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도 있게 인생을 채우는 남자 박상원

기사 요약글

초 단위로 시간을 나누며 인생을 채우는 박상원

기사 내용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활용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흘러가는 대로 방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의미라도 건져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박상원은 후자다. 그는 1시간을 60분으로, 60분을 다시 3,600초로 바꾼 뒤, 순간순간이 ‘인생의 명장면’이 되도록 노력하며 산다. 꼬깃꼬깃하게 접힌 그의 ‘월간 스케줄표’에는 그래서 여백이 없다. 밀도 있게 자신의 인생을 채워가는 박상원을 만났다.

 

이틀 전 식목일이 생일이었죠? 어떻게 보내셨나요?
매년 비슷비슷해요. 식구들이랑 식사나 한 끼 하는 거죠. 올해는 마침 비가 와서 막걸리에 전으로 때웠어요(웃음). 저는 늘 좋은 날을 보내고 있어서 그런지 ‘생일이니까 특별히 더 즐거운 하루를 보내자’ 그런 생각은 안 들어요.

생일 말고도 축하할 일이 또 있었죠? 최근 라이나생명 모델로 발탁되었잖아요. 그 인연으로 또다시<헤이데이> 표지 모델이 됐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주름살도 늘었고, 배도 좀 나왔지만 아직까지 내가 신뢰감 있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방증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광고도 그렇지만 제가 여러 단체의 홍보대사나 명예위원 등을 많이 맡는 편인데, 그런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감사한 마음 한편에 내가 과연 저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그렇게 반듯하게 살아왔나?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의문이 들어 창피하기도 하죠(웃음).

TV에 안 나오면 그저 쉰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작년 초 마지막 드라마를 끝낸 뒤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작품 활동을 쉴 때 오히려 더 바빠요. 그간 미뤄뒀던 약속도 잡아야 하고, 제자들과(그는 서울예술대학교 교수다) 각종 작업도 시도해보죠. 기관장이나 홍보대사 같은 맡겨진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고, 봉사활동이나 취미 생활을 위한 시간도 따로 빼야 해요. 이렇게 정신없이 살다가도 작품 들어가면 싹 정리하고 촬영장과 집 밖에 모르는 단순한 생활을 하죠(웃음).

올해만 해도 벌써 한국장학재단 홍보자문위원, 무용문화포럼 회장,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극장장이란 타이틀을 얻었어요.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게 힘들진 않으세요?
원래 가만있지를 못하는 성격인 걸요(웃음). 이런저런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데 제가 조금이라도 좋은 쓰임새로 활용될 여지가 있으면 응하는 편이에요. 물론 좀 쉬었으면 싶을 때도 많죠. 하지만 힘들고 번거로운 과정을 이겨냈을 때 그 결과물이 항상 좋았다는 경험을 많이 해봐서 그냥 포기하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여러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하는 비결도 있을 것 같아요.
여기 이 스케줄표 보이시죠(그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볼펜으로 찍찍 그어 만든 너덜너덜한 4월 스케줄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한눈에 그달의 전체 일정이 눈에 들어오는데 마치 블록을 쌓듯 빈칸을 채워 넣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거예요. 꼭 뺄 수 없는 일들은 형광펜으로 체크하면서 말이죠. 어떨 때는 하루에 세 개씩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데 이게 어려워 보여도 시간을 잘 분배하면 또 수가 보여요. 하루는 24시간, 이를 또 분으로 쪼개면 1,440분인데 단 30분만 투자해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또 얼마나 많아요. 영화를 1초 1초의 프레임으로 나누듯, 우리 일상도 매 순간 세밀하게 나눠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할지에 대한 태도를 명확히 하면 버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죠.

박상원은 그냥 연기만 하는 배우가 아니에요. 사진, 미술, 건축, 등산, 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단순한 흥미 차원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인생을 단색으로 칠하고 싶지 않아요. 빨강, 노랑, 파랑, 초록, 검정 등을 마구 뒤섞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색깔을 내고 싶었죠. 요즘 강조하는 융·복합이나 컬래버레이션과도 일맥상통하는 얘기인데, 여러 갈래를 다 경험했기 때문에 모순되게도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개성이 표출되는 것 같아요. 저는 운 좋게 현대무용과 발레, 뮤지컬과 연극 등을 두루두루 거쳤고 사진, 미술, 그래픽, 인테리어, 일러스트 등 평소 관심이 가는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었죠. 그게 어떤 형태로 발현이 될지 늘 기대하고 있어요. ‘사진 찍는 배우’ ‘포스터 디자인하는 교수’로 살 수 있는 지금이 늘 행복하고요.

원래 꿈이 배우였나요?
아니요. 원래는 미대에 가서 화가가 될까, 사진 전공해서 사진작가가 될까 그랬죠(웃음). 연기는 순전히 뒷걸음치다가 하게 됐어요. 고등학교 선배가 담벼락에 붙여놓은 공연 포스터를 구경하다가 문득 ‘저 포스터 속 배우가 나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사하겠다 싶어서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들어갔는데 이건 뭐 신세계더라고요. 수업을 극장에서 한다는 것도 너무 신기했고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를 표현하는 게 공부라는 것도 충격적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 배운 수학, 영어 같은 건 열심히 해도 잘 안되던데 연기는 노력한 만큼 결과물이 나오니 진짜 잘하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연기하겠다는 친구들이 모였으니 다들 얼마나 잘나고 빛났겠어요. 거기에 비하면 저는 너무 평범해서 진짜 열심히 노력해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었어요.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뭐에 도전하든 ‘힘들지 않다, 즐겁다’고 스스로를 길들인 게.

