데 두고 형성된 도시는 여전히 한 편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TIP. 금산사를 한 눈에

‘금산사 안에 산이 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평지가 아닌 산기슭에 층층이 쌓여진 금산사의 모습을 한 눈에 담을 수 없어 생긴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대웅보전 지붕 위에 설치된 볼록 거울 속에 금산사가 모두 담겨져 있다. 멀지만 금산사의 전경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세월을 넘나드는 공존, 서진고도 西津古渡

한 때 사람과 물자의 이동으로 북적거리던 나루터가 지금도 옛 마을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당나라의 명시인 이백과 백거이가 이곳에서 시구를 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서진고도가 그곳이다. 서진고도의 마을 입구에서 느꼈던 첫 인상은 말끔한 옷차림의 나이 지긋한 노부부의 모습이었다. 회색빛 돌로 골목을 채운 바닥에서부터 집과 지붕까지 모든 것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긴 세월의 흔적은 지우지 못한 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발걸음을 따라 하나씩 갈라지는 골목 속으로 들어서니 또 다른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관광지로 개발되며 들어선 카페와 음식점들,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회색빛 풍경 위를 하나씩 채색하며 시간의 간격을 좁혀놓고 있었다. 이곳은 약 10년 전부터 그렇게 현대적으로 변해오며 사람들이 살던 마을에서 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련된 여행지로 모습을 바꿔왔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도 있다. 옛 영화롭던 시절의 분주했던 나루터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짙게 패인 수레바퀴 자국들, 한 때 바다의 안전을 책임졌던 오래된 구조선의 모습들, 길 한 가운데를 여전히 지키고 선 석탑 그리고 서진고도 뒤편의 대도정에서 내려다보는 질서정연한 서진고도의 전경이 옛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었다. 부족한 여행 일정으로 미처 다 듣지 못했던 서진고도의 이야기가 지금도 못내 궁금하다. 어둠이 내리면 더욱 아름답게,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세월을 넘나들 것 같은 그 풍경을 다시 찾아볼 날을 기약해본다.

 

난징 南京

현재 강소성의 성도이자 명실상부 강소성을 대표하는 도시이다. 중국의 4대 고도 중 하나로 과거 오, 송, 양 나라의 도읍지였으며,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남아있는 도시로 우리와는 역사적 동질감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뿌리를 바탕으로 최대, 최고의 수식어가 붙은 다양한 종류의 문화유산을 비롯해 현대적인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진 각양각색의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황제의 사후세계, 명효릉 明孝陵

1368년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약 277년의 명 시대를 건국한 명나라 태조 주원장과 마황후의 무덤이다. 1381년부터 32년에 걸쳐 건설된 명효릉은 명나라의 첫 황릉이자 난징시 최대의 제왕능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명효릉으로 향하는 길인 신도神道에 들어섰다. 전란으로 신도를 지키던 많은 석상들이 소실됐지만 여전히 많은 석상들이 길을 지키고 있다. 사자, 해태, 낙타, 기린, 코끼리 등 모두 24마리의 석상이 근엄한 표정으로, 때로는 선 채로, 또 다른 석상은 앉은 채로 명효릉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서 있는 동물과 앉아 있는 동물의 차이가 궁금하던 차에 길을 안내하던 가이드에게 재미있는 설명을 들었다. 서 있는 동물은 지금 근무 중인 모습을, 앉아 있는 동물은 휴식 중인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동물들은 각각 2교대 근무를 서고 있는 중.

신도와 거대한 비석을 지나 드디어 황제의 무덤 입구인 문무방문에까지 다다랐다. 과거에는 황제의 가족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는 성벽을 지나 나타난 명효릉은 딱히 무덤의 모습을 구분할 수 없는 거대한 야산. 더 이상의 출입이 금지된 그 모습은 살아생전 도굴을 피하고자 애를 썼던 주원장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였을까.

Info. 난징의 야경 즐기기

난징의 밤은 화려하다. 물길을 따라 도시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들이 화려한 빛을 반짝이고 있다. 이런 난징의 야경을 즐기기 위해서는 난징 최고의 명소 중 하나인 부자묘夫子庙 앞으로 가야한다.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부자묘는 공자를 존경한다는 뜻의 '공부자孔夫子'에서 명칭이 유래된 곳으로, 일반적으로 사당을 비롯해 주변의 번화가 일대를 가리키며 주변 지역의 모든 건물이 전통양식을 유지 하고 있어 난징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야경은 부자묘 앞을 흐르는 진회하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곳에서 유람선을 타고 야경 감상을 위한 뱃놀이를 즐길 수 있으며, 선착장 앞은 야시장 등이 서 또 다른 밤의 풍경을 선사한다.

