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진섭의 희망사항

기사 요약글

‘새들처럼’은 당시에 사람들의 아침을 깨우는 알람이었지

기사 내용

촬영장에 그의 히트곡 ‘새들처럼’이 흘러나오자, 노래를 읊조리던 변진섭이 예전 추억을 살포시 꺼낸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자란 30대 후반 이상의 스태프는 “맞아! 맞아” 하며 ‘둘리 오빠’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너에게로 또다시’ ‘희망사항’ 등 많은 히트곡과 관련된 뒷이야기가 이어지며 촬영장에는 웃음이 넘쳐났다. ‘응팔 세대’의 아이콘이 데뷔한 지 30주년을 맞았다. 변진섭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7월 1일부터 전국 투어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조만간 정규앨범도 나오고, 11월 개봉 예정인 가족영화 <내게 남은 사랑을>에는 그의 노래가 여러 곡 삽입될 예정이다.

촬영할 때 보니 소녀 팬을 사로잡던 미소는 여전하네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고마운 유산이에요. 어머니가 굉장히 밝은 미소를 지녔고 낙천적이셨거든요. 어머니를 닮아 저도 긍정적인 편이에요. 지나간 일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 편이고요.

30년 동안 꾸준하게 활동해온 자신에게 해준 말은 없나요?
‘진섭아 여기까지 오느라 참 수고 많았다’고 했지요. 30년이 길다면 긴 세월인데, 매년 무대에 서서 공연을 했기에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30주년이라는 소식을 듣고 공연장에 찾아와준 팬들이 저보다 더 기뻐해주세요. 그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내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제 제 노래 인생의 절반을 돈 것이지요.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계기로 삼고 있어요. 이전 30년을 거울삼아 앞으로 30년만 더 무대에 서고 싶어요(웃음).

요즘 내려놓는 삶에 사람들이 관심이 많습니다. 한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무게를 어떻게 내려놓았나요?
정상에 섰으면 이제 내리막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데뷔 시절부터 끊임없이 들어서인지, 정상을 의식하지 않았어요. 배부른 소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오랫동안 공연하면서 사는 삶이 꿈이었거든요. 좋아하는 음악에 중독돼 열심히 했더니 어느 순간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에요. 그래서인지 내려왔을 때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죠. 주위에선 걱정했는데, 저는 오히려 내 삶에 여유가 생겨 좋았어요. 내가 아등바등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과정을 거스르려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 하고 현재에 만족하니 바닥까지 내려가도 전 끄떡없어요. 지금의 제가 받는 관심과 사랑도 무척 고맙고 행복해요. 아마 정상에만 있었다면 그런 고마움도 몰랐겠지요.

주위에서 ‘변함없다’는 말을 많이 할 텐데, 나이 듦을 어떻게 관리하나요?
인생 시계에 관심이 없어 나이에 무감각해요. 나이의 앞 숫자가 바뀌는 것도 잘 인식하지 못해요. 그저 오늘 할 일, 눈앞에 있는 관심사를 중요하게 바라볼 뿐이지요. 이를테면 지금 공연 중이니까 공연에만 집중하고, 이번엔 가족들과 어디로 여행 갈지가 제겐 중요해요. 예전만큼의 체력은 아니겠지만, 거울을 봐도 제 모습에서 몸도 마음도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느끼고요. 나이 듦에 대해서 개념이 없다고 봐야지요.

현재에 집중하며 사는군요.
과거보다 현재, 현재보다 미래에 더 관심이 많아요. 10년 뒤에 내 모습이 궁금하고요. 물론 살면서 후회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저도 뭐 이런저런 실패도 맛봤죠. 그때는 아팠지만 살아보니 시간이 지나면 그게 그거더라고요. 삶을 단순하게 사는 거죠.

고등학생, 중학생 자녀를 뒀는데, 자식 앞에서는 단순하게 살기가 어렵지 않나요?
두 아들에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부담도 안 주고요. 준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고등학생인 첫째는 태권도를 정말 좋아해 체육고등학교에 갔어요. 그런데 힘들어하더라고요. 힘들면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했죠. 지금은 일반 학교에 다녀요. 어려서부터 “뭐가 하고 싶어?”만 물어봤어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말하면 전 할 수 있게 도왔고요. 결국엔 내 인생이 아니라 아들의 인생이잖아요. 자기가 방향을 찾도록 도울 뿐이지 개입을 안 합니다.

자식과의 관계 설정이 명확하네요.
그렇다고 무관심한 것은 아닙니다. 자식이 도와 달라면 도와주는 것이 내 몫이고 나머지는 자신이 살아가야 할 몫이라고 보는 거죠.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제 경험으로 잘 알아요. 제가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집에서 쫓겨날 정도로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어요.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아들이었는데, 결국 음악을 계속 했지요. 음악이 너무 좋았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한 것이 제가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이유였겠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제 욕심을 강요하지 않아요. 스스로 원하는 일을 찾아야 진짜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요?

나만의 위로가 필요할 땐 어디를 찾나요?
제 또래 남자들이 자기만의 시간, 자기만의 아지트를 갖고 싶어 하는데, 저는 그런 시간과 공간에 욕심이 없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충분히 누리고 살거든요. 뭔가 하고 싶다고 하면 아내가 이해하고 받아줘요. 저도 아내에게 그렇게 대하고요. 아내는 지금 중학교 싱크로나이즈 팀의 감독이에요. 자기 세계가 있는 사람이지요. 아내의 세계에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부분에도 개입하지 않아요. 무관심이 아니라 믿음이지요. 각자의 세계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부딪치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그럼 쌓이거나 맺힌 걸 풀 때는 어떻게 하세요?
별다른 힐링법은 없어요. 그냥 견뎌요.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는 것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그런 방법은 일시적인 것 같아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생각으로 힘들면 힘든 대로 견딥니다. 힘든 걸 견디고 아파 봐야 내성이 생겨 다음엔 수월하게 이겨낸다고 생각해요.

변진섭이 생각하는 전성기란 언제인가요?
사람들은 예전의 변진섭을 떠올리겠지만, 저는 이제부터 시작이지요. 사람들이 저더러 ‘변함없다’ ‘동안이다’ 하는데 동안으로만 살고 싶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제 모습을 기대합니다. 60대에는 60대처럼, 70대에는 70대처럼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싶어요. 그 과정을 받아들이고 현실에 만족하는 인생을 살고 싶어요. 그렇게 살면 영원히 전성기를 누리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