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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문요한 작가는 주로 마음을 챙기는 이야기를 책에 담아왔다. <굿바이, 게으름> <관계를 읽는 시간> <마음 청진기> 등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메시지가 주를 이룬 책들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몸으로 하는 운동보다는 책 읽기를 좋아했고, 살아가면서 생기는 궁금증도 책을 통해 답을 얻으려고 애써왔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이제 몸을 챙깁니다>라는 책을 냈다. 그가 갑자기 몸을 챙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갑자기 안식년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부터 ‘이맘때쯤 안식년을 가져야겠다’라고 생각한 아니었어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상담을 하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딴 생각을 했나 봐요. 상담하는 사람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실수죠. 갑자기 내담자가 정색하면서 ‘제 얘기 듣고 계세요?’라고 묻는데 정말 충격적이고, 부끄러운 경험이었어요. 그 후 돌이켜 생각해보니 상담 중에 집중을 못 하고, 딴 생각에 빠졌던 적이 처음이 아니더라고요.
한번 문제를 인지하고 나니 더 이상 이런 상태로 일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선 진료 시간을 줄이고, 짧은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런데 달라진 게 없었죠. 며칠 쉬고, 일을 줄인다고 풀리는 피곤한 상태가 아니라 아무리 휴식을 취해도 회복되지 않은 소진 상태였던 거예요. 충전하면 다시 살아나는 배터리가 아니라 고장 난 배터리였어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안식년을 갖게 됐죠.
여행으로 고장 난 배터리를 수리했나요?
진료실과 집만 오가는 일상에서 몸이 많이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가족들과 유럽 여행을 갔는데 저는 알프스에서 캠핑했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더라고요. 추위에 떨면서 캠핑하고, 또 걷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지만 자연 속에 안겨있는 그 기분이 고생스러우면서도 좋았어요.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알프스를 떠올리면서 산에 대한 향수를 키워나갔고, 그렇게 안나푸르나로 혼자 떠나게 됐어요. 그 이후에도 아쉬움이 남아 안데스까지 다녀왔고요.
원래 산을 좋아하셨나봐요?
전혀요. 시간을 내서 산에 간 적도 거의 없고,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던 터라 제 자신도 의아했죠. 산을 좋아해서 산에 간다기보다는 시기에 따라 마음이 다른 것 같아요. 그때는 몸과 마음이 답답해서 뻥 뚫린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쌓였는데 지금은 틀에 갇혀 있지 않고 다양한 방식의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안식년을 보낸 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안식년을 갖기 전, 정신과 의사들끼리 모임을 한 적이 있어요. 우연찮게 누군가가 지금 행복한지, 스스로 매기는 행복 지수가 몇 점인지 물었어요. 저는 그때 고민없이 100점이라고 대답했어요. 답하고 나서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죠. 실제로 ‘100%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그때는 제 나름대로 스스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 능력을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위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만족스러웠거든요. 그래서 100점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는데 얼마 후에 내담자에게 그런 실수를 한 거죠. 100점짜리 행복을 말하던 저는 상담실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거예요. 그때 머리로만 이해하던 행복의 실체를 마주하게 됐어요.
행복의 실체는 무엇이었나요?
정말 행복한 사람은 ‘나 행복한가?’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해요. 행복의 본질은 나 자신을 잊고 행복 자체도 생각하지 않은 것이죠. 저에게는 여행이 그런 시간이었어요. 여행 전에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많은 고민을 안고 있지만 막상 여행을 떠났을 때 하는 생각은 대개 뻔해요. 오늘 뭐 먹을지, 내일은 어디로 갈지 일과를 고민하죠. 저는 무엇보다 여행을 하면서 잊었던 몸의 감각이 살아났어요. 주변의 소리가 다르게 들리고, 좌우앞뒤 모두 잘 보였어요. 하늘도 쳐다보게 됐고요. 평소에도 일상 속에서 감각이 깨어 있었다면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을 여행에서 느끼게 된 거죠.
