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배우 남경주

기사 요약글

그는 2시간 동안 촬영이 아니라 뮤지컬 한 편을 공연하고 사라졌다.

기사 내용

남경주. 그에게는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다.
그의 이름이 곧 뮤지컬로 다가온다. 열심히 살아온 날의 보상이다.

그는 뮤지컬<만덕>의 연습을 끝내자마자 바로 촬영장으로 달려왔다. 가쁜 숨을 가라앉히고 시작된 촬영. 이 뮤지컬 배우는 금세 스튜디오를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 그는 촬영 내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몸은 흘러나오는 쿠바 재즈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탔고, 눈은 개구쟁이에서 마초까지 그의 삶을 연기했다. 수많은 연습으로 다져진 몸의 균형감과 유연성에 스태프의 감탄사가 곳곳에서 터졌다. 그는 2시간 동안 촬영이 아니라 뮤지컬 한 편을 공연하고 사라졌다.
 

몸을 어떻게 관리하나요?
20대는 너무 말랐고 지금은 30대 시절의 몸이에요.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수영과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고, 일상에서도 스트레칭은 습관이지요. 또 많이 걷습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고 자가용 대신 지하철을 타요. 건강에도 좋지만, 사람을 관찰할 수 있어요. 걸음걸이와 걷는 속도를 보면 저 사람이 병약한지 건강한지 알 수 있어요. 직업병이기도 해요. ‘내가 만약 저런 역을 맡으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고 관찰을 통해 상상하는 겁니다.
 

호기심이 많은 편인가 봅니다.어릴 적부터 많았어요. 내 발로 찾아가 기계체조를 배웠고요. 미술도 전공했죠.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았어요. 성격이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냥 해요. 하고 나서 이건 나와 맞다, 안 맞다를 판단하죠. 배우가 된 이후에는 관찰할 공간을 찾아다닙니다. 보고 들으며 내 몸의 감각을 깨우는 저만의 훈련이지요. 그래서 틈만 나면 시장으로, 서점으로, 산으로 가서 그곳에서 귀를 열고 눈으로 순간의 진실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자연과 삶의 경이로움을 체험해보는 것이지요.

 

 

집에 가만히 있는 성격은 아니군요.
그러면 저는 불안해요. 움직여야 해요. 그래서 자꾸 나가려고 하지요.
 

혼자 있는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오전 4시 30분 정도에 일어나요. 그리고 바로 개인 스튜디오에 갑니다.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 감상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피아노 연주도 하지요. 1시간 30분 정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죠. 그러고 나서 운동하러 가고, 이후엔 연습하러 갑니다. 30년을 이렇게 살아왔어요. 이제는 이 스케줄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아파요.
 

자기 삶에 치열하네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진지하게 일하지 않는다? 그건 자기를 배반하는 행동이에요. 멀리서 인간다운 삶을 찾는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신이 우리에게 준 인간다움,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 아닐까요?
 

영화 <신과 함께>에 나오는 지옥 중 나태 지옥은 무사 통과하겠습니다.
(웃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게으름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제 나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오로지 연기만을 위해 사는 배우 같네요.
배우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에요. 인생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어린아이 때의 감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아이들 눈에는 세상 모든 게 다 경이롭잖아요. 그 순수했던 감정을 끄집어내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무대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요.
 

보는 것만으로 순수의 감각이 깨어나던가요?
물론 책도 읽고 예술에 대한 관심도 갖지요. 중요한 것은 보고 듣고 읽은 것을 토대로 저에게 “왜”란 질문을 계속 던집니다. 그 질문에 답하면서 나를 조금씩 정리해보는 사유의 시간을 갖죠.

 

요즘 읽고 있는 책 중 사유에 도움을 주는 책이 있나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 푹 빠져 있어요. 지난해 대구 공연 때 서점에서 발견한 책인데, 보자마자 바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샀어요. 소유적 실존이냐, 존재적 실존이냐? 요즘 내 삶에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에요.
(그는 책에 밑줄을 긋고 연필로 메모까지 해가면서 정독 중이었다. 수험생이 참고서를 보는 것 같았다. 남경주는 책을 좋아하는 배우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배우를 그만두면 책과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사유하는 걸 즐기나 봅니다.
좋아합니다. 사유의 사전적 의미는 ‘깊이 있게 심사숙고함’이지만 본뜻은 ‘전에 있던 잘잘못을 비교하여 앞으로 더 나은 쪽으로 가려는 정신적 작용’이라고 합니다. 저는 사람은 끝까지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삶은 모든 게 내가 어제까지 사유한 결과물이잖아요.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맡은 인물을 어떻게 연기할까 고민하며 분석한 사유의 결과물로 무대에 오르잖아요. 사유를 통해 모든 감각을 열어놓으면 나는 누구인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정리가 돼요. 무엇보다 주어진 삶의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서고, 그렇게 살도록 나를 이끌어주고요.
 

나에 대한 분석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나이와 상관없이 성장해가는 사람, 하지만 아직도 호기심이 많아서 위험성도 다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저예요. 순간의 진실을 추구하며 사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고요.
 

나 자신에게 만족하나요?
그럼요.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전 자존감이 높습니다. 이유는 단순해요. 남과 절대 비교하지 않거든요. 저는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남경주이거든요.
 

자존감은 타고난 것인가요, 훈련된 것인가요?
어려서는 욕심이 많아 남과 비교를 많이 했어요. 전환점은 주로 배우들이 겪게 되는 변화인데 주연에서 조연으로 바뀌는 시점이었지요. “내가 왜?” 하며 처음에는 거부했어요. 몇 년간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며 내린 결론은‘내려오는 것이 결코 후퇴가 아니다’였어요. 내려와야 다시 올라갈 수 있잖아요.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고요. 그렇게 받아들이니 제가 한결 편해지더라고요. 뭐랄까? 내려놓으니까 더 많이 보이고 행복의 가치도 더 선명하게 보이더라고요. 지금 오십대의 제 모습이 너무 좋아요. 젊은 시절로 돌아가라면 안 갈 겁니다.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아도 지하철에서 알아봐주고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거나 목례하고 그런 편안함이 일상에서 행복을 가져다주더라고요.

 

 

지금이 인생의 전성기라고 생각하나요?
전성기란 특정 시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기 이론에서 배우를 ‘가상의 상황 속에서 순간의 진실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합니다. 저는 이 말이 우리 인생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해요. 내 삶에서 순간의 진실을 느낄 때가 바로 전성기 아닐까요?
 

10년 뒤엔 어떻게 살고 싶나요?
계속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삶을 원해요. 그리고 하나 더, 몸도 마음도 힘을 빼고 무겁지 않게 살고 싶어요.
 

뮤지컬<만덕> 외에 올해 준비 중인 프로그램이 있습니까?
재미있는 공연을 준비 중이에요. 가요를 편곡해 스토리를 넣고 안무를 버무려 사람들에게 선보일 생각이에요. 대중적인 가요도 이렇게 멋진 뮤지컬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아이들 뮤지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제가 걸어온 영역에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명예교사 활동, 서울시 정신건강 캠페인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더 적극적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수많은 작품 중 삶에 영향을 준 대사는 무엇인가요?
<돈키호테>는 대사 하나하나가 주옥같죠. 뮤지컬<맨 오브 라만차>에서 ‘임파서블 드림(이룰 수 없는 꿈)’이란 곡이 있어요.(그는 가사를 음미하며 이 곡을 불렀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리 저 별을 향하여
_뮤지컬<맨 오브 라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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