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가요 톱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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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지만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 아깝기만 한 추억들. 하지만 음악 덕분에 우리는 때때로 그 시절의 기분을 느끼며 원하는 음악을 꺼내 들을 수 있다. 하나의 문화이자, 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된 음악은 우리들에겐 버틸 수 있는 힘을 주고, 따라 부를 수 있는 즐거움을 주었다.
 

촌스러움과 세련됨이 공존한
1960년대의 음악

 

우리나라에서 첫 상업 음반이 발매된 시기는 1907년이다. 서양 음악이나 일본 음악의 번안곡이 유행한 이후, 전통 가요가 대중가요로 변모하기 시작한 1929년에는 서양 음악, 일본 음악, 전통 음악이 공존했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945년, 광복을 맞이한 후로 일본 음악에서 벗어나 음반산업이 자립하기까지는 약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1958년부터 시작된 대중음악의 ‘부흥기’로 인해 1960년대의 음악은 이전에 비해 훨씬 더 풍성해져, 팝 경향의 대중가요와 트로트 계열(김태희의<소양강처녀>, 남진의<미워도 다시한번>, 배호의<돌아가는 삼각지> 등)의 대중가요가 양립했던 시기였다.


당시 1960년대 트로트 계열을 대표하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와 1960년대의 팝 계열을 대표하는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가 양대산맥을 이뤘었는데 전형적인 트로트 리듬을 통해 전통적인 여성상을 드러내는 <동백아가씨>와 다르게 <노란 샤쓰의 사나이>에서는 업 템포의 흥겨운 리듬을 통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신여성이 주인공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주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다.
 

1960년 후반 즈음에 들어선 후부터 한국에도 록 음악이 등장하게 된다. 한국 록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신중현 사단’이 등장한 이후로 펄시스터즈의 <커피한잔>과 <님아>,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김정미의 <가지 마오>, 박인수의 <봄비> 등 기존의 노래와 다르게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선율을 보여주었다.
 

1960년대에는 LP음반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제작됐으며, 앞 뒤로 1곡씩 실을 수 있는 기존의 SP음반에서 음반 하나에 노래 10곡 정도가 들어가는 LP로 변한 것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첫 번째 혁신이었다.
 

금지곡이 무려 22곡?
1970년 대중음악의 수난시대

 

청바지, 통기타 그리고 생맥주까지! 1970년대의 대표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1970년대에 찾아온 ‘포크송’의 바람이 청년문화로 자리매김한 이후, 1972년 시작된 유신정권으로 사회의 분위기는 어두워져만 갔다. 그리고 그 여파는 점차 대중음악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1975년 당시, 예술윤리위원회에서 지정한 금지곡이 22곡이나 되었다. 가장 많은 금지곡 처분을 받은 가수가 바로 신중현이었으며 신중현의 <미인>,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이장희의 <그건 너>, 조영남의 <불 꺼진 창>, 양병집의 <서울 하늘>등이 그 당시 금지곡으로 지정됐었다.
 

표절, 퇴폐적 표현 등 금지곡으로 지정된 이유는 다양하지만, 저속한 창법이 부적합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 지금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기준들이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과는 달리, 사실상 군사정권을 지적해 사회불안을 조정한다는 이유로 금지된 경우가 많았다. 양희은의 <아침이슬>도 마찬가지였으며 또 한대수의 <물 좀 주소>는 중앙정보부에서 자행하는 물고문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된 바 있다.
 

하지만 전혀 예측불허의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돼야 했던 음악도 상당했다. 김상국의 <껌 씹는 아가씨>는 껌 씹는 모습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고, 이금희의 <키다리 미스터김>은 키다리 단어가 듣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된 바 있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은 포경수술을 의미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웃지 못할 에피소드로 기억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곡들이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쎄시봉의 음악이 등장했다. 아무런 의미 없는 순수한 노랫말이 주가 되었으며, 1970년대의 포크송은 ‘순수의 시대’를 지향하고 있었다.
 

비로소 꽃 피운
1980년대의 대중음악

 

컬러텔레비전의 등장,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시작된 1980년대. 1986년의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문화는 본격적으로 개방된 시대를 맞이한다. 당연히 이에 따라 대중음악도 더욱 풍성해졌다.
 

1980년대의 지평을 화려하게 수놓은 가수는 지금까지도 가왕이라 불리는 조용필이다.<친구여><여행을 떠나요><단발머리><모나리자> 등 록부터 민요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기 때문이었을까? 상당한 소녀팬들을 많이 확보했었다. 다채롭고 새로운 음악적 시도가 지금의 조용필을 가왕으로 만든 것은 아닌가 싶다.
 

이러한 신선한 시도 덕분에 대중가요의 폭은 더욱 넓어지기 시작했다. 전영록의 <불티>, 박남정 <널 그리며>, 나미의 <빙글빙글>, 인순이의 <밤이면 밤마다>, 김완선의 <오늘밤> 등의 흥겨운 댄스 음악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아이돌이 등장하게 된다. 바로 3인조 그룹의 소방차다. <어젯밤 이야기> <일급 비밀> 등으로 새로운 청소년 문화로 주목 받으며 본격적인 댄스음악의 신호탄을 알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김현식 <사랑했어요>, 이승환의 <텅 빈 마음>, 이선희의 등 발라드에서도 큰 성과를 보였다.
 

