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물 가득 넣어 끓여 낸 부산의 수중전골 맛집, 바다집

기사 요약글

한때 해물전골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사 내용

1980년대의 일이다. 배고프고 돈 없는 청춘들의 음식이었다. 우선 국물이 많았다. 국물이 많다는 건 양이 많아 보인다는 뜻이다. 서울에서는 곳곳에 해물탕집이 있었다. 꽃게가 참 쌌고, 조개며 오징어도 지천일 때의 일이다. 제법 흐뭇한 양이 3000원, 4000원 했다. 그러나 해물값이 오르면서 점차 사라지는 메뉴가 되었다. 그렇게 해물탕을 잊고 있었다.

부산 국제시장으로 흔히 통용되는, 남포동이라고도 부르는 그 일대는 사람이 몰린다. 부평시장(깡통시장)이라고 따로 부르는 시장도 있지만 관광객에게는 퉁쳐서 모두 국제시장 골목이다. 어묵도 팔고, 돼지와 소갈비에 먹자고 들면 온갖 먹거리가 있다. 그중에 해물탕집이 보인다. 고백하자면, 아주 우연히 이 식당의 사진을 보았다. 식당이 아니라 그 집에서 쓰는 그릇이 눈에 꽂혔다. 특이하게 생긴 그릇이다. 가게에 들렀다. 김유자 사장이 맞아준다. 허름한 외관에 실내는 더 허름하다(여러분이 백종원의 프로그램에서 본 건 수리 후의 모습이다). 인터뷰 진행이 잘 안 된다. 일거리가 산더미라 앉아서 인터뷰를 할 수가 없다. 왜 유독 부산 아지매들이 더 바쁠까 싶다. 할매국밥도, 마라톤집도 그랬다. 인터뷰는 툭툭 끊어진다. 그래도 끈기 있게 묻는다.

“글쎄에예, 저 그릇만 쓰고 있으이 언제부터 썼는가는 모르겠고. 하여튼 저 그릇에다가 해야 맛이 있어예.”

그릇 얘기가 나온 김에 더 파고들어보자. 근처 그릇 도매상에 들러 바다집의 전골냄비 사진을 보여준다.

“가만있어보자, 한 10년 넘었을 겁니다. 이 그릇 안 쓴 지가. 저기 어디 몇 개 있을 텐데. 와? 살낍니꺼?”

10개 남짓 있다고 한다. 한 개에 1만원. 세 개를 샀다.

“예전에 저 신창동 골목에 수중전골집이 아주 많았어예. 많이 사갔지예. 그때는 마, 많이 갖다놓고 했는데, 이제는 찾는 사람이 없어가, 물건을 디려놓질 않고….”

그러니까 신창동 일대에 10여 개의 수중전골집이 있었다는 것이다. 수중전골이란 해물전골을 이르는 부산식 이름이다. 해물전골과 차이가 좀 있는데, 정확한 분류는 아니지만 현존하는 바다집 김유자 사장의 증언에 따르면 “수중전골은 해물을 다 까서 손질해서 넣는 것”이라고 한다. 하여튼 그 수중전골집들이 그 전골냄비를 구매했는데, 점차 문을 닫으면서 냄비를 찾는 이들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게 다 없어지모 가게 그만 해야지예. 냄비가 가게 역사라.”

나는 이 냄비가 궁금해서 서울에서 ‘탐문’에 들어갔다. ‘나쇼날스텐레스’라는 회사의 사장님이 안다고 하신다. 예전에 불고기전골 그릇으로 만들어 팔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찾는 이가 없어 생산이 중단되었다. 손으로 일일이 깎고 구부려야 하는 제품이란다.

이 그릇은 취재 결과 일종의 전립투 불고기 전골냄비다. 전립투란 옛 조선군의 병사용 벙거지를 말한다. 그것을 뒤집어놓은 듯한 모양의 쇠 전골 그릇(구리로 만들기도 했다)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것이다. 챙 모양에 고기를 굽고 가운데에는 기름과 양념이 담겨 있어 거기에 고기를 찍어서 먹었을 것이라고 한다. 고기를 다 먹고 나면 그 양념 국물에 밥을 볶거나 비볐을 가능성이 높다. 이북에서는 메밀국수를 버무려서 먹었다. 그것을 어북쟁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북 요리인 어북쟁반도 비슷한 그릇을 쓴다.

 

바다집 김유자 사장의 말을 더 들어보자.

“값도 헐코, 남는 기 별로 없는 장삽니더. 노동력으로 버티는 기지.”

1인분에 8000원. 설렁탕값에 해물전골을 파니, 노동력으로 그 틈을 메운다. 김유자 사장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진다. 식사 시간이 다 되어가고, 손님들이 밀어닥칠 순간이 왔다는 것이다. 원래 이 가게는 이종만 씨가 열었다. 1975년의 일이다. 아마도 이 집에서 이 요리가 시작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산에 수산물이 흔하고 그걸 끓여 먹는 메뉴는 접하기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부산 특유의 어법으로‘수중전골’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물속에 있는 재료를 넣고 끓이는 것이다.

“말도 마이소. 수중전골이라 카는기는 아주 싼 음식입니더. 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이 마이 왔어예. 난리가 나지예. 엄청나게 먹고 술 마시고. 참 힘들었어예.”

동아대, 부산대, 수산대 등 부산의 대학생들이 많이 찾았다. 서울과 흡사한 해물탕 문화다. 서울도 해물탕집은 신촌, 이대, 종로 등 학생들이 주 손님이었다. 국물과 얼큰한 맛, 소주 안주에 배가 부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수중전골 맛의 비결을 물었다. 역시 예상한 대로다. 재료의 질이다. 싱싱한 해산물을 싸게 많이 사서 손으로 일일이 다듬는다. 맛이 없기 힘들다. 육수에 비결이 있기는 하다. 무, 다시마, 파, 양파, 디포리 등을 넣고 만든 국물이 시원하다. 해산물의 육즙과 합쳐지니 맛이 더하기가 된다.

수중전골은 먹는 법이 있다. 가운데 깊게 파여 있는 홈에 육수를 가득 붓는다. 개조개, 낙지, 오징어, 새우, 바지락, 굴 등 그때그때 조달할 수 있는 해산물과 당면이 들어간다. 매운 고춧가루 양념은 기본이다. 팔팔 끓인다. 해산물의 즙이 안쪽의 홈으로 모여든다. 해산물은 빨리 익으니 먼저 건져 먹는다. 국물은 조금 기다린다. 졸아붙고 농도가 나와야 국물이 맛있다. 해산물을 얼추 건져 먹고 국물을 한 술 떠본다. 달착지근하고 감칠맛 도는 국물이 완성되었다. 진하고 맵다. 우동 사리도 넣어 먹는다. 밥을 넣을 수도 있다. 배가 그득하다. 이게 1인분에 8000원이라니!

 

이 집을 흥미롭게 하는 ‘이모티콘’이 있다. 3명이 3인분이면 웃는 이모티콘, 2인분이면 괜찮은 표정이다. 3명이 1인분을 시키면 찡그리고 ‘××’가 그려져 있다.

“가난한 학생들이 많이 오니 3명이 1인분 시키고 그랬지예. 그것도 돈을 못 내가 학생증을 맡기고 시계 두고 가고 그랬어예. 이제는 다르다 아입니꺼. 가겟세도 많이 오르고, 얌체 짓 하는 분들이 있어서 저리 붙였지예.”

8000원에 그득한 해물탕을 먹는데, 3명이 1인분은 심했다 싶다. 그렇게 더러 주문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참, 어렵고 지난한 세월을 지나온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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