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나전성기재단

평창의 '김 반장', 배우 김청의 귀촌일기
일∙2라운드 11,177

 

 

 

“해발 807m예요.” 강원도 평창 대관령면 가시머리길에 있는 느린마을. 백두대간 등산로, 국민의숲과 어우러진 이곳은 마을 이름이 주는 느낌 그대로 시간이 멈춰선 듯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울창한 숲이 안겨주는 상쾌한 공기와 바람을 마시며 마을 위쪽으로 걷다 보면, 청(淸) 스위트홈 갤러리가 나온다.

 

KBS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 출연 중인 배우 김청이 이곳에 산다. 다른 곳엔 봄꽃이 피었는데 이곳엔 지난 폭설로 눈꽃이 피어 있었다. 평창에선 4월까지 눈이 낯설지 않은 풍경.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집 마당에는 그녀와 함께 방송에 출연해 화제가 된 반려견 사랑이가 뛰놀고 있었다. 사랑이는 김청이 4년 전 평창에 왔을 때 만난 유기견으로 그녀와 일상을 함께하는 가족이다.

 

 

 

 

청 스위트홈 갤러리, 집에 이름을 붙였네요. 어떤 의미인가요?

 


장식품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요. 그간 모아온 걸 가져와 이 집을 저만의 갤러리로 꾸미며 정을 붙였죠. 개인적으로도 사물에 이름 붙이는 걸 좋아해요. 집 앞마당에 소나무가 세 그루 있는데 해님이, 달님이, 이슬이라고 불러요. 해님이와 달님이는 연리지라 부부이고, 옆에 있는 이슬이는 그들의 자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지요.

 

혼자 살지만 이렇게 주변에 이름과 의미를 붙이면 내게 소중한 벗, 좋은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잖아요.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서 “잘 잤니?” “오늘 기분은 어떠니?” 하고 그냥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듯 이야기하며 교감하죠. 혼자 있어 외롭지 않냐고 많이 묻는데, 이렇게 대화하니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죠. 시골 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예요.

 

 

일산 집에서도 텃밭을 일구며 도시농부처럼 사는데, 굳이 평창까지 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 고향은 밀양인데, 시골이었죠.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을 보내서인지 예전부터 시골의 정서를 좋아했어요. 물론 일산 집에서도 텃밭 일구고 나무도 가꾸며 그 나름대로 시골에서 사는 것처럼 살고 있죠. 그런데 우연히 이 마을에 왔다가 자작나무, 호수, 하늘, 밤하늘의 별 등 자연의 선물 같은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터를 잡게 됐죠. 평창에 지인들이 많이 살아서 낯설지 않았고요.

 

 

 

 

절반의 귀촌인데, 평창에는 얼마나 머무르나요?

 


일이 없을 땐 주로 평창에서 지내지만, 따로 기간을 정해놓지는 않아요. 3~4일 있기도 하고 한 달 있기도 하죠. 성격이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편이라 계획하기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있어요. 사실 계획을 세워도 저는 작심삼일도 아니고 작심하루예요(웃음). 그 대신 하루에 최선을 다해요. 내일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죠. 그 정도면 만족스러운 삶이 아닐까요.

 

 

시골에서의 일상이 단조롭지는 않나요?

 


차 마실 때나 앉아 있지 들로, 산으로 다니느라 무척 바빠요. 곰취, 민들레 등 사방이 식재료 창고이니 바구니 들고 나가 나물을 뜯기도 하고, 주변에서 일손이 필요하면 가서 일도 돕고 품삯으로 밥도 얻어 먹어요. 또 제 집이 마을 사랑방이에요. 주변 분들이 제 집처럼 수시로 들락거려요.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분들이 많아 심심할 틈이 없죠.

 

 

 

 

귀농이나 귀촌을 해서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은데, 마을에 이렇게 잘 녹아든 비결이 궁금하네요.

 


지인들이 이곳에 산다는 것도 도움이 됐지만, 저 스스로도 지역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죠. 이곳에 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어 김장 축제 홍보대사로 4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요. 또 문화행사를 기획해 주민들과 함께하죠. 평창의 밤하늘을 수놓는 별 보기 행사도 개최하고, 뜻있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매년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초대해 호텔 투어 등 재능 기부 행사도 하고요. 또 종종 공연도 기획합니다.

 

2년 전엔 ‘삶’이라는 주제로 해금 연주자 강은일 교수, 무형문화재 19호 최종근 선생님, 밸런싱 아티스트 변남석 선생님 등 각계의 저명한 예술인들과 함께 공연을 펼쳤어요. 한국무용이 전공인 저는 살풀이춤을 추었고요. 지역의 좋은 사람들과도 꾸준히 모임을 가지고 있어요. 저에겐 평창이 제2의 고향이죠.

 

 

평창은 힐링하는 공간을 넘어 김청이 써 내려가는 또 다른 삶의 공간이군요.