파격, 그 자체!
X세대를 대표하는 1990년대의 대중음악

 

우리나라에 랩이 처음으로 등장하던 1992년, 멜로디의 격식을 철저히 무너뜨린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다.<난 알아요><컴백홈> 등의 전혀 다른 댄스 음악으로 대중가요의 틀을 완전히 바꿔 놓은 셈이다.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대형 팬클럽이 형성되면서 ‘X세대’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돌의 등장은 훗날 HOT와 젝스키스 등장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현진영의<흐린 기억 속의 그대>뿐만 아니라, 노이즈의<너에게 원한 건>, R.ef의<이별공식>, 듀스의<나를 돌아봐>등의 댄스 음악이 대거 등장했다.
 

1990년대의 음악을 대표하는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솔직함’이 아닐까 한다. X세대 문화를 반영한 넥스트의 <도시인>, 015B의 <신인류의 사랑> 등의 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마음에 안 드는 그녀에게 계속 전화가 오고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젊은 세대들의 여과 없이 솔직한 마음을 가사에 모두 담아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솔직함은 주체적인 여성성으로 표현된다.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에서는 ‘마음이 변했다면 이유를 대지 마. 내가 싫어진 걸 알고 있어. 가식적인 말로 나를 위로 하려 하지 마’ 등의 가사를 통해 이전의 여자 가수에게 볼 수 없는 궁극의 솔직함이 잘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도 드디어 레게음악이 등장힌다. 바로 김건모의 <핑계>다. 레게를 대표하는 특이한 창법과 목소리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바 있다.
 

밀레니엄 시대를 거쳐 새로운 변화로 찾아온
2000년대 음악

 

밀레니엄 시대를 거친 세대라고 하여 X세대 대신 N세대라는 호칭이 주어진 2000년대 시절. HOT와 젝스키스 이후 아이돌 걸그룹 SES와 핑클의 등장으로 가요계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그 외에도 NRG, 베이비복스, 보아 등 많은 아이돌의 등장으로 인해 한류열풍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했으며. 보아가 <어메이징 키스>를 시작으로 일본 진출에 성공한 덕에 K-POP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기였다.
 

또 많은 남성 및 여성 듀오의 등장도 빼놓을 수 없다. UN의 <선물>, 인디고의 <여름아 부탁해>, 애즈원의 <원하고 원망하죠> 등 펄시스터즈 이후에도 듀오 문화는 2000년대에도 쭉 이어갔다. 또한 이러한 듀오 문화는 훗날 2008년에도 이어져 다비치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듀오 문화는 발라드의 성행으로도 이어졌다. 오로지 발라드로 승부수를 걸어 2000년대에 큰 성공을 거둔 이들! 김범수의 <보고싶다>, 성시경의 <두 사람>, 장나라의 <고백>, 박효신의 <눈의 꽃>, SG워너비의 <살다가> 등 주옥 같은 명곡들도 알고 보면 모두 발라드라는 사실!
 

많은 대중음악 학자들 사이에서는 2000년대 음악을‘약진기’라고 부른다. 아이돌 그룹의 세대교체가 일어났기 때문인데. 동방신기를 시작으로 슈퍼주니어가 등장하며 아이돌문화를 계속해서 이어왔다.
 

마침내 2007년,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카라의 등장은 잠시 주춤했던 걸그룹의 새로운 부흥을 알렸다. 원더걸스의 <텔미> 이후로 소녀시대의, 카라의 <미스터>등은 ‘후크송’이라는 장르를 통해 대표적인 아이돌 음악 장르를 구축했다.

앞으로도 계속될 현재의 음악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유튜브 1억 뷰를 돌파하며, 미국에도 본격적인 한류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크레용팝의 <빠빠빠> 역시 마찬가지로 지금껏 보지 못했던 특이한 장르로 인해 아직까지도 각국에서 회자되고 있다.
 

2010년대에 등장한 3세대 아이돌 그룹의 노래인 엑소의, 씨스타의, 인피니트의, 걸스데이의 <링마벨>, EXID의 <핫핑크> 등의 공통점은 노래 가사에 모두 의성어나 의태어와 같은 음성 상징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가령 걸스데이의 <반짝반짝>에서는 ‘하지마. 하지마 마마마’, EXID의 <위아래>에서는 ‘위, 아래 위, 위, 아래’ 등의 특정한 단어 반복 등이 나타나고 있다. 가사의 의미 전달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닌 보다 더 ‘따라 부르기 쉬운’ 장르로 구축한 것이다.
 

아이돌뿐 아니라 발라드 부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아이돌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신인들이 등장하기보단 박정현, 조성모, 임재범 등과 같은 1990년대나 2000년대에 활동했던 기존의 발라드가수들이 활약상을 펼치고 있다.
 

또 아이유의<좋은 날><너랑 나><스물셋> 등 몽환적인 음악으로 댄스와 발라드를 절묘하게 조합한 음악도 유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광복 이후인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가요를 시대별로 살펴본 결과 시대와 음악이 꽤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해보면 어느 시대건 대중가요가 존재했다. 때로는 눈물을 닦아주고, 때로는 기쁨을 주는 음악. 앞으로의 음악이 기다려지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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