 

22세기 부처님 세상, 우수산 牛首山

해발 242.9미터 높이의 우수산에 올랐다. 남북으로 솟아 있는 두 봉우리가 마치 소의 뿔을 닮아 소머리를 의미하는 ‘우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우수산은 중국 선종禪宗 우두종牛頭宗 의 발상지로 남조에서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약 30여개의 사찰이 있었으며, 당나라 시기의 가장 유명한 3대 불교 도량 중 하나였다. 이곳에 세계 불교문화의 새 유산으로 불정궁佛頂宫과 불정탑佛頂塔, 불정사佛頂寺와 우두 선문화 단지 등이 새롭게 조성 중이다. 불교와 관련된 곳이라는 이야기에 잠시 떠올렸던 보통의 이미지는 우수산에 도착하는 순간 모두 사르르 사라져버렸다. 석가모니의 곱슬곱슬한 머리를 형상화해서 건설했다는 불정궁은 지금까지 갖고 있던 불교시설에 대한 편견을 깬, 21세기마저도 초월하는 최첨단형 부처님 세상이었다. 지하 6층부터 지상 3층까지 총면적 13.6만㎡의 석가모니 두정골頭頂骨 사리가 봉안된 불정궁으로 들어서는 순간은 그래서 조금은 더 신비스럽고 신성하게까지 느껴졌다.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된 지하궁전으로 내려갈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차츰 더 강렬하고 화려해졌다. 동으로 제작된 거대한 와불 주위로 펼쳐진 석가모니의 일생 이야기를 보여주는 선경대관禪境大觀은 마치 석가모니가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쯤 태어나 수행에 들어간다면 겪게 될 풍경을 가상으로 보는 것 같았다.

지하궁전의 하이라이트는 두정골 사리를 공양하는 성탑인 사리대탑舍利大塔과 이 탑이 모셔진 천불전千佛殿. 내부의 모든 공간에서 레드와 옐로우 그리고 다크골드가 뒤섞여 뿜어내는 강력한 영적 에너지는 불교신자가 아닌 이들의 마음마저 부처님의 곁으로 가져갈 듯 매혹적이고 황홀했다.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면 믿지 못할 것 같은, 눈이 멀기라도 할 듯 웅장하고 화려한 부처님 세상은 이제 첫 단계의 공정을 마쳤을 뿐이다. 마지막 3차까지 계속될 끝을 예상할 수 없는 그 어마어마한 모습이 계속해서 궁금해질 것 같다.

 

불탑의 신세계, 대보은사 大報恩寺

중국 남부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찰이라는 수식어만으로도 기대를 한껏 부풀렸던 대보은사는 가장 먼저 거대한 유리보탑을 선보였다. 나무와 돌로 만든 탑이 아닌 유리로 만든 탑은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던 처음 만나는 진풍경.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유리보탑은 건립 당시 높이 약 78.2미터, 지름 약 30미터로 유리기와를 한 장씩 쌓아 만들었고, 146개의 등불이 밤하늘을 밝혔다고 하며, ‘중세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중국 최고의 탑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대보은사와 함께 소실됐다가 새롭게 복원을 거쳐 지난 2015년 다시 우리 앞에 돌아오게 된 새로운 유리보탑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어둑해진 저녁, 그 풍경을 기대하며 먼저 유물전시관과 불교체험관을 찾았다. 과거 유적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IT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부처님의 사상과 이야기를 담아낸 불교체험관의 작품들은 우수산의 지하궁전에서 경험했던 부처님 세상과는 또 다른 세계를 선사했다. ‘보은報恩’이라는 주제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는 이곳 또한 시각적으로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다가도 어느새 셔터를 누르러 달려가야 할 만큼.

땅거미가 내려앉은 시간, 다시 유리보탑 앞으로 돌아왔다. 대보은사 여행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 '보은성전報恩盛典' 공연이 진행되는 무대가 바로 유리보탑 앞의 야외무대. 역시 ‘보은’을 주제로 진행된 약 2시간가량의 공연은 대규모 야외무대가 비좁게 느껴질 만큼 화려한 공연단의 퍼포먼스와 다양한 무대 효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시선강탈로 꼽을 수 있었던 건, 유리보탑을 또 하나의 무대로 삼아 폭풍 같은 빛의 환희를 선사했던 장면들. 문화재도 예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신선함과 문헌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과거 유리보탑의 빛의 향연을 동시에 두 눈에 담았던 순간을 ‘신세계’라는 표현 외에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초를 가지고 무대를 지나 유리보탑 앞에 가지런히 놓아두는 관객들의 마음속에는 부처님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강소성 여행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한 감사도 함께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