늘 끈기 있게 뭔가를 추구한다는 점이 멋있어요.
그만큼 좀 피곤하게 살아요(웃음). 뭘 하든 다 제 손을 거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제가 이끄는 단체나 모임에서 특히 더 그런 기질이 발휘되는데, 작은 행사라도 기획하는 날이면 포스터나 답례품, 초대장 디자인까지도 일일이 신경을 쏟아요. ‘전문가가 있는데 내가 이렇게 참견해도 되나? 너무 나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늘 하기 때문에 독선이나 아집을 부리지 않도록 애쓰고 있죠.

‘내 안목, 판단이 맞을까’ 걱정되진 않으세요?
그런 불안이야 늘 있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공부하게 되는 면도 있어요. 유명한 건축가, 디자이너, 작가들의 작품을 자주 보고 익히는 과정에서 안목도 높아지고 또 내 식대로 재창조할 여지가 생기거든요. 뭐가 됐든 늘 49%는 외부에서 51%는 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길 바라지요. 그래야 ‘나다움’을 잃어버리지 않는 기분이니까.

‘박상원다움’이란 왠지 아날로그 감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손 편지 쓰고, 2G폰 쓰는 것처럼요(웃음).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활이 편리해졌다고 말하지만,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것도 만만찮은 손해예요. 나는 그걸 혼자만이라도 좀 간직하고 싶은 거고. 만나서 서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얼마나 우스운 일이에요.

 

 
 

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 뭐예요?
저는 인간관계가 피아노 연주 같다고 생각해요. 건반을 부드럽게 잘 누르면 기분 좋은 소리가 흘러나올 것이고, 히스테릭하게 쳐대면 시끄럽고 거슬리는 소리가 나겠죠.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행동하라는 얘기가 있듯,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싶으면 먼저 좋은 사람이 돼야죠.

예컨대 어떤 방법으로요?
상대를 먼저 배려해주면 좋겠죠. 저는 주로 먼저 밥을 사요. 경험상 남이 사주는 밥이 정말 맛있거든요(웃음). 그런데 그보다 조금 더 맛있는 게 내가 사는 밥이더라고요. 신기한 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사람들이 대부분 또 밥을 사더라는 거예요.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고 귀하게 여기며 관계를 발전시키는 거죠.

밥값이 만만찮겠는데요(웃음).
그런 돈은 별로 안 아까워요. 오히려 본인한테 인색하죠.

무척 검소하다는 말은 들었어요. 종이 지갑을 쓸 정도라고요.
지금은 이 가죽 지갑을 쓰죠(그가 뒷주머니에서 꺼내 보인 흰 지갑은 가죽이 낡고 해져 볼품이 없었다). 그때 그 종이 지갑에다 ‘돈을 합리적으로 잘 쓰자’ ’백일 금주를 지키자’ 같은 결심도 적어놨는데 어쩌다 잃어버렸어요.

그 흔한 명품을 마다하는 이유가 뭐예요?
요즘 말하는 명품이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다는 생각 안 해보셨어요? 그 정도 가치가 있을까 늘 의문이에요. 저도 그렇지만 우리 아내도 명품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이런 말 하면 팔불출 같지만 진짜 우리 아내는 사람이 명품이거든(웃음). 나도 연예인인데 왜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랴마는 명품 말고 행동이나 생각의 진정성 같은 걸로 좀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나눔’ ‘봉사’ ‘기부‘ 같은 좋은 일 많이 하잖아요. 고액 기부자 명단에까지 올랐다고 들었어요.
1~2년 기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28년 가까이 나누고 도우며 살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고마울 때가 있어요. 이번 달에도 한 방송국과 함께 케냐로 봉사활동을 가는데‘박상원 씨를 통해 시청자의 주목과 관심을 유도하자’는 말이 새삼 고맙더라고요. 내가 대중에게 그렇게 비친다면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뛰어야죠.

기부나 나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그 필요성을 잘 모르는 분이 많아요.
탈무드에 ‘당신이 가진 촛불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그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라는 글이 있대요. 내 촛불이 그대로인데도 빛이 점점 더 밝고 크게 번진다면 나누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기부나 봉사도 마찬가지예요. 심지어 타인을 위해 무언가 베푸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연구 결과도 있죠. 그러니 봉사나 나눔 같은 활동이 남이 아닌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인식을 가져보세요. 한 번이라도 ‘베푸는 자의 희열’을 경험한다면 아마 그다음은 굳이 누가 권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움직이게 될 거예요.

내년이면 앞자리 숫자가 6으로 바뀌는데 나이에 대한 서글픔은 없으세요?
어른의 프레임 안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정말 무던히 노력하며 살았는데 어느덧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그건 내가 몇 살이니 하는 숫자적인 관념에서 오는 게 아니고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더라는 거예요. 촬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다들 저에게 ‘어른 노릇’을 기대하거든요. 물론 더 나이가 많은 선배들이 있지만 그들은 뭐랄까 ‘보호해야 할 어른’이라면 저는 실행해야 하는 어른인 셈이죠. ‘가장 역동적인 젊은 노인’이라고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어요(웃음). 방금 더 좋은 말이 생각났네요. ‘헤이데이스러운 어른!’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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