 


살다 보니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민원도 넣는답니다(웃음). 산이 깊어 도로에 멧돼지, 고라니 같은 동물이 튀어나올 때가 많아요. 그래서 경찰서에 운전자들이 조심하도록, 동물들이 다치지 않도록 동물보호표지판을 달자고 제안해 주요 도로에 설치되었어요. 또 올림픽까지 치른 대표적인 관광지인데도 가로등이 부족해서 밤에 운전할 때 위험한 도로가 있어 군에 민원을 꾸준히 넣었는데, 최근에 설치됐어요.

 

 

그 정도면 평창의 김반장 아닌가요?

 


내가 사는 곳이잖아요. 또 나만 좋자고 하는 게 아니라 지역과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의견 제시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다른 분들도 김청을 평창 주민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대관령에 4년 살았는데, 40년은 산 것 같아요(웃음).

 

 

 

 

이곳에서의 삶에 무척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제게 “너는 무인도 가서 혼자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죠. 그런데 이런저런 일 겪으며 여기까지 오면서 느낀 건 사람 사이에 있어야 치유가 된다는 거예요. 물론 어떤 사람 사이에 있느냐가 중요한데, 서로에게 좋은 사람끼리 함께하는 것이지요. 이곳에서 정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 저에겐 그런 의미로 다가와요. 게다가 자연만큼 몸과 마음에 좋은 보약은 없잖아요. 좋은 사람과 부대끼며 흙 묻으면 흙 묻은 대로 그냥 살아가니 즐겁고 행복해요.

 

 

나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나요?

 


나이를 먹는 건 나쁘지 않은데, 몸의 노화는 싫죠(웃음). 혼자다 보니 나를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막연한 걱정도 합니다. 하지만 삶에 대한 집착과 물욕은 없어요. 40대 후반부터 버리는 연습을 해왔거든요. ‘나는 배우인데’ ‘나는 김청인데’ ‘나는 왕년에 이랬던 사람인데’ 하는 생각은 남에게 비치는 내 모습에 빠져 있는 거잖아요.

 

어느 순간 ‘배우는 나의 직업일 뿐이야. 이전까지 배우 김청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온전히 한 인간, 김청으로 살자’고 결심했죠. 그렇게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니 편해지고 만족이 되더라고요. 삶이란 남이 뭐라 하든 내가 만족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결국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비우면 홀가분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쉽게 비우기는 어려운데, 김청만의 비우기 팁을 알려준다면?

 


좋은 것, 좋은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저는 사람 정리도 합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 않은 사람들, 사람 가리고 따져가면서 만나는 사람들, 주변에 저와 가까운 척 소문 내고 이런저런 부탁을 하는 사람들, 거절을 잘 못하는 제 성격을 이용해 자꾸 돈 빌려달라고 하는 사람들, 그런 불편한 사람들을 정리하죠. 휴대폰에 저장된 그 사람들의 전화번호 앞에는 ‘받지마’ ‘절대 받지마’ 하는 메모를 남겨둬요.

 

 

 

 

2라운드 인생을 앞둔 중년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각자의 삶을 사는 게 중요하겠지만, 나를 낮출 줄도 알았으면 해요. 지금 나의 타이틀, 내 자리가 영원할 순 없어요. 나만 아프고 힘들다는 생각도 버리고요. 이제까지 살아보니 사람들은 누구나 아픔과 힘든 일을 겪더라고요. 단지 형태만 다를 뿐이죠. 그리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사랑하는 일이더라고요. 나를 아끼고, 품어주고, 존경할 줄 알아야 삶도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나 자신에게는 사랑 표현을 어떻게 하나요?

 


나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공주처럼 대하죠. 예를 들면 남들에겐 혼잣말이겠지만 소리 내서 저와 대화를 해요. 평소 음식은 잘하지만 밥을 잘 못 짓는데, 어느 날 밥이 너무 잘됐을 땐 “청아, 무슨 일이야. 너무 기특해. 잘했어”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도 가져요. 평창에 있을 땐 밤마다 옥상에 올라가 사랑이와 함께 별을 봅니다. 소소하지만 행복을 누리는 시간이에요.

 

또 삶의 템포를 조금 늦추려고 노력합니다. 잠깐의 멈춤은 나빴던 기억을 빨리 털어내게 하고, 사람을 볼 때 외모보다 내면을 보고 판단하게 해서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더라고요. 내 삶을 좋은 것들로 채우니 이것 또한 나를 사랑하는 일이죠. 다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사랑 표현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나요?

 


죽을 때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한 인간으로서는 미안함 없이,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미련 없이 떠나고 싶어요. 배우로서는 좋은 배우, 자기 일 열심히 하면서 잘 살아온 배우로 기억되면 더할 나위 없겠죠.

 

기획 이인철 사진 박충렬(스튜디오텐)

 

 

[이런 기사 어때요?]

 

 

>> '10만 전자'라는 삼성전자 주식, 지금 사도 될까요?

 

>> 당뇨 잡는 식단, '채단탄'을 아시나요?

 

>> 100년 전 사람들이 알려주는 생활 속 꿀팁

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