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 건축 명작 6선

기사 요약글

과거 우리는 근대건축을 일제강점기의 산물로 여겨 저평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가치를 문화사적 차원에서 재발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근대건축보존회와 문화재청이 공동 주최한<장소의 재탄생> 전시가 바로 그중 하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2월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한국의 중요한 근대건축 명작 16점을 선보인다. 그중 한 번쯤 꼭 봐야 할 명작 6선을 선정했다.

기사 내용

 

공간사옥

김수근, 1971년, 등록문화재 제586호

 

공간사옥, 김수근, 1971년, 등록문화재 제586호


김수근의 역작인 공간사옥은 그동안 수차례 전문가 그룹 설문조사 에서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현대건축’으로 뽑혔다. 세 차례에 걸쳐 증축된 이곳은 전통 적벽돌, 검은색 치장벽돌, 유리 커튼월에 이르기까지 한국 건축의 시대적 변화를 고스란히 아름답게 담고 있다. 원 주인이었던 공간건축사무소가 어려워지면서 지난해 11월 (주)아라리오가 이 건물을 매입했고 10개월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 9월 1일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개관했다. 폐쇄적인 사무실로 쓰여 궁금했던 공간이 드디어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드나드는 사람들은 바뀌었지만 벽을 뒤덮은 담쟁이들은 지난 역사를 그대로 말해준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83
문의 02-736-5700

 

 

국립부여박물관

김수근, 1965년
 

국립부여박물관, 김수근, 1965년


‘백제’라는 이름은 늘 아름다운 왕국으로 기억된다. 찬란했던 역사가 스러진 지도 어느덧 1350여 년이지만 충남에 있는 국립부여박물관에서는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인 백제의 수준 높은 문화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의 전신은 ‘백제관’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백제 유물을 일본으로 빼돌리자 부여의 뜻 있는 유지들이 사재를 털어 1929년 부소산 기슭에 문을 열었다.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은 1965년. 한국 현대건축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김수근이 설계했다. 건물은 완공 후에도 한창 논쟁에 시달려야 했다. 외형이 일제의 신사를 닮았다는 이유다. 이 논쟁은 한국 건축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한국성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위치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문의 041-833-8562

 

 

유유산업 공장

김중업, 1959년

유유산업 공장, 김중업, 1959년


지난 3월 안양시에 있는 유유산업 공장이 김중업박물관으로 개관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건축가 중 한 명인 김중업은 당시 정부의 개발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1971년 11월 프랑스로 강제 출국당했다. 여권도 없던 그를 도와준 건 당시 유엔본부 건축위원이었던 건축의 대가 르 코르뷔지에였다. 난민 여권을 겨우 발급받은 그는 프랑스에 약 8년간 머물렀고, 귀국 이후 주한 프랑스대사관, 올림픽 상징 조형물인 ‘평화의 문’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안양 유유산업 공장 건물은 1959년 설계한 그의 초기작이다.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안양시가 매입해 2014년 3월 김중업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건축가의 이름을 딴 국내 최초 박물관이 된 이곳은 김중업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는 물론 복합문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위치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안양예술공원로 103번길 4
문의 031-687-0532

 

 

서울시립미술관

이와이 쵸오사부로, 1928년, 등록문화재 제237호

서울시립미술관, 이와이 쵸오사부로, 1928년, 등록문화재 제237호


1500년대 이 건물의 터에는 퇴계 이황의 집이 있었다. 현재의 건물이 들어선 건 일제강점기인 1928년, 용도는 경성재판소였다. 해방 이후 1948년 대한민국 대법원이 들어섰으며,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면서 서울시청의 별관으로 사용되었다. 2002년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의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재탄생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곳의 백미는 과거의 건물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전면 파사드.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누구나 유서 깊은 고딕 아치 아래를 지나게 된다. 우리 건축은 오래된 건물을 모두 헐어버리고 쉽게 새로 짓는 문화에 익숙해 있다. 이례적으로 일제 유산을 그대로 남겨둔 건물에서 깊은 고민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위치 서울시 중구 덕수궁길 61
문의 02-2124-8800

 

 

서울컨트리 클럽하우스

나상진, 1970년

서울컨트리 클럽하우스, 나상진, 1970년


서울 군자동에 위치한 꿈마루의 이야기는 마치 한국의 폼페이 스토리 같다. 2010년 당시 이 건물은 어린이대공원 관리사무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철거를 위해 도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건물의 형태가 전혀 달랐음을 알게된 것. 평범한 콘크리트 건물로 보였던 이 건물은 그 속에 네 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에 지붕이 떠 있는 범상치 않은 디자인이 숨어 있었다. 이 건물은 원래 한국의 1세대 건축가 나상진이 1970년 설계한 서울컨트리 클럽하우스였고, 완공 3년 만에 골프장 클럽하우스 대신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으로 용도를 바꿔 37년간 사용되고 있었던 것. 2011년 헐릴 뻔한 건물은 문화사적 의미를 고려해 원래대로 복원되었다. ‘꿈마루’라는 새로운 이름도 얻었다. 누구나 방문해 꿈을 키우며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위치 서울시 광진구 능동 18 어린이공원 내
문의 02-450-9311

 

 

가장 중요한 천주교 성지: 절두산 성지 성당

이희태, 1967년

가장 중요한 천주교 성지: 절두산 성지 성당, 이희태, 1967년


1984년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곳은 절두산 성당이었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 중 하나다. 조선 시대 후기 병인박해(1866년)로 1만여 명의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1966년 순교 100주년을 기념해 이 자리에 기념관과 성당을 공모했으며, 그 결과 국립극장을 설계한 이희태(엄이건축) 건축가에 의해 지어졌다. 완공 당시 이 건물은 많은 비판을 받아야 했다. 단두대를 연상시키는 건물 형태가 당시의 비극을 지나치게 1차원적으로 표현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한국 현대건축 명작으로 손꼽는 데 이견이 없을 만큼 그 위상이 재평가받고 있다. 성당이자 추모 공간으로서 명멸하는 역사 속에서도 변치 않는 건축과 종교의 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위치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6
문의 02-3142-4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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