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때 맛있는 집 보다는 먹고 나서 속 편한 집.
20~30대에는 ‘먹을 때 맛있는 집’을 찾는다. 혀에 속고, 이리저리 유혹에 흔들리기 일쑤다. 그러나 나이 들면 안다. 40대 중반쯤 되면 음식점에 대해서도 불혹(不惑)이 되니까. 40대를 넘기면 몸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밥 먹고 돌아오는 길에 유달리 물이 당길 때가 있다. 조미료, 소금, 설탕, 액상과당, 각종 첨가물 범벅을 먹은 것이다. 혀는 속여도 몸은 못 속인다. 그래서 이 나이엔 ‘먹고 나서 속 편한 집’을 찾는다. 혀가 아니라 몸이 먼저 찾는 집이다.
한식이란 무엇인가? 우리 선조들은 공자의 <논어> ‘향당(論語 鄕黨) 편’의 문구를 즐겨 내세웠다. ‘사불염정, 회불염세(食不厭精, 膾不厭細)’, 즉 ‘(공자께서는) 밥은 깨끗한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고, 회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셨다’고 했다. 깨끗한 밥과 가늘게 썬 회가 좋지만 굳이 그것을 찾는 것은 구복(口腹)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구복은 입과 위다. 입에 맞는 것, 배부른 것을 굳이 찾지 말라는 뜻이다.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맛이 바로 나의 단골집 조건이다.
진정성 있는 사찰 음식 전문점
걸구쟁이네
이 집을 안 지 10년이 넘었다. 외진 곳이라 자주 가진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 음식점의 맛을 검증하러 가자고 했다. 불쑥 따라 나섰더니 이 집이었다. 안면이 있는 집을 검증하는 것은 위험하다. 단골이라고 했더니 담당 연출자 얼굴이 굳었다. “진짜세요?” “1년에 한두 번 정도 가지요.” 2~3년에 한 번씩 가기도 했다. 다만, 그 세월이 10년을 넘겼을 뿐이다. 다행히 주인이 알아보지 못했다. 이 집은 고즈넉한 분위기에 음식이 정갈하고 포근했다. 사찰 음식 전문점으로 음식이 그악스럽지 않다. 수수한 나물의 맛을 제대로 살렸다. 이 집 음식의 비밀은 바깥에 있는 장독대다. 각종 된장, 간장을 비롯해 여러 가지 효소를 직접 담근다. 장맛이 수준급이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산초장아찌를 권한다. 다른 식당에서는 맛보기 힘든 것이다. 부각도 아주 좋다. 부각은 찹쌀 풀을 쒀서 김에 바르고, 말리고, 튀겨야 한다. 손이 많이 가지만 모양새는 빠진다. 그러나 그 맛은 몸이 먼저 안다. 가벼운 술안주로도 아주 좋다. 두어 봉지 사 와도 좋다.
추천 메뉴 _사찰정식(1만3000원)
영업시간 _오전 11시~오후 9시
주소 _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문로 707
문의 _031-885-9875
40년을 한결 같이 맑은 돼지국밥
성화식당
언젠가 강의 차 대구에 갔다. 불현듯, 20여 년 전에 자주 갔던 돼지국밥집이 떠올랐다. 하지만 상호도 기억나지 않고, 같이 갔던 친구는 외국에 있고, 정확한 위치도 모르겠고. 이른바 사면초가다. 폭풍 검색을 했다. 돼지국밥, 동대구역 맛집, 동대구 맛집, 온 동네 이름 다 넣고 검색해도 찾을 수 없었다. 대구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동대구역 부근에 돼지국밥집, 맛집, 오래된 집 모르겠냐”고 물었다.‘인간 구글링’이 좀 나았다. 겨우겨우 찾아낸 집이 ‘성화식당’. 예전 이름은 ‘똘똘이식당’이었다. 이 지역에서 돼지 부를 때 ‘똘똘똘’이라고 소리 낸다. 그래서 똘똘이식당.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꾸준히 맑은 맛의 돼지국밥을 내놓는 집이다. 무려 20여 년 만에 찾으려니 퍽 힘들었는데 첫 숟가락을 뜨고 나니 바로 “아, 그래 이 맛이야”라는 느낌이 들었다. 참 좋았다. 돼지국밥 외에 돼지불고기와 수육이 있다. 수육을 만진 업력이 길다. 단골이 되면 ‘쇠고기보다 더 맛있는 돼지고기 수육’도 내놓는다. 단골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돼지국밥이 아주 정갈하다. 조미료, 감미료가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국밥 맛을 해친다고 부추겉절이도 주지 않는다. 마치 맑은 돼지곰탕 같다. 그런데 고소하고 구수하다. 단골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추천 메뉴 _토렴 돼지국밥 6000원
영업시간 _오전 10시 30분~오후 10시(화요일 휴무)
주소 _대구시 북구 경대로5길 10
문의 _053-941-3588
매일 두부를 만드는 두부 전문점
황금콩밭
두어 해 전 한 지인이 “길 건너편에 매일 손두부 만드는 곳이 있다”고 했다. 며칠 후 가봤더니 진짜 매일 손두부를 만들고 있었다.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서 금생에 두부를 만든다”는 말도 있다. 이 집은 오전 11시 30분에 두부가 나온다. 이를 위해 매일 새벽 5시 30분경 두부 만드는 일을 시작한다고 한다. 두부는 아주 좋다. 본래 수제 두부는 거칠다. 두부를 잘라보면 군데군데 크고 작은 구멍이 있고 자른 단면이 아무래도 거칠다. 입에 넣으면 콩의 풋내가 살아 있다. 아주 기분 좋은 풋내다. 지인들이 사무실 가까이 오면 대부분 이 집에서 두부를 먹인다. 특히 생두부의 맛이 압권이다. 누군가 “감방 갔다 온 것도 아닌데 매일 두부만 먹인다”고 웃는다. 좁디좁은 도시 공간에서 사는 것이 감방과 뭐 다르냐고 눙친다. 저녁 시간, 반주를 곁들이는 손님들과는 주인이 직접 만든 막걸리를 곁들인다. 감미료 없는 막걸리의 맛도 수준급이다. 식사는 두부전골이나 청국장, 바싹불고기 등으로 하더라도 식전에 생두부 맛보기를 권한다. 두부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 집 두부를 먹고 “아, 두부 맛이 이런 것이었구나”라고 감탄한다.
추천 메뉴 _생두부 1만원, 오모가리 청국장 1만8000원
영업시간 _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일요일 휴무)
주소 _서울시 마포구 굴레방로1길 6
문의 _02-313-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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