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과 텃밭 사이, 농원 주인 되기

기사 요약글

텃밭 가꾸듯 일을 즐기면서 돈까지 벌면 얼마나 좋을까?

기사 내용

우리 집 밥상을 건강한 농산물로 채우고 주변에 인심을 쓰면서 소소한 생활비까지 충당할 수 있으려면 농장보단 부담 없고 텃밭보단 넉넉한 ‘농원’이 해답이 될 수 있다. 유기농 재배를 위한 몇 가지 노하우만 배우면 은퇴 후 어엿한 농원주가 될 수 있다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그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는 8년 차 농원주 김익수 씨를 만났다.

 

 

컴퓨터 전문가, 흙 위의 농원주가 되다


경기도 안산,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의 거리를 달려 찾아간 하늘바람농원은 세 가지가 다르다. 첫째, 2천여 평 규모의 농원에 닭부터 채소까지 없는 게 없다. 그리고 둘째는 농가 주택 마당에 잔디를 깔아 정갈하다. 셋째는 닭이나 각종가축들이 있는 곳에는 으레 나기 마련인 악취가 전혀 없다. 너른 마당을 누비며 자유롭게 뛰노는 닭과 오리, 거위 사이로 유유자적하게 오수를 즐기는 풍산개와 산등성이를 누비며 풀을 뜯는 산양이 어울려 다정한 풍경을 연출한다. 어느 하나 빈틈없이 꼼꼼한 이 농원의 주인은 7년 차 전업농인 김익수 씨다. 40대까지만 해도 주말마다 소일거리로 텃밭을 가꾸며 ‘언젠가 귀향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가 예상보다 빨리 전업농이 된 것은 건강 때문이었다.
기업 전산팀에 근무하며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40대 후반에 예상치 못한 간이식 수술을 받게 된 것. 병상에 누워 가장 많이 떠올렸던 것이 바로 안산의 원두막이었다. 그래서 회복하고 회사로 복귀한 지 2년 만에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강남의 사무실 대신 안산의 농원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텃밭에서

철도길 바로 옆에 위치한 농원.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눈여겨보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경험이야말로 최고의 자산이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큰 문제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고, 때론 작은 일을 크게 걱정할 수 있거든요. 이럴 때 믿을 수 있는 멘토의 존재는 아주 큰 힘이죠.” 그 좋은 예로, 뒷산에 풀어놓고 기르던 산양이 살모사에 물려 내려왔을 때 깜짝 놀라 호들갑을 떨던 김익수 씨 내외와 달리 평생 농사로 잔뼈가 굵은 처형 내외는 ‘사흘만 지나면 다 낫는다’고 부부를 안심시켰다. 사흘 뒤 뱀독으로 온몸이 퉁퉁 부어올랐던 산양은 놀랍게도 멀쩡해졌다. 농사야말로 생활 속에서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멘토가 필요하다. 그래서 지하철로 출근하다가 농원을 보고 찾아오는 40대 회사원부터 건너 건너 소개받고 찾아온 퇴직자까지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그는 농원 관리 노하우를 전수한다. 특별한 커리큘럼은 없지만 모종 선택하는 방법, 유기농 농법 등 경험에서 터득한 내용들 위주로 꼭 알아야 할 것들을 개인 과외 형식으로 알려준다.

 

 

유기농, 건강부터 수익까지 OK


처음 귀농했을 때 운 좋게 유기농 EM 농법을 접하게 된 것도 주변의 멘토 덕분이다. 발효시킨 미생물을 농사에 접목한 이 농법은 생물 화학비료나 농약처럼 즉각적인 효과는 없지만 다양한 미생물이 토양을 건강하게 만들고, 부가적으로 지렁이 등 토양에 이로운 생물에게도 도움을 준다. 농사의 근본이 되는 토양이 탄탄해 짐으로써 농사에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힘 있는 토양 위에 세워진 2천여 평 규모의 농원에서 사계절 동안 200여 종이 넘는 농산물이 자란다.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시작한 농사이다 보니 내다 파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인심 좋게 지인들과 나눠 먹은 농산물이 입소문을 타고 주문으로 이어지니 보람이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건강이 악화되어 귀농을 결심했기 때문에 농약이나 화학비료는 일절 쓰지 않고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1차 목표였어요.
나와 내 가족이 먹을 재료니 그게 당연했죠. 판매를 목표로 하지않으니 좀 작거나 모양이 예쁘지 않아도, 가장 맛있을 때에 맞춰 수확해요.” 그런데 오히려 상품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더 인기를 끈 게 아닌가. 맛을 본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서 소규모주문 판매를 좀 더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이 농원에서 방사해 키우는 재래닭(토종닭은 우리나라 전통 닭을 개량해 몸집이 크고 달걀이 크고, 재래닭은 우리 조상들이 키우던 옛 품종 그대로여서 몸집도 작고 달걀도 작지만 맛은 훨씬 뛰어나다)이 낳은 유정란은 한 알당 1천원, 산양유는 500ml에 3천원으로 시중에 비해 훨씬 비싸지만 주문이 점점 늘고 있다(현재는 지인들 주기에도 부족해 판매는 못하고 있다).
잘 가꿔놓은 잔디밭 위에서 바비큐를 구우며 자연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간혹 모임 장소로 대여도 한다. 잘 가꾼 농원이 관광상품도 되는 것이다.

