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시, 원재훈 시인의 글쓰기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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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이자 소설가다. 십 대 시절부터 중년의 나이가 된 지금까지, 때로는 신의 손길처럼 그의 손을 잡아주고 든든히 기댈 벽이 되어주었으며,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준 문학작품과 함께 성장하고 사랑하며, 또한 버티면서 살아왔다. 출간한 책으로 시집 <딸기>와 소설 <망치>, 에세이 <고독의 힘> 등이 있다.

 

 

시를 많이 읽는 것이 기본

 

시는 언어의 한 형태로, 그 본질상 대화적이기 때문에 일종의 유리병 편지와 같습니다. 그 유리병이 언젠가, 그 어딘가에, 어쩌면 마음의 땅에 가 닿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유리병에 담아 띄우는 편지지요. _파울 첼란, <브레멘 문학상> 수상문 중에서

시는 일반적인 산문과는 구조가 다르다. 문장이 짧아서 쉬워 보이지만 막상 펜을 잡으면 막막하기도 하다. 시 쓰기는 모든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시 읽기에서 출발한다. 시를 많이 읽고 외우면 좋은 문장을 만드는 기술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 일상에서 시 쓰기 기술을 활용할 곳은 무궁무진한데 특히 짧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문을 쓸 때 시적인 문장이 유용하다. 시를 많이 읽으면 글 제목이나 중간 제목도 잘 뽑는다. 그 능력은 광고 문안, 스마트폰 메시지 등에도 이어진다.
 

의미 발견하기

아프다고 썼다가 지우고 나니 / 사과꽃이 피었습니다
보고 싶다고 썼다가 지우고 나니 / 사과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_도종환, <사월 바다> 중에서 ‘사과꽃'

‘보고 싶다’를 썼다가 지우니 ‘사과꽃’이 피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논리적으론 설명하기 힘들다. 그래서 시는 행간과 종이의 여백까지 같이 읽어야 한다. 독자에 따라 달리 읽히고 의미가 다르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만약 병자가 이 시를 읽는다면 자신의 병이 완치되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상처가 치유되고 그 자리에 꽃이 피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밤새 편지를 쓰고 나서 활짝 핀 꽃을 보고 자신의 마음이 전달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 짧은 시 몇 줄을 놓고도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이 시는 소재로 사과꽃을 선택했다. 왜 사과꽃일까? 장미나 민들레, 백합이나 카네이션이 아니라 왜 사과꽃일까? 다른 꽃과 달리 사과꽃은 상품화되지 않는다. 사과를 맺기 위해 피었다가 지기 때문이다. 시인은 여기에 주목한 것이 아닐까? 향기나 모양이 돋보이는 꽃이 아니라, 결실을 의미하는 꽃으로 사과꽃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리듬감 살리기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여져 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 가는 소란을
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
_김수영의 ‘꽃잎’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자. 눈으로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감상을 할 수 있다. 도자기를 손으로 만지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 이 시에는‘주세요, 받으세요, 잊어버리세요, 믿으세요’라는 말이 반복된다. 같은 단어의 반복을 통해서 리듬을 살리고 의미를 강조하는 효과를 거둔다. 그런데 이 시를 간소한 문장으로 바꾼다고 반복되는 문장을 줄여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는 사라지고 의미도 사라지고 그저 허접한 산문만 남게 된다. 글쓰기에 절대 원칙은 없다. 특히 시는 맞춤법, 띄어쓰기까지 무시하고, 비문으로 보이는 문장을 일부러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꽃을 소재로 시를 쓴다면 어떻게 써야 할까? 표현 기법만 다를 뿐, 글쓰기의 대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우선 자신의 것을 써야 한다. 그럼 내 시를 위해 어떤 꽃을 찾아야 할까? 일단 우리 동네 담벼락에 피어 있는 나팔꽃이나, 공원을 산책하다 본 연꽃이나, 봄날 보도블록에 피어 있는 민들레를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습작을 반복하다 보면 어떤 시기에 주위의 모든 사물이 꽃으로 보이는 순간이 다가오지 않을까? 그때 자신만의 시가 꽃망울 터지듯 피어날 것이다.

 

단어를 사람 보듯 대하라

꽃을 피워 밥을 합니다
아궁이에 불 지피는 할머니
마른 나무 목단, 작약이 핍니다
부지깽이에 할머니 눈 속에 홍매화 복사꽃 피었다 집니다.
어느 마른 몸들이 밀어내는 힘이 저리도 뜨거울까요
만개한 꽃잎에 밥이 끓습니다
밥물이 넘쳐 또 이팝꽃 핍니다
안개꽃 자욱한 세상, 밥이 꽃을 피웁니다
_엄재국의 ‘꽃밥’

이 시는 밥을 짓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매일 먹는 밥을 어떻게 이렇게 보았을까 싶어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꽃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꽃은 생명의 상징이기에 밥과 잘 어울리기도 한다. 단어와 단어는 서로 어울릴 때 창조적인 힘을 갖는다. 좋은 단어가 만나면 친구가 되고, 반대의 경우에는 원수가 된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만나 절묘하게 어울리는 것이 최상의 조합이고, 어울릴 만한 것들이 어울리면 보통,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단어가 만나는 순간 의미가 깨어지면 최악이 된다. 시인은 꽃과 밥을 함께 노래했다. 창조성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먹는 밥과 내가 보는 꽃처럼 평범한 것들의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시를 쓸 때 단어를 사람 보듯이 하길 바란다. 글자가 사람을 만나 한 몸이 될 때 시어가 태어난다. 지금 내게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과 나에게 다가오는 사회현상까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책상에 앉자. 나에게 가장 많이 다가오는 사물과 단어를 적고 조금씩 사유의 세상을 넓혀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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