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공학도, 국내 1호 레고 공인 작가가 되다

기사 요약글

20대 이후 재미를 붙인 레고가 직업이 된 사람. 카이스트에서 컴퓨터 공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IT업계에서 일했던 김성완 대표에게 레고가 직업이 되기까지 그를 사로잡은 레고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기사 내용

 

 

 

브릭 아티스트는 대중에게 생소한 직업이다. 브릭 아티스트는 ‘브릭(블록)’을 재료로 예술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를 일컫는다. 보통 레고 브릭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디오라마, 로봇, 자동차, 모자이크 등 아티스트에 따라 선호하는 분야는 다양하다. 레고 창작 회사 ‘하비앤토이’를 운영하는 김성완 대표는 작가의 상상이나 영화 속 장면을 3D 입체 형태로 묘사하는 디오라마 작품을 주로 만들고 있다.

 

 

성인이 되어 빠져든 레고의 매력

 

 


김성완 대표가 처음 레고를 접한 건 초등학교 10~11살 무렵 친구 집에서였다.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은 없으나 레고를 처음 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어려서부터 조립 장난감을 좋아했어요. 보통 500원 정도 하는 프라모델을 가지고 놀았는데 조립을 다 하고 나면 더 할 게 없으니 흥미를 잃었죠. 그런데 레고는 조립했다가 분해하고 내가 상상한 대로 다시 조립할 수 있다는 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았죠.”

 

집에 돌아와서도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순간의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당시 레고는 평소 가지고 놀던 장난감 가격의 열 배가 넘을 정도로 비쌌다. 부모님을 조르지 못했고, 학업에 몰두해야 하는 10대 시절을 거치며 레고는 자연스레 잊혀졌다.

 

 

 

 

다시 레고를 만난 건 20대 중반,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들른 백화점에서 레고를 발견하곤 그동안 억눌렸던 욕구가 폭발한 것처럼 열정적으로 빠져들었다.

 

“당시 국내에는 레고 제품이 다양하게 들어오던 시절이 아니었어요. 해외 직구도 거의 없던 시기라 제가 갖고 싶은 제품을 손에 넣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죠. 레고 코리아에 전화도 자주 했고요. 결국, 한참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던 이베이에 가입해 겨우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없는 정보를 뒤져가며 해외 사이트를 통해 물건을 사던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레고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2000년 문을 연 국내 최고 브릭 커뮤니티 ‘브릭인사이드’였다.

 

 


 

 

안정된 직장 대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다

 


그는 사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박사 과정까지 수료하느라 친구들보다 회사 입사 시기는 늦은 편이었다.

 

“취업 전부터 동기들이 회사 생활 하는 걸 보며 나와는 맞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저는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편인데 회사에서는 그런 자율이 불가능하니까요.”

 

국내에서 가장 좋다는 직장이었지만 기업의 근무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래의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전공은 잘 맞았지만,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새로운 걸 개척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시 학교를 나왔다.

 

 

 

 

“취미를 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인터넷에서 ‘장난감 리뷰’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레고 관련 커뮤니티를 오랫동안 운영해온 덕인지, 그 무렵부터 레고 코리아 쪽에서 레고 모형 작품 제작 의뢰가 들어왔어요. 처음 1~2건이었던 것이 늘어나면서 아예 이쪽으로 도전을 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국내 레고 시장이 커지고 레고 매장이 늘어나던 시기인 2008년, 김성완 대표는 그간 하던 일들을 접고, ’하비앤토이’를 설립했다.

 

“회사를 관두고 학교를 떠날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습니다. 그때는 언제든 다시 IT업계로 복귀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제 완전히 다른 분야에 둥지를 틀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한다는 설렘,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기대감이 더 컸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만 같던 새로운 도전

 


회사는 설립했지만, 아는 게 없었다. 아는 게 없을 뿐 아니라 물어볼 곳도 없었다. 일의 프로세스를 잡는 것도,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도 어떤 정보와 지식도 얻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국내에서 이 분야 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고, 외국 전업 작가나 창작팀 같은 경우도 세세한 작업 운영 전반의 노하우를 공유하진 않기 때문에 스스로 깨우쳐야 했습니다.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도 직접 만들어야 했어요.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한 게 도움이 됐죠.”

 

5000 종 가까이 되는 부품을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도 이때 만들었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만도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지만, 그 덕분에 지금은 작품 설계를 마치고 나면 필요한 부품들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목록이 정리되어 나올 정도로 전문적인 시스템이 되었다.

 

 

 

국내 최초 ‘레고 공인 작가’라는 타이틀

 


레고 본사에서 인증하는 레고 공인 작가(LCP, LEGO Certified Professional)는 레고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심사 과정도 까다로운 탓에 현재까지 전 세계 20명 정도만이 타이틀을 획득했다. 김성완 대표는 2017년 우리나라 처음으로 레고 공인 작가가 됐다. 2014년부터 그간의 경력과 포부가 담긴 포트폴리오만 세 번 제출했고, 레고 코리아 추천을 받아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

 

“레고 공인 작가로 인정을 받으면, 작품에 LCP 로고를 넣을 수 있고, 단종된 게 아니라면 모든 종류의 브릭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어요. 거주국가의 레고 지사에서 작가를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습니다.”

 

그는 레고 공인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들어오는 의뢰의 양이 늘었다거나, 편리해진 작업 환경이 아니라고 말한다.

 

“LCP가 되고 가장 좋은 점은 LCP가 됐다는 거죠. 저는 레고를 취미로 시작했고, 클라이언트 일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그동안 개인 작품활동을 꾸준히 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레고로 얻을 수 있는 가장 뜻깊은 타이틀을 획득한 거니까요, 그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가장 기뻤습니다.”

 

 

 

 


레고로 노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활동하는 작가

 


처음 ‘하비앤토이’를 설립했을 무렵, 김성완 대표는 클라이언트들과 비용에 관한 의견 차이를 자주 겪어야 했다. 100%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일이다 보니 시간이 곧 돈이었지만, 시간과 노동에 비해 현저히 적은 금액을 제시해도 설득이 쉽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그사이, 국내에 브릭 뮤지엄이 생기고, 저변도 확대됐지만 1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희는 레고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취미로 블록을 조립하는 게 아니라, 작가마다 세계가 있고, 그 작가의 스타일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걸요.”

 

대중의 인식 변화를 위해 주로 디오라마 작업을 해오던 그는 최근 ‘인간과 고양이’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친근하고 호감 갈 만한 주제로 레고에 관심이 없는 대중에게도 레고의 매력과 가치가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코로나로 인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이 주제를 중심으로 개인전도 열 예정이다. 개인 전시가 활성화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작가로서 비즈니스 모델을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다.

 

“작가로서 꾸준히 활발하게 활동하며 경험을 쌓고 더 먼 미래에는  그 경험을 기반으로 국내에 레고 디오라마 전시관을 오픈하고 싶습니다. 목표를 이루려면 지금 제 일을 더 열심히 즐기고 좋아해야겠죠.”

 

 

기획 문수진 김태정 사진 이준형(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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