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선물,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한 권 어때요?

기사 요약글

바람의 온도와 햇살의 밀도가 점점 낮아지며 겨울이 찾아왔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로 정신 없게 지나간 한 해가 희미해지는 길목에서, 잠시 멈춰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어른이 보면 더 좋을 그림책 5권을 소개한다.

기사 내용

 

 

 

 

시간이 흘러도 영원히 변치 않는 가치를 전하는

<시간이 흐르면>저자 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 그림 마달레나 마토소 출판사 그림책공작소

 

 

 

 

숨을 참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몸을 멈춰보자. 내 몸처럼 시간도 멈춰 세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가 들고 신체에 변화가 생기면서 시간에 대한 체감 속도는 달라지지만,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흐른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연말이 되면 멈추지 않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한편으로 야속하기도 한 이유다. 시간 그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흘러가며 남기는 변화는 자연스레 우리 주변에 자리한다. 

 

<시간이 흐르면>은 간결한 글과 디자인적 요소가 강렬한 그림을 통해 시간의 변화를 보여주는 책이다. 아이는 자라고, 연필이 짧아지고, 손에 주름이 잡히고, 음식이 상하고, 옷이 작아지고… 사람도, 동물도, 사물도, 식물도, 세상의 모든 것이 시간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까?

 

책의 마지막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그 무엇’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다 보면 그림 속 모닥불에 같이 둘러앉아 불을 쬐고 싶어진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없어”라고 투덜대면서도 “영원히 변치 않는 게 있으면 좋겠다”고 그냥 믿고 싶어지니까. 오늘 당신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사랑? 건강? 아름다움? 그것을 위해 오늘 약간의 마음을 기울인다면, 좀 더 아름다운 연말이 되리라 믿는다.

 

 

봄꽃처럼 향기롭던 청춘이 그리운 이들에게 

<흰 눈>, 저자 공광규 그림 주리 출판사 바우솔

 

 

 

 

<흰 눈>은 공광규 시인의 시에 주리 작가가 그림을 그린 아름다운 시 그림책이다. 봄에서 초여름 사이 우리나라 도처에서 피어나는 하얀 꽃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산과 들에 핀 꽃을 보며 무슨 꽃이고, 어디에서 온 건지 한 번쯤 궁금증을 가졌을 것이다.

 

이 책을 보고 나면 주변에 피어난 꽃들을 한 번 더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이팝나무와 산딸나무, 조팝꽃처럼 도심에서 오가며 보았을 꽃의 이름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생명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생에 대해 섬세한 태도를 가진다는 의미다. 

 

<흰 눈>에서는 늦겨울에 날린 흰 눈이 초봄의 매화꽃으로, 벚꽃과 이팝꽃을 지나 산딸나무로 이어지는 시간의 아름다운 상상력이 돋보인다. 꽃, 그것도 봄꽃을 생각하면 우리는 자연스레 청춘을 떠올린다. 10대와 20대의 싱그럽고 향긋한 젊음이 봄꽃과 꼭 닮아 있다.

 

하지만 시인의 시선이 가 닿아 마침내 꽃잎이 내려앉는 곳은 시골 할머니의 하얗게 센 머리칼 위다. 예술 안에서 겨울과 봄, 눈과 꽃, 청춘과 노년은 그렇게 맞닿는다. 그리하여 작가는 말해준다, 세상의 모든 시간은 끈처럼 이어져 있다고. 언제 어떤 자리에서도 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품으며.

 

 

멈춰야 할 순간에 더욱 빛나는 노년, 그 넉넉한 아름다움을 전하는

<낡은 타이어의 두번째 여행>, 저자 자웨이 그림 주청량 출판사 노란상상

 

 

 

 

여기, 자동차와 함께 신나게 세상을 달려온 타이어가 있다. 자동차와 함께라면 타이어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차는 낡아 멈추었지만, 타이어는 좌절하지 않고 여행을 이어간다. 바람을 느끼고 동물들 옆을 지나며 ‘혼자였지만 즐거워 보이는 나’의 모습을 처음으로 발견한다.

 

진실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면서. 하지만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쓰러지면서 타이어의 여행도 끝난다. ‘정말 나의 여행이 끝났다’고 생각한 타이어는 고요히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림책의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여행은 끝났지만 타이어에게는 새로운 기쁨이 찾아온다. 타이어는 생쥐 친구들의 놀이터가 되고 개구리의 수영장, 동물 친구들의 무대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파릇한 새싹을 틔우는 텃밭이 된다. 이렇게 타이어는 또 다른 쓰임으로 세상에서 살아간다. 

 

누구나 세상을 달려나가다 멈춰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이 때문에, 병 때문에, 원치 않는 상황 때문에 여정을 멈출 때,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에도 새로운 시작은 가능하다. 홀로 세상 끝까지 가본 힘으로 어리고 여린 것들을 품어내면서. 나이 듦의 아름다움이 바로 이런 풍경 앞에서 빛난다.

 

 

고마운 사람에게 편지와 함께 전하고 싶은 

<가을에게, 봄에게>, 저자 사이토 린, 우키마루 그림 요시다 히사노리 출판사 미디어창비

 

 

 

 

<가을에게, 봄에게>는 계절을 의인화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봄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가을을 궁금해하며 시작된다. 겨울은 가을을 따뜻한 아이라고 소개하고, 여름은 가을을 차가운 녀석이라고 소개한다. 도대체 가을은 어떤 아이일까? 봄이 가을에게 쓴 편지를 여름이 전해주고, 가을이 봄에게 쓴 편지는 겨울이 전해준다. 이런 곱고 아름다운 상상이라니.

 

봄과 가을, 두 계절은 퍽 다르면서도 은근히 닮았다. 따뜻하면서 시원하고, 꽃과 단풍으로 알록달록한 색채의 향연이 이어진다. 두 계절은 오직 편지를 통해서만, 나아가 상상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나와 다른 존재를 깊이 받아들이고 또한 나라는 존재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그림 속에서 고스란히 펼쳐진다. 

 

책을 읽고 나면 곧 다가올 길고 혹독한 겨울을 잘 견딜 수 있을 것만 같다. 겨울 동안 가을이 보낸 편지를 건네주며, 봄의 늦은 답장을 더 기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겨울 동안 내년 여름에게 깨끗한 편지를 써볼 수도 있을 테니까.

 

 

내일의 희망 그리고 찾아올 봄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겨울잠>, 저자 호세 라몬 알론소 그림 루시아 코보 출판사 씨드북

 

 

 

 

곰 한 마리가 홀로 남은 숲에 늦가을이 불어온다. 겨울에 대비하기 위해 열매를 모으고 긴 잠에 드는 곰 한 마리 그리고 겨울잠 끝에 찾아온 봄. 곰은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작고 어여쁜 새 생명의 축복이 새봄을 연다.

 

<겨울잠>은 계절의 순환을 그린 함축적인 글도 아름다울뿐더러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되는 책이다. 곰의 실루엣과 숲의 풍경이 마치 하나인 듯 어우러진다. 곰의 다리가 앙상한 나뭇가지로 변하고, 눈 덮인 산의 능선은 잠든 곰의 등줄기가 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계절이 깃들어 있음을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니 이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이 올 것이다. 바람은 차가워지고 잎은 모두 떨어지고 눈이 온 세상을 덮어도, 결국 시간은 흘러 다시 꽃이 필 것이다. 흐르는 시간을 믿기에 우리는 오늘 하루를 또 열심히 견딜 수 있다. 소중하지 않은 계절은 없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기획 이채영 황유진(그림책 37도 대표, <어른의 그림책> 저자) 사진 이준형(스튜디오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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