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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가족’이라 ‘돌봄’해요 2024.09.04 조회수 100

방백(Aside)은 연극 용어로 ‘인물이 관객에게 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인물의 곁에서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관객에게만 들리는 말이죠. 사회를 하나의 무대로 본다면 어떨까요. 이번 학기 중대신문 사회부는 우리 사회라는 무대 위,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방백을 할 수밖에 없던 인물들을 조명하려 합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극의 관객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응하셨다면 이번 주는 ‘가족 돌봄자의 방백’으로 무대를 열어보려 합니다. 끝까지 꼭 자리를 지켜주세요. 이제 시작합니다.

 

 

 

 

“가족 돌봄은 사회적인 문제이지만 국가는 이를 무시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가족 돌봄자 대부분은 간병을 도중에 포기하죠.” -김은주씨(40)

“가족 돌봄으로 인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집에 있는 물건까지 팔아 의료비·생활비·육아비 등을 충당하지만 턱없이 부족했죠.”  -소하랑씨(39)



가족 돌봄이란 가족이나 친지에 의한 돌봄을 의미한다. 지난해 4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간병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본인 또는 가족이 입원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약 46.6%가 가족 돌봄을 선택했다고 대답했다.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전문 간병인을 고용하는 대신 가족 돌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 돌봄자는 저마다의 고충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가족을 돌보는 이들이 감내하고 있는 고통을 조명해 본다.

 


돌봄 해줄 가족 어디 없나

 

가족 돌봄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간병인에 대한 고용비 부담이 꼽힌다. 7년째 가족을 돌보고 있는 A씨(26)는 “간병인 비용은 하루에 약 15만 원 정도지만 정확한 비용은 환자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며 “간병인 비용을 부담하기 힘들어 가족 돌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김석주 교수(대구대 사회복지학과)는 “4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약 572만 원인 반면 올해 기준 요양병원 본인부담금은 월평균 2~300만 원”이라며 “가족 한 명이 한 달간 입원하게 될 경우 소득의 30% 이상을 지출해야 하는 꼴”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2021년 4월 시민단체 ‘건강돌봄시민행동’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돌봄 문화에서 필요한 개선사항을 묻는 질문에 돌봄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약 44.2%가 ‘간병 비용’을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았다. 박시영 건강돌봄시민행동 상임활동가는 “해당 조사의 응답자는 간병인 비용으로 약 40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매달 지출하는 상황이었다”며 “가족이 직접 환자를 돌보는 것이 간병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비용 지출이 비교적 적기 때문에 결국 가족 돌봄이 불가피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 돌봄자가 간병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또한 가족 돌봄의 이유가 된다. 8년간 가족을 돌본 김은주씨(40)는 “고용했던 간병인의 전문 의료지식이 전무해 신뢰할 수 없었다”며 “간병인이 관련 교육도 제대로 이수하지 않아 환자의 약을 제때 챙기지 않은 적도 다수 있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시영 활동가는 “간병인이 환자를 학대한 사건이 사회적인 이슈로 대두되면서 이들에 대한 불신이 가족 돌봄자가 직접 환자를 간병하는 이유로 작용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병원 특성상 한 환자를 전담해 돌보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가족 돌봄을 하게 된 사례도 존재한다. 2019년부터 가족 돌봄을 한 소하랑씨(39)는 “의사와 간호사는 담당 환자가 많기 때문에 특정 환자를 상시 돌보는 것이 힘들다”며 “그렇기에 24시간 밀착 돌봄이 필요할 정도로 위독한 환자는 가족 돌봄을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방도”라고 털어놨다.

 

가족이라는 당위성은 가족 돌봄자가 돌봄의 의무를 자연스레 떠안게 만든다. 3년간 어머니를 간병한 가족 돌봄자 김용석씨(47)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가족 돌봄을 한다는 점도 분명 존재한다”며 “오랫동안 가족 돌봄을 하다 보니 어느새 간병이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A씨 역시 “그동안 가족에게 받은 사랑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도 가족 돌봄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답했다. 김석주 교수는 “2년간 가족 돌봄을 한 경험을 돌아보면 아픈 가족을 직접 돌보지 않을 때 후회와 죄책감을 크게 느끼게 된다”고 답했다. 조현민 라이나전성기재단 사회공헌사업부 과장은 “아픈 가족을 남에게 맡기는 것은 도덕적으로 가족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는 인식이 아직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인식이 가족의 책임을 중시하는 유교 윤리가 우리 사회에 잔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진숙 교수(대구대 사회복지학과)는 “가족 구성원이 직접 아픈 가족을 돌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유교적인 사고방식이 아직 우리 사회에 밑바탕 돼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세원 교수(국립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는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을 돌보는 것이 개인의 도덕성과 인격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며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일을 그만두고 시부모를 돌보는 것이 당연한 인간의 도리라고 여기는 것도 한 예시”라고 덧붙였다.

