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내 안의 감옥’ - 행복공장 이야기
‘딱 일주일만 교도소 독방에 들어가고 싶다!’
행복공장을 설립한 故권용석 이사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검사로 10년, 변호사로 15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이 같은 배경에도 정작 자신은 검사로 재직하던 시절, 차라리 자신이 교도소 독방에 들어가고 싶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매일 새벽 1~2시 퇴근은 기본, 주 100시간을 서류더미에 파묻혀 누군가를 계속 감옥에 보내야 하는 삶에 지쳐, 매서운 추위가 오거나 몸에 상처가 나면 스스로 작은 굴을 파고 들어가 몸을 보호하며 회복하는 산 속 동물들과 같은 공간과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던 겁니다.
행복공장은 그러한 그의 진심과 바람이 담겨 만들어진 곳입니다. 검사로서 사회적인 권력을 얻고, 더 많은 부를 얻는 것을 목표하기 보다 그저 ‘행복’ 이라는 두 글자를 마음에 품었던 권용석 이사장과 아내 노지향 원장은 10여년 전, 전 재산을 출연해 강원도 홍천 맑은 숲속 가운데 28개의 독방이 있는 아주 특별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행복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독방을 내주었습니다. 비행청소년, 은둔고립청년, 장애인 가족들부터 배우, 감독, 언론인, 스님, 목사님, 신부님들까지 사회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이 행복공장의 1.5평 독방에서 자신을 만나고 저마다의 상처를 치유하는 회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곳에 머물며 누군가는 마음에 품고 살던 유서를 모닥불에 태웠고, 누군가는 세상에서 처음 받아보는 ‘좋은 어른의 위로’를 경험하며, 그저 편하고 안정되게 머물다 갔습니다.
# 나의 이야기 극장 – 나의 진짜 마음을 마주하는 시간
올해부터 행복공장은 새로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라이나전성기재단과 함께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뒷전인 삶을 살고 있는 돌봄가족들을 행복공장에 초대하여 전성기 자기돌봄캠프를 열고 있는데요.
돌봄가족들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 이 곳을 이끌고 있는 노지향 원장이 따뜻하면서도 담담하게 고백했습니다.
“저도 지난 10여년간 돌봄가족이었어요.
그래서 여기 오신 분들에게 더욱 특별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녀의 남편이자 이 곳을 설립했던 故권용석 이사장은 오랫동안 바라던 행복공장을 지은지 얼마되지 않아 암진단을 받았고 수차례의 수술과 투병 생활 끝에 2년 전 59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투병 중에도 행복공장에서 많은 사람을 맞이하고 성찰과 치유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나눔의 삶을 놓지 않았던 그의 곁에는 항상 아내 노지향 원장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치유 연극인으로 극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소년원생, 탈북민, 이주노동자, 장애인 가족, 기지촌 할머니들에게 작은 무대 만들어주었고 연극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억눌린 마음을 비로소 풀고, 상처를 치유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행복공장에서 치유 연극이 주는 힘과 온기를 많은 이들과 나누고 있는데요.
올해부터는 전성기 자기돌봄캠프를 통해 참가한 돌봄가족들이 이 곳의 작은 무대 위에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낮 동안 공기 좋은 곳에서 가벼운 산책과 액티비티로 몸의 긴장을 풀고, 건강한 강원도 밥상으로 허기를 채운 뒤, 저녁 시간이 되어 한 자리에 모인 참가자들이 순서대로 무대 위에 섰습니다.
#1.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나란히 치매가 찾아온 부모님을 혼자 돌보고 있다는 그녀의 무대 첫 장면은 무대 첫 장면은 경찰서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직장에서 일하다 말고 뛰쳐나가는 상황으로 시작합니다.
치매로 거리를 배회하다가 경찰에 발견된 두 부모님을 집으로 겨우 모시고 왔는데 부모님들은 그녀의 다리를 한 쪽씩 붙들고 있습니다. 옆에는 형제들이 있지만 회사일이 많다고 자신도 몸이 아프다고 등을 돌린 모습.
이 연극의 제목을 묻자, 그녀는 ‘어느 꿈 많던 여인’ 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이 연극을 통해 처음으로 ‘힘들다고, 도와달라’는 말을 밖으로 내뱉어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2. 가엾다, 참 가엾다
다음 무대에 선 70대 여성 참가자는 시종일관 자신과 마주한 빈 의자만 쓰다듬으며 유일한 이 대사를 내뱉습니다.
고등학교도 못 가보고 시집을 왔더니,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집에서 딸만 여섯을 낳는 바람에 평생을 위축되어 살았고, 70을 훌쩍 넘은 지금은 치매남편을 돌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그녀가 참으로 오랜만에 자기자신을 이렇게 한참 쓰다듬고 어루만져주는 모습을 보며 객석에 앉아있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습니다.
#3. 나는 바람이 될 거예요~
경북 산골마을에서 냇가를 뛰놀며 살다가 50여년 전 서울로 시집온 그녀는 평생 바깥 출입이 엄격한 시집살이를 호되게 하느라 고향 친정집에도 3번 밖에 가지 못 했고, 일흔이 넘은 지금은 치매 남편을 돌보느라 집에서 병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녀에게 이번 캠프는 칠십 평생 처음으로 혼자 온 여행. 그녀는 다시 태어나면 바람이 되어 온 세상을 가벼이 날아다니며 고향에도 부모님 산소에도 자유롭게 갈 거라고 했습니다.
지난 2년간 전성기 자기돌봄캠프에서 우리는 돌보는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깊은 마음을나누고 있습니다. 행복공장을 통해 새롭게 경험한 치유 연극 프로그램은 자기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도록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올해도 다양한 돌봄가족들이 이 곳에서 돌보는 삶을 위안받고, 귀한 자신을 만날 수 있도록 라이나전성기재단은 돌보는 사람들을 계속 돌보겠습니다.
# 사실은 이렇게 웃는 시간이 훨씬 많은
#전성기 자기돌봄캠프 with 행복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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