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의 얼굴 백윤식 편

기사 요약글

심장이 70년간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뛰어온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일이죠.

기사 내용

개성 있는, 연기력이 뛰어난, 존재감 있는… 배우에 대한 수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독보적’이라는 표현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백윤식은 그런 배우다. 또래 배우들이 ‘자애로운 아버지’나 ‘위선적인 회장님’을 연기하며 ‘정형성’을 띨 때, 그는 부패한 신문사 주필이나 전설의 타짜, 싸움의 고수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갔다. 그래서일까 황정민, 김윤석 같은 후배들은 그의 족적을 헤아리며 ‘나이 듦’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한계를 떨쳐버린다. 좋은 배우 앞에 나이와 세월은 곧 품격이요 연륜이라는 것을, 매 작품마다 증명해 내고 있는 백윤식. 그를 만났다.

좋은 소식을 들었어요. 6월 초 열릴 제5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후보로 올랐다고요. 중년 배우로는 유일하게 이병헌, 송강호, 유아인, 황정민 씨와 경쟁하게 됐는데 소감이 어때요?
제가 직업적으로나 인생 경험으로나 우리 후배들보다는 연륜이 좀 있죠(웃음). 농담이고,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수상 여부를 떠나서 그런 영화제가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는 게 좋더라고요. 영화 한 편을 만들려면 배우는 물론이고 여러 스태프의 굉장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노고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자리이니 얼마나 뜻깊어요.

그러고 보면 한 번도 젊은 배우에 비해 ‘묻힌다’ 혹은 ‘서포트해준다’는 느낌을 준 적이 없어요. 늘 ‘저 역할을 저렇게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돋보이고 세련됐죠. 그래서인지 배우 황정민은 “백윤식 선배님 같은 분들이 길을 잘 닦고 있어 나이에 국한되지 않고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어요. 대체 그 비결이 뭐예요?
감독들이 나한테 독특한 캐릭터를 맡겨놓고 마음껏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기 때문이겠죠. 저 나름대로 어떻게 하면 전작과 다른 연기를 할까 고민하기도 했고요. 배우들은 비슷비슷해 보일 수 있는 연기를 제일 경계하는데 저 역시 그게 평생의 숙제예요. 오늘은 물, 내일은 콜라, 모레는 아이스크림으로 변해야 대중을 만족시킬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대사를 그대로 외우되, 어떤 느낌으로 연기할지를 많이 생각해요. 대본을 읽고 또 읽으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는 한편, 대사를 이런 톤으로 처리해야겠다 싶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따로 적어놓기도 하죠. 이런 여러 조건들이 맞물려 독특한 위치를 갖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연기자도 촬영 현장에서만큼은 일종의 직장 생활을 하는 셈인데, 갈등이나 반목이 없을 순 없잖아요. 그런 상황은 어떻게 해결하는 편인가요?
젊었을 때는 많이 부딪혔죠(웃음). 연출가의 의도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작업을 하다 보면 소소하게 불만이랄까 그런 것들이 쌓이게 마련이거든요. 그럴 땐 나도 얘기를 하죠. 분명 잘못된 건데 그냥 방관한다든가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적당히 묻어가는 행동은 좀 그렇잖아요.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이 있지만, 요즘은 ‘웅변이 다이아몬드’라는 얘기가 있을 만큼 목소리를 내는 게 또 중요하거든요. 그러다 의견 충돌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게 또 전화위복이 되더라고요. 뭐랄까 상대의 그릇을 알아보는 계기랄까요. 사람의 진가는 좋을 때보다 상황이 나쁠 때 드러나는 법이니까, 갈등을 계기로 상대 속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또래들은 지금 노후 자금이나 은퇴 후 여가 생활 같은 것들을 고민하는데 혹시 나이가 들면서 생긴 고민 같은 게 있나요?
내 직업에 정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자유분방하게 살아와서 그런지 정년이니 은퇴니 하는 문제들을 실감하며 살진 못해요. 그저 뉴스를 보며 노년에 저런 문제를 겪을 수 있겠구나 공감할 뿐이죠. 하지만 외로움이나 소외감은 인간인 이상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잖아요. 물론 나도 그런 걸 느낄 때가 있고요. 요즘은 다른 것보다 건강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내 나이가 벌써 7학년(70세)이란 사실이 놀라워요(웃음). 심장이 70년간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뛰어온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일이죠. 언젠간 나도 죽음을 맞이할 테지만 자손들 고생시키지 않고 조용히 잠자듯 떠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얼마 전 지인의 조모가 98세에 그렇게 돌아가셨는데 당신에게도, 자식에게도 그게 참 좋겠더라고요. 물론 누구나 바라는 마지막 모습이겠지만요.

끝으로 누군가 백윤식에게 전성기의 의미를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 거예요?
통속적으로 전성기를 따지자면 화려하게 잘나가는 상황, 즉 좋을 때만 떠올릴 거 아니에요. 그런데 마음먹기에 따라서 최악의 상황도 좋을 때가 될 수 있어요. 왜냐면 상황은 급변하니까. 나쁜 상황에서도 좋은 기회가 금방 또 오거든요. 그런데 그걸 알아보고 기회를 잡아 전성기를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자기 실력이 있어야 되더라고요. 그러려면 매일 나태해지려는 자기와 싸워야 하겠죠. 원래 자기와의 싸움이 제일 힘든 거니까. 자기를 극복하면 날마다 전성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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