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땐 무슨 휴대폰을 썼더라? 이동통신의 역사

기사 요약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것 보다 할 수 없는 것을 찾는 것이 더 힘들 정도로 스마트폰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부턴, 삶은 꽤 편리해졌다. 하지만이렇게 스마트폰이 시대를 앞설 수 있었던 것은 스마트폰 이전에 존재하던 또 다른 과거의 핸드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스마트폰 이전의 핸드폰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기사 내용

 

 

시대별로 살펴보는 이동통신의 역사

 

 

 

 

공중전화는 왜 휴대폰에 밀려야만 했을까?

 

 

휴대폰이 세상에 등장하기 전, 우리의 유일한 통신수단은 공중전화였다. 전화가 필요한 순간에는 항상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헤매며 전화를 걸어야 했을 뿐 아니라, 행여나 약속시간에 늦거나 참석하지 못하게 될 때면 자주 엇갈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1984년의 어느 날, 우리나라에 최초로 휴대폰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자회사인 한국이동통신서비스에서 차량 이동 전화인‘카폰’이 등장했는데, 전송속도가 14.4Kbps에 달하는 저성능 휴대폰이었지만, 당시 가격으로 무려 400만원에 달했을 정도로 당시에는 엄청난 부의 상징이었던 것.

 

하지만 평생 동안 부의 상징으로 남진 않았다. 점차 많은 이들이 이 휴대폰을 사용 하면서부터 휴대폰의 가격은 점차 저렴해지기 시작했고, 머지 않은 미래에 상용화가 되어 모든 이들이 휴대폰을 쓸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 카폰 이후에 탄생한 휴대폰인 삼성이 개발한 SH-100은 2세대 이동통신의 시작을 알리며, 우리는 점점 공중전화와 멀어져만 갔고, 휴대폰의 상용화를 조금씩 예고했다.

 

 

90년대의 지평을 열었던 2세대 이동통신

 

 

 

 

삐삐

 

 

초창기의 휴대폰이 워낙 고가를 자랑하는 탓에 휴대폰 상용화의 꿈이 아직까지도 멀게만 느껴졌던 90년대 초반, 휴대폰의 빈 자리를 잠시나마 메웠던 것은 바로 삐삐. 알고 보면 삐삐에도 012, 015로 시작하는 번호가 있었다. 바지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로 최소형 사이즈를 자랑하는 삐삐는 직접 통화는 할 수 없었지만, ‘지금 나에게 호출을 해달라’는 신호 정도는 보낼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음성사서함의 기능을 통해 녹음된 목소리를 공중전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문자가 아닌 숫자로만 확인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8282(빨리빨리), 8255(빨리오오), 7942(친구사이), 505(SOS, 도와줘) 등의 삐삐 암호도 많은 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었고, 훗날에는 문자 기능도 있던 삐삐가 등장하긴 했지만, PCS 휴대폰이 등장한 이후 삐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씨티폰

 

 

어쩌면 삐삐 보다 그 역사가 더 짧았을 시티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각종 드라마에서 회자될 정도로 그 존재감은 강렬했다. 시티폰은 휴대폰이 상용화 될 수 있도록 기틀을 조금씩 마련해갔고, 이용자들 사이에서 큰 각광을 받았다. 공중전화의 줄을 매번 기다릴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그 당시엔 정말 반향을 일으켰던 것.

 

97년 전후로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지만, 빠른 시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했던 시티폰은 발신만 가능한 발신전용이라는 것이 가장 큰 맹점이었으며, 수신이 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항상 삐삐를 지참해야 했고, 공중전화 근처(100~200m)에서만 통화가 가능했다. 즉, 걸어가면서 통화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발신율이 아니었다는 점은 아직까지도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0년대의 통신수단, 그리고 지금의 스마트폰

 

 

2000년대의 핸드폰은 스마트폰의 전과 후로 나누어 볼 수가 있을 정도로, 스마트폰은 많은 휴대폰들 사이에서 꽤 커다란 기준점으로 자리잡게 됐다. 2000년대부터 2009년까지만 해도 지금 보다 휴대폰의 형태가 다양하게 흘러갔음을 알 수 있는데, 단조로운 벨 소리를 넘어서 16화음, 32화음, 64화음의 휴대폰 벨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능까지 출시되면서 본격적인 휴대폰의 상용화와 함께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휴대폰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폴더, 플립형의 흑백폰을 넘어 칼라로 볼 수 있는 칼라폰이 2000년대 초반에 첫 선을 보이면서, 휴대폰의 과학은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2002년의 월드컵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많은 이들의 시선을 강탈한 휴대폰은 바로 카메라가 장착된 폴더폰. 바로 삼성전자가 지난 2002년 9월에 출시한 'SCH-X780'인데, 일명 '회전형 카메라폰'으로 불린 제품으로써 휴대폰에 대한 패러다임은 완전히 바꿔버린 혁신적인 휴대폰이었다. 좌측에 탑재된 카메라가 180도로 회전되어, 전·후면 촬영이 모두 가능한 제품으로 현재까지도‘아이디어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으로선 당연한 기능일지 몰라도, 당시 사진을 100매까지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기술이었다. 더불어, 한 화면에서 6장의 사진을 한꺼번에 보면서 검색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혁신과도 같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 시킨 바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부의 상징이었던 휴대폰이었지만, 이렇게 많은 기능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60만원으로 스타택 가격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아, 보다 더 많은 이들이 휴대폰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이동통신의 전망은 점차 밝아졌다.



폴더폰, PDA, 슬라이드 폰 등.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가장 많은 형태의 휴대폰의 등장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가히 휴대폰계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정도로, 여러 종류의 휴대폰 간의 경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09년, 비로소 우리나라에 터치폰이 첫 선을 보였다. 폴더를 열고 버튼을 꾹꾹 누르지 않아도, 액정 그대로 터치만 하면 전화를 걸 수 있고, 문자를 입력할 수 있었다는 장점으로 인해 너나할 것 없이 터치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터치폰은 이후에 등장하는 스마트폰의 시초가 되었고, 이제는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 서핑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됐다.

 

 

 

 

 

손 안에 있는 작고도 놀라운 기술, 휴대폰은 지금껏 여러 시대를 거쳐 변화를 꾀했고, 점점 더 발전해 지금의 기술력을 얻게 됐다. 이젠 시대의 전유물이 된 휴대폰. 시간이 더 지난 후에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추억할 날이 올 지도 모를 일이다. 혹시라도 서랍 속에 묵혀 뒀던 이 전의 휴대폰을 보게 된다면, 옛 추억의 함께 분명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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