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은퇴 - 남편이 은퇴를 했습니다

기사 요약글

기사 내용

통계청에서 밝힌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퇴직 연령.

 

이는 한국인의 평균 기대 수명(81.9세)보다 30년가량 앞선 수치다.

하루 평균 배우자와 함께하는 시간

 

그러나 함께 보냈으면 하는 시간은 3시간 29분, 그마저도 줄이고 싶다는 응답은 34.9%, 늘리고 싶다는 5.9%에 불과했다. 현 수준에 만족한다는 답변은 59.2%.

TV 시청

 

배우자와 함께하는 취미 활동 1위가 겨우 TV 시청. 2위는 집안일(8.7%), 3위는 대화(7.9%) 등으로 나타났으며 은퇴 부부의 하루 평균 대화 시간은 평균 52분이었다.

배우자와 취미를 공유하는 은퇴자 비율.

 

결국 4명 중 3명은 부부가 함께할 취미 생활이 없다는 의미다. 배우자와 취미를 같이 즐기는 이들의 95%는 산책, 등산 등 스포츠 활동에 집중했다.

 

은퇴자들이 친구와 연락하는 횟수

 

남성의 경우 친구들의 관계가 동창, 직장, 고향 선후배 등 연고(72%) 중심인 경우가 많았다. 반면 여성들은 이웃이나 종교, 취미 생활을 통해 만난 사람들 즉 생활(69%) 속에서 맺어진 관계들이 많았다. 은퇴자의37.7%는 친구와 더 자주 만나고 싶지만 경제적인 이유(43.8%)와 거리(23.5%) 등을 이유로 힘들다고 응답했다.

 

은퇴 남편을 둔 아내가 직장에 다니는 남편을 둔 아내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70% 높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은퇴가 우울증에 미치는 영향>,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발표(45세 이상 남녀 5,937명 대상)

 

은퇴자의 부인으로 살아보니

 

은퇴한 남편에 대한‘설’들이 무성하다. 부담스럽다, 얄밉다는 부정적인 의견에서부터 집안일을
도와줘서 편하다, 함께 취미 활동을 해서 사이가 더 좋아졌다는 긍정적인 얘기까지.
그래서 들어봤다. 남편의 은퇴를 지켜본 부인들의 생생한 경험담.

 

평소 은퇴를 하면

 

당장 전국 일주를 시작하겠노라고 노래를 부르던 남편은 현재 집에서 종편 뉴스 채널을 돌리며 하루 종일 비판과 독설을 하고 있다. 정부는 능력이 없고, 젊은이들은 희망이 없으며, 노인들은 염치가 없다는 식으로 모든 뉴스마다 사사건건 비판이니 점점 짜증이 난다. 저 정도로 부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는데 퇴직 후 자신감을 잃어가다 보니 매사 거슬리는 것투성인가 보다.
지금이야 무기력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지만, 사실 남편은 누구보다 활달한 사람이었다. 재미난 농담을 잘해 모임에서 늘 인기가 많았고, 꼼꼼한 업무 처리로 직장에서도 신임이 두터운 편이었다. 인생에서 특별히 큰 고비가 없었던 사람이어서 은퇴 이후의 삶 역시 본인의 의지대로 그저 순탄하게 흘러갈 거라 예상했나 본데 현실은 냉정했다.

 

처음 한두 달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아침에 동네 뒷산에 올라가 운동도 하고, 고향 친구를 만나러 다녀오기도 했으며, 동창들과 어울려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지금껏 일주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는 푸념을 밥 먹듯 했던 사람이니만큼 출근의 압박 없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러나 더 이상 만날 사람도 없고, 갈 데도 없어지자 남편의 모든 관심과 레이더가 나에게로 쏠렸다.

‘냉동실 정리가 엉망이라 음식을 찾아 먹을 수가 없다, 욕실 바닥에 물때가 잔뜩 끼었다, 관리비 영수증 좀 잘 정리해놓지 그랬냐, 안방 TV 리모컨에 건전지 좀 갈라고 하지 않았냐.’

오죽 심란하면 저럴까 싶어 나도 몇 번은 비위를 맞춰줬지만, 잔소리가 이어지다 보니 남편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이렇게 평생을 붙어 살 수 있을까? 뉴스에 나오는 황혼 이혼이 꼭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가서 욕이라도 하고 싶지만, 미주알고주알 남편을 흉보는 게 꺼려지기도 한다. 내 주위 사람이라면 한 번씩 남편 얼굴을 마주칠 텐데 그때마다 속으로 남편을 우습거나 측은하게 여기면 어떡하나. 남들 장단은 맞춰줘야 하니까 (은퇴한 남편이)잔소리를 좀 한다든가, 외로움을 탄다든가 하는 정도로 얼버무리고 만다. 그래도 애들 아빠라고 감싸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미우니 고우니 해도 부부간의 정이 최고지 싶다.