몸의 감각이 깨어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여행을 통해 몸의 감각이 깨어나면서 자의식이 굉장히 약해졌어요. 내가 나를 의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 지도 생각 안 하게 됐죠. 나를 의식하지 않았더니 내가 진짜 살아 숨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요. 저는 의미와 가치가 있어야만 진짜 행복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진짜 행복한 사람들은 의미를 찾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왜 노는 지 의미를 찾아가면서 노는 아이들은 없잖아요. 그 자체가 즐거우면 그걸로 된 거죠. 우리는 대부분 힘든 경험을 하면서 억지로 의미부여를 하고, 나중에 어떻게든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요. 그건 행복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요. 조금 더 내 자신의 영혼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몸의 감각을 느끼는 좀더 쉬운 방법 없을까요?
저는 몸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게 됐는데, 몸과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면 쉬워요. 우리가 보통 건강을 챙긴다고 하면 운동을 하거나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검진받는 것을 생각하잖아요. 가장 기본은 몸과 친해지는 것이에요.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불안이나 걱정, 생각보다 내 몸과 더 친밀한 관계 맺기가 중요하죠. 걷는 게 건강에 좋다고들 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늘 횟수에 집착해요. 노래를 듣거나 생각에 빠진 채 걷는 것은 몸의 자각력을 높이는 것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아요. 내 발바닥과 땅이 만나는 느낌, 내 척추가 어떤 자세로 서 있고,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 지 느끼면서 걷는 것이 중요해요. 보통 하루에 3000보를 걷는다고 가정했을 때 100보만이라도 오감을 느끼면서 걸으면 확실히 달라요.
몸을 인식하고 깨우는 방법이 반드시 여행일 필요는 없겠네요.
물론이죠. 여행을 가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조금 더 좋은 경험을 누리는 것이 행복이죠. 라틴어로 ‘오티움(Otium)’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오티움은 내 영혼을 기쁘게 하는 능동적 여가 활동을 말해요. 일상에서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그림 그리기, 뜨개질, 합창, 다육 식물 기르기 등이죠. 이득을 얻거나 보상을 받진 않지만 그 자체로 기쁜 행위들이요. 여행이 뭐 별건가요. 굳이 멀리 갈 필요 없이 일상에서 좋은 경험을 늘려 나가는 것이 또 다른 이름의 여행이죠.
나이 들어가고, 특히나 병드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저희 아버지가 암으로 지난해 세상을 떠나셨어요. 처음에는 성인용 기저귀를 차는 것도, 치료를 받는 것 모두 수치스러워하셨죠. 그 마음을 저는 너무나 이해했고요. 저라도 수치스러울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호스피스 병원으로 아버지를 모신 후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몰랐던 자원봉사자의 삶을 가까이서 보게 됐거든요. 요일마다 자신의 특기를 살린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다양한 자원봉사자들이 병원을 찾아요. 마사지, 노래, 이발, 목욕 등 다양한 영역이 있죠. 처음에는 다 거부하시던 아버지도 사람의 손길이 그리우셨는지 목욕 봉사하는 분을 정말 좋아하셨어요. 그분과 함께 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린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아들인 저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정성스럽게 씻겨주시더라고요. 어느덧 아버지도 수치심을 잊고 그 분을 기다리는 게 낙이 되셨을 정도였죠.
고작 3개월의 시간이었는데 유대가 쌓인 두 사람이 의지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그 분의 삶이 놀랍게 다가왔죠. 정작 그분은 별일 아니라고, 그 자체가 기쁨이라고 하셨지만 덕분에 많이 깨달았어요. 이런 것도 하나의 오티움이 될 수 있어요. 모두가 그 분처럼 할 수는 없지만 이런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자원 봉사자들이 늘어난다면 우리 모두가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을 조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요. 내가 기쁘게 할 수 있는 여가 활동, 그게 무엇이든 찾아보세요. 변화의 시작이 될 지도 모르잖아요.
기획 서희라 글 류창희 사진 박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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