 

 

농원의 생활은 ‘삶 그 자체’

이제는 수익 구조도 슬슬 체계가 잡혀가고 건강이 회복되었으니 김익수 씨의 귀향은 꽤 성공적이다.
부부가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하는 날도 있고, 한여름에는 70~80도까지 치솟는 비닐하우스 열기를 피하기 위해 늦은 밤에 헤드 랜턴을 쓰고 작물을 거둬들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만족스럽다.
“직장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난 뒤에도 주말 이틀을 농원에서 보내고 나면 스트레스가 모두 풀리는 기분이에요. 잡념이 사라지고 몸은 훨씬 개운해지죠.” 사회생활과 농원 일을 병행하는 부인의 설명에 김익수씨가 말을 잇는다. “사람들이 종종 장점과 단점을 묻곤 해요. 어떤 점이 좋다고 자세히 설명할 순 없어요.
농원 일도 힘이 드는 건 사실이니까요. 다만 이곳에서의 생활은 ‘삶’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장 생활을 ‘삶’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살아간다’는 느낌이 강해요.”
은퇴 후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김익수 씨의 인생 2막은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성공적인 발걸음임에 틀림없다.

 

 

선배 농부에게 듣는 농원 경영 팁

Note 1 유기농법을 활용하라
유기농법이 ‘대세’지만 아직도 옛날 방식을 고수하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다. 공부를 통해 새로운 농법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도시 농부들 이 가지는 장점. 일본에서 도입해 농촌진흥청에서 배포하는 EM 농법의 경우에는 EM 효소액을 배양해 활용하는 방식으로 연 10만원 정도의 비용만 있으면 화학비료나 농약 없이도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농촌진흥청 홈페이지(www.rda.go.kr) 등을 통해 배울 수 있다

Note 2 다년생 작물로 일손을 아껴라
초보 농군이라면 일손 하나하나가 아쉽기 마련.
이때 ‘다년생 작물’로 일손을 줄일 수 있다. 번거롭게 해마다 파종할 필요 없이 한 번 심어놓으면 몇년 동안 계속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수월하다. 감자나 고구마, 더덕, 도라지 같은 뿌리채소나 돌나물, 부추, 미나리, 아스파라거스 같은 잎채소가 대표적인 다년생 작물이다. 그의 농원을 둘러싸고 있는 꽃들도 대부분 다년생이다.

Note 3 희귀작물과 동물에 주목하라
김익수 씨의 닭장에는 눈에 띄는 닭들이 있다.
민화 속에 나오는 재래닭이 바로 그것. 토종닭과는 달리 알도 작고 몸집도 작은 편이지만 그가 재래닭을 선택한 이유는 ‘신토불이’ 때문이다. 우리 땅에 가장 잘 맞는 동물이 우리 몸에도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 재래닭은 달걀을 못 먹는 사람들도 알레르기 없이 먹을 수 있어 훨씬 비싼 값이 판매할 수 있다. 유기농으로 키운 산양은 산양유로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남들 다 키우는 동물 대신 특화된 동물 또는 작물을 선택하면 경쟁력이 있다.

Note 4 초보자는 씨앗보다 모종이 편리하다
초보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씨앗을 구입하는 것인데, 이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싹을 틔워 땅으로 옮겨 심는 데까지 걸리는 노력과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 차라리 초보자라면 모종을 구입하는 편이 편리하다. 경험이 쌓이면 다음 해에 씨눈으로 활용할 작물을 미리 안배하는 요령도 생기니 초보자라면 욕심내지 말고 모종을 활용할 것.

Note 5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라
농촌의 한 해는 설날부터 시작된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파종에 돌입하기 때문. 한 해 농사를 성공적으로 지으려면 이 시기에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현명하다. 시기 별로 어떤 작물을 어느정도 심을지를 구상해 두는 것이 시간과 돈을 모두 절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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