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전에 상당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낯선 곳에서 환한 조명을 마주보며 사진을 수십 장 찍는 게 말처럼 쉽진 않잖아요.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도 생각보다 참 어렵고요. 촬영 경험이 없는 어르신이나 일상 생활에 제약이 있는 장애인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더욱이 사진을 찍으러 오기까지 마음먹는 것조차 힘든 사람들이니까요. 200~300번 셔터를 눌러 한 컷을 건질 때도 있죠. 어렵게 카메라 앞에 선 만큼, 결과물이 좋아야 하니까 밝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올 수 있도록 차가운 렌즈가 아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동네 아저씨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시게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애씁니다.
예전에 장애아 체육대회에서 한 부모를 만났는데, 아이를 데리고 사진관에 가는 일이 참 어렵다고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표정을 바로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표정은 더 어색해지고, 사진가는 지치고, 가족들도 민망해진다는 얘기였죠. 그래서 이런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과 소외 계층을 위한 전문 스튜디오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사진과 관련된 일을 했었나요?
아니요. 20여 년간 IT업계에서 일했어요. 일하면서 막연하게 언젠가 사진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아마 50대 중년 남자들에게 은퇴 후 뭐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다들 비슷한 대답을 할걸요(웃음).
열심히 일하다 보니 외국계 기업 한국 지사장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남들은 그 자리가 부러웠을지 몰라도 제겐 관리자 역할이 적성에 안 맞았어요. 차라리 현장에서 열심히 뛸 때가 그리웠죠. 결국 사표를 내고 이제 뭘 할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이 사진이었어요.
일단 학원을 찾아가서 6개월 정도 배웠는데 대표님이 전시회를 권유하시더라고요. 얼떨결에 전시 공간을 빌리고 날짜까지 잡고 보니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야겠더라고요. 숙제하는 마음으로 가족과 풍경을 열심히 찍다 보니 기술도 늘고 작업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죠.
그럼 일반적인 상업 스튜디오를 차릴 수도 있었을 텐데요.
저는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에 다니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어요. 그 자체가 굉장한 특혜죠. 언젠가 제가 누린 것들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사진으로 돈 버는 방법 대신 사회에 보답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봤어요.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사이트에 가보니 의외로 사진 촬영 봉사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자원봉사 활동을 하다가 소외 계층 전문 사진관이라는 아이디어도 얻게 됐고요.
사진관 운영뿐만 아니라 아예 봉사단을 조직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고요.
저희 사진관의 운영 수익은 사회에 환원됩니다. 일반 고객이 가족사진을 촬영하면 소외 계층의 가족사진을 무료로 찍어드리고, 영리 기업에서 행사 촬영을 하면 비영리단체의 행사 촬영을 무료로 해드리는 식이죠.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여러 사진관들과 함께 사진 유랑단을 만들어서 전국의 장애인 시설, 사회복지 시설을 찾아가 사진을 찍어드리고 있어요. 캄보디아, 미얀마, 네팔, 필리핀, 중국 등 해외 봉사도 다녀왔고요.
정장을 기증받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여해 주는 나눔 단체 ‘열린옷장’과 함께 2016년부터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고 있어요. 또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화보를 촬영해 드리고 있고요. 사진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지 갑니다.
사진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웃을 만나면서 가슴 따뜻해지는 순간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80대 노모가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60대 아들을 데리고 저희 스튜디오에 오신 적이 있어요. 기초수급자셨는데, 80여만원의 수급비를 아껴 다른 장애인들을 돕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보통 집안에 장애인 가족이 있으면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더 똘똘 뭉쳐 여느 유복한 가족들보다 훨씬 사랑이 넘쳐요.
사진을 찍고 보정 작업을 하는 동안 서로 사랑하는 눈빛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얼굴을 몇 번이고 보다 보면 함께 행복해지고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그런 귀한 얼굴들을 볼 수 있는 것이 제가 사진관을 운영하는 이유이고 계속 사진을 찍는 동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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