 


멈춘 그들의 시계

 

가족 돌봄자는 가족 돌봄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그중 하나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김은주씨는 “막대한 병원비로 인해 가족 돌봄을 하는 동안 빚이 3억 원 이상 생겼다”며 “가족 돌봄을 하는 다른 지인 역시 경제적인 부담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가족 돌봄을 하면서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간병과 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로 인해 환자인 가족뿐만 아니라 돌봄을 하는 자신 역시 건강이 악화됐다”고 고백했다.

 

결국 가족 돌봄자는 생업에 제대로 종사하지 못하게 되면서 더 큰 경제적 수렁에 빠지게 된다. 김은주씨는 “가족 돌봄을 시작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며 “기존에는 경제적인 부족함이 없었음에도 가족 돌봄에 필요한 지출로 인해 기초생활수급 대상으로 선정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용석씨는 “가족 돌봄을 할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 곁에 붙어있어야 하기에 다른 활동을 할 시간의 여유가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언급했다. 이연정 교수(사회복지학부)는 “가족 돌봄은 가족 돌봄자가 노동시장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을 전제한다”며 “이 경우 임금 소득은 당연히 감소하기에 가족 돌봄자가 경제적인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가족 돌봄을 하는 청년의 경우 향후 경제적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김진현 교수(서울대 간호대학)는 “청년의 가족 돌봄은 미래의 기회까지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향후 직장을 구할 시 나이 제한으로 인해 취업이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이에 따라 빈곤의 악순환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A씨 역시 “청년 시기는 학업이나 취업에 전념해야 할 때지만 가족 돌봄으로 인해 그러지 못하게 됐다”며 “또래와 달리 진로나 학업을 포기하고 자신의 미래를 내려놔야 하는 것이 큰 어려움”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경제적·시간적 어려움은 심리적인 고통을 야기한다. 소하랑씨는 “가족 돌봄을 하고 있음에도 환자의 건강이 차도를 보이지 않는 것에 깊은 절망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세원 교수는 “가족 돌봄자는 아픈 가족을 잘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심적 부담을 느끼게 된다”고 언급했다. 노혜진 교수(강서대 사회복지학과)는 “가족 돌봄은 유급노동처럼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며 “매시간 돌봄을 해야 한다는 점과 더불어 간병에서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도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가족 돌봄자가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재의 간병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가족 돌봄자도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문기옥 심리상담사는 “가족 돌봄자 대부분이 돌봄에 전념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이로 인해 심리적인 피로감에서 발생하는 우울증·무기력감 등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전했다.

 

이런 어려움으로 인해 간병파산·간병살인 같은 극단적인 사회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진숙 교수는 “가족 돌봄자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미흡함에 따라 돌봄의 어려움과 스트레스로 인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사회가 가족 돌봄에 대한 책임을 분담하지 않고 가족 돌봄자 개인에게만 감당하게 해 일어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석주 교수는 “간병파산은 가족 돌봄의 경제적 부담, 간병살인은 심리적 스트레스와 사회적 고립의 결과물”이라며 “가족 돌봄을 위한 정책이 전무한 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당연한 사회적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 1월 대구광역시에서 돌봄자인 아들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치매 판정을 받은 80대 아버지를 홀로 돌보던 아들이 경제·심리적 부담으로 인해 범행을 저지른 간병살인이다. 노혜진 교수는 “가족 돌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사회가 오로지 가족에게 전가한 탓”이라며 “가족 돌봄 문제를 가족과 사회가 함께 담당하는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비슷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송상호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 소통실장 또한 “가족 돌봄은 가족이 아닌 사회의 문제가 된 지 오래”라며 “사회와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면 가족 돌봄이 경제·사회적으로 지속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족+돌봄≠의무

 

전문가는 가족 돌봄을 개인이나 가족에 국한된 문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세원 교수는 “가족 돌봄으로 인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돌봄은 개인적인 문제로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석주 교수는 “간병파산·간병살인과 같이 현재의 가족 돌봄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가족의 힘만으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원인과 제도의 부재에 있는 것”이라며 “가족이 돌봄의 기능을 적절히 수행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족이기 때문에 돌봄을 해야 한다는 인식도 탈피해야 한다. 최복준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가족이 돌봄을 도맡아야 한다는 당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가족 돌봄 체계를 어떻게 확립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과제”라고 답했다.

 

따라서 사회와 국가가 앞장서서 가족 돌봄자를 위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혜진 교수(춘해보건대 작업치료과)는 “국가 차원에서 가족 돌봄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시영 활동가는 “돌봄은 가족이 하는 것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 개선과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동반돼야 할 것”이라며 “경제적 지원 강화와 제도 개선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돌봄의 질을 향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이를 통해 가족 돌봄자의 부담을 줄이고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족 돌봄자는 자신의 온전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가족의 곁을 지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많은 어려움을 홀로 감당하는 외로운 싸움을 펼치고 있다. 가족 돌봄으로 인한 극단적인 문제까지 나타나고 있는 지금, 이를 언제까지고 가족만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가와 사회는 가족 돌봄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출처 중대신문사 (원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