 

3년 전부터 나는 틈틈이

 

간병인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일정 시간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인데 소소한 용돈 벌이 정도는 되기 때문에 나름 만족하며 일을 해왔다.‘왜 굳이 그런 고생을 사서 하냐’고 싫은 내색을 하던 남편이 요즘은 오히려 출근하는 나를 부러워하는 눈치다. 원래 허세가 심하고 뭐든 솔직하게 드러내는 법이 없는 남편은 집에만 있지 말고 어디 가서 새 일자리를 구해보라는 얘기에 혹시 구박하나 싶어‘이 나이에 어디 가서 취직을 하느냐’며 정색부터 한다. 아직 내려놓을 준비가 잘 안 되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미 주위 사람들한테 마땅한 일자리를 수소문해놓은 상황이다.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소식은 없지만 차차 남편을 달래가며 다시 출근을 시킬 준비를 해야겠다.

 

“여보, 회사에서 나 더 이상 나오지 말라는데.”

 

3년 전 어느 겨울밤, 남편은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권고사직 소식을 전했다. 매년 연말 남편 회사에서는 권고사직 대상자들의 자리로 전화를 거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연말만 되면 마음을 졸였다. 그날 남편의 얘기를 듣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나이 55세 때 일이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입사한 남편은 늘 가정보단 일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부하 직원들에 대한 애정도 남달라서 집으로 데려와 회식 수준으로 판을 벌리곤 했는데, 이렇게 팔팔한 나이에 평생을 다 바친 직장에서 밀려나야 한다니 그저 안쓰럽고 속상했다.

 

실업 급여를 받으며

 

약 1년을 쉬었던 남편은 초반엔 건강이 악화될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몇 달 만에 14kg이 빠질 정도였는데 병원에서는 스트레스로 인한 갑상선 항진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말 한마디 못하고 이 사람이 혼자 얼마나 끙끙 앓았을까.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 역시 쉽지 않은 시간을보내야 했다.

 

당시 우리는 단독주택을 짓고 있었고 아들은 고3 수험생이었다. 걱정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닌 상황에서 남편의 퇴직까지 겹치니 정말 힘들더라. 혹시라도 남편이 들을까 집 안에서 친구들과 통화도 마음 놓고 할 수 없어서 그저 밖으로 나가 산책을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식당에 써 붙인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게 됐다. 집에서 남편과 부딪히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 그 길로 일을 시작했다. 꽤 괜찮은 집이었고 일 역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라 부담이 없었는데, 5개월가량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문득 남의 가게에서 일해주며 살기엔 내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이렇게 애쓸 거면 내 사업을 해야겠다 싶었다. 생각해보면 꼭 남자만 집안의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 지은 집의 일부를 활용해 게스트 하우스 사업을 시작했고, 과거 꽃 가게를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명절마다 꽃 선물 상자를 만들어 납품하는 부업을 했다.
다행히 남편도 마냥 주저앉아 있지는 않았다. 남편은 연금 나올 때까지만 좀 고생하자며, 모든 지위와 체면을 내려놓고 트럭 배달 일을 시작했다. 일 톤 트럭을 끌고 지방에 내려가 물건을 실어 목적지로 운송하는 일인데 이 일을 시작한 덕분에 남편은 다시 나에게 생활비를 줄 수 있었다. 남편의 수입은 현직과 비교해 3분의 1로 줄었지만 아이가 휴학을 한 상황이어서 생활비로는 충분하다. 내가 버는 돈은 집 짓느라 받은 은행 대출금 상환에 쓰고 있다. 아무리 막막한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고, 탈출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닫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남편에게 퇴직하면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런 거 없다는 대답이 돌아와 당황한 적이 있다. 하고 싶은 게 없다던 남편은 스스로 독서 모임을 만들었고, 요즘엔 토요일마다 이태원에서 사람들을 만나 책을 주제로 토론을 한다. 이 사람이라고 회사 일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하고 싶은 일보단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왔을 뿐. 이제부터라도‘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가끔 남편의 퇴직으로 우울해질 때면

 

나는 이 사람이 안정된 직장에 다님으로써 내가 누렸던 것들을 되새겨본다. 자카르타 주재원으로 생활했던 기억, 온 가족이 서유럽 여행을 갔을 때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면 남편에 대한 섭섭함이나 원망이 온통 고마움으로 바뀌게 된다. 혹시 남편의 은퇴로 우울하다면 남편에 대한 미안함, 안쓰러움 때문에 억지로, 무리하게, 의무적인 내조를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나는 남편의 끼니 걱정 때문에 외출을 피하는 대신, 차려 먹을 음식을 만들어놓고 자유롭게 나다닌다. 내가 불행하면 그 원망과 짜증이 고스란히 배우자에게 갈 테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무엇보다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은퇴 부부에겐 굉장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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