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 속 골목 산책

기사 요약글

앞만 보는 데 익숙해진 우리에게 여유를 선사하는 DDP 속 골목 산책

기사 내용

 

서울의 중심부인 동대문에는 보물 1호인 흥인지문이 자리하고 있고 낙산 자락의 서울성곽이 남산으로 이어진다. 그 사이에 있었던 동대문운동장을 대신해 2014년 3월, DDP라 불리는 마치 우주로부터 불시착한 이상한 건물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마천루같이 솟아오르는 현대건축물과는 다르게 8만5000㎡의 대지에 나지막한 높이의 둥근 곡선으로 된 비행체 같은 형태로, 충격과 놀라움을 동시에 안겨줬다.

기존 건축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 DDP는 이제는 고인이 된 이라크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고의 확장이 요구되는 현대사회에서 공간의 효율적 사용을 위한 기능적 정의가 단지 직선의 선과 면으로 분할하는 기계적 사고에 국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DDP는 비정형 곡선과 곡면을 사용해 내부와 외부의 공간이 이어지고 소통하게 했으며, 지면과 지상 그리고 지하의 역사적 문맥을 조율해 시시각각 역동적인 형태와 공간의 다름을 연출했다. 이는 DDP를 걷는 사람들에게 쉽게 잊히지 않는 공간적 경험을 안겨준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골목

 

5060세대에게는 여전히 동대문운동장의 모습이 생생할 것이다. 현재는 야구장의 조명탑만이 남아 과거를 상기시키며 역사성을 말해주는데, DDP의 착공과 함께 이 장소의 역사적 발굴과 복원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 세 곳의 전시장이 함께 완성됐다.

‘배움터’는 체험을 위한 디자인 놀이터와 디자인 박물관, 디자인 전시관으로 구성되었고 533m의 나선형 디자인 둘레길이 인상적이다. 2층 디자인 박물관에서는 전형필 선생의 호를 따서 만든 ‘간송문화전’을 상설로 전시해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한 80여 점의 국보급 유물을 볼 수 있다. 창조적인 공간인 ‘알림터’는 기둥 하나 없는 백색의 커다란 조형 공간에서 국제적 규모의 컨퍼런스가 열리고 동시에 패션쇼와 다양한 행사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살림터’는 미술품과 공예품 그리고 디자인 소품과 리빙 관련 가구들을 판매한다. DDP 골목 산책은 각각의 전시장 속 내용에 집중하기보다는 서울의 중심에 선물처럼 안착한 DDP 자체에 집중한다.

DDP의 외관은 은색의 알루미늄 소재로 뒤덮여 있고 내부 공간은 흰색으로만 도장해 바깥세상의 복잡하고 요란함과는 거리가 멀다. 건물은 크게 ‘공원부’와 ‘건축부’로 나뉘어 공간의 진입과 소통을 조율한다. 밤과 낮의 구분이 상반된 고층의 패션 상권 건물들과 연계된 다양한 접근로에 들어서면 지하광장부와 상부층으로 연결되는 입체적 동선의 흐름에 따라 그동안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공간과 골목을 보여준다. 시민들은 새로운 형태의 건물 속 열린 골목을 걸으면서 상당한 수준의 미술, 디자인, 패션과 관련된 쇼와 전시를 보며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시대정신(Zeitgeist)을 공감할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DDP

 

DDP 산책을 하노라면 마치 우리가 공상과학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지하철역에서 바로 연결되는 배움터 옆으로 완만한 언덕길을 걷다 보면 건물의 옥상정원에 다다르는데, 그 정원과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있다. 산책하며 마주치는 둥근 은색 건물의 모습은 자신이 DDP 밖에 있는지, 안에 들어와 있는지 알 수 없는 재미있는 혼선을 준다.

실내로 들어서면 더욱 흥미로운 산책이 시작된다. 수직 벽면은 찾아볼 수 없다. 모든 벽과 천장은 사선과 곡면으로 되어 있고 기둥을 감춰 마치 우주에 떠 있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조명 역시 천장과 벽면 안으로 스며들어 의식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계단도 흥미롭다. 오르다 보면 폭과 난간의 모습이 계속 변화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화장실 벽면에 붙인 타일 면조차 기울어져 있다.

또 내·외관을 드나들며 산책을 하다 보면 자신이 몇 층에,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동안 수직에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고정관념으로는 이곳의 공간언어가 매우 당황스럽고 불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 너머에는 우리가 주변을 어떻게 느끼고, 또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즐기면 좋을지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이미 DDP의 공간언어를 친숙하고 재미있는 놀이로 받아들인다. 불편함은 5060세대의 것이다. 자신이 아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 건물은 사각형의 상자 형태가 아닌 둥근 곡선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목적을 향해 걷는 산책이 아닌, 여유를 가지고 걸으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창의적 영감까지 DDP 산책을 통해 얻는 생경한 경험은 소소하지만 깨닫는 순간 소중해진다.

 

 

 
 
 

사람들은 DDP가 효율적인 건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공공건축물까지 효율성과 기능성에 집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효율적이 아닐까? 장자는 ‘무용지유용(無用之有用)’ 즉 쓸모없는 것이 가장 쓸모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효율적이고 상징적이기만 한 오래된 공공시설이 시간이 흘러 그 가치를 발하며 지역의 명소가 되기 때문이다.

오래되고 외면 받았던 후미진 골목에서 겸손하고 소박한 온고지신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면 다름과 차이가 분명한 새로움을 제시하는 DDP 골목 산책을 통해서는 발상의 전환과 상상력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산책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오니 주변 보도블록이 눈에 들어온다. DDP 외관에 부착된 알루미늄 모양과 같은, 사선이 강조된 다이아몬드 형태다. DDP 밖 보도블록까지 디자인하는 건축가의 세심함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조금 멀리서 DDP를 바라보니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DDP가 아닌 ‘DREAM DESIGN PLAY 꿈을 꾸고, 생각을 디자인하고, 창의적으로 놀아야 한다’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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