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 술 한잔

기사 요약글

좋은 사람과 마시는 술이 가장 맛있다.

기사 내용

친구의 신뢰, 추억담은 훌륭한 안주랍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맛’에 대해 얘기한다. 음식을 비평하는 것과는 결이 다른 작업이다. 요리의 기술적 완성도나 전문성보다는 즐거움과 행복의 요체로서의 맛에 대해서 기술한다. 그래서 그가 술을 고르는 기준은 음식이다.

"전 음식을 먹기 위해 술이 필요한 것이지 술을 마시기 위해 음식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는 술이 '음식문화의 절정'이기에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어울리는 음식이 있다고 본다.

"술만으로 즐기기엔 부족해요. 액체니까 목으로 넘기는 것 말고는 씹는 즐거움이나 포만감을 느낄 수가 없어요. 향과 맛만 즐기는 고수도 있겠지만 술자리의 즐거움을 극대화하긴 어렵지요."

그래서 양념으로 범벅이 돼 자극적인 우리 음식이 술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다. 한국 술이 아니더라도 와인이나 맥주, 위스키와 어울리는 우리 음식이 없기 때문이다. 주종을 가리지 않고 안주부터 생각하지만 그에게도 기분 좋은 술은 있다. 첫 번째는 일과를 마치고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잔이다.

"술은 첫 잔이에요. 쾌감이 있죠. 그 한 잔은 꼭 원샷을 해야 해요. 알콜이 처음 몸속에 들어와서 번지며 목 뒤쪽으로 가볍게 취기가 올라오는 그 느낌, 그게 정말 맛있어요."

하지만 가장 즐겁게 마시는 술은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진짜 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술이다. 고등학교나 대학 동창과 만나서 "그 여자애가 좋아한 건 네가 아니고 나였지" 같은 허튼 소리와 추억담을 안주 삼아, 서로에 대한 지지와 신뢰를 국물 삼아 마시는 술이다.

"결국은 사람이지요. 산해진미가 안주면 뭘 해요. 좋은 사람과 마시는 술이 가장 맛있어요"

 

술 있는 자리에 즐거운 대화가 빠질 수 없지요
사진가 겸 작가 윤광준

<윤광준의 생활명품>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작가 윤광준은 우리 일상의 주변에 흩어져 있는 물건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특별히 좋은 쓰임과 아름다움을 지닌 사물들에 '생활명품'이라는 이름을 붙여 소개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회사에 소속된 사진가로 일한 그가 사진과 함께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이 있다면 사물에 대한 감식안과 함께 주량이다. 물론 그 자신은 주량보다 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인정받기 원한다. '평생 마셨으니 어떤 것보다도 제일 쉽다'는 이유에서다.

"주종을 가리지 않는 것이 술꾼의 자세지만 절대 소주를 마시는 자리엔 가지 않아요."

그 대신 한 가지 술을 고르라면 와인을 마신다. 유일하게 마시지 못하는 소주를 제외하고 세계의 모든 술을 다 마셔봤다고 자부하는 그는 주변에 와인 애호가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와인 마시는 자리를 자주 갖다 보니 와인에 대한 자신만의 감별, 선호의 지점을 갖게 됐다.

"와인은 참으로 복합적이면서 인간이 바라는 고급한 감각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대단한 술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와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몸을 젖게 하고 마치 번지듯 취하게 하는 것이 매력이에요."

1년이면 300일 이상을 꾸준히 평생 마신 윤광준 작가에게는 20년 이상 와인을 함께 마신 친구가 있다. 오디오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린 류국일 씨다. 20년이 넘도록 좋아하는 와인 맛을 찾기 위해 감각의 날을 세운 친구와 함께 와인을 열 때면 이번에는 과연 어떤 맛일까 궁금해진다. 하지만 언제나 윤광준 작가에게 술맛을 더해주는 것은 바로 '대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놀이는 대화라고 생각해요. 나와 맞는 사람과 대화하면서 노는 것이죠. 거기에 좋은 술이 곁들여지고 화제 또한 곁들여지면 분위기가 달아오르지요."

술친구가 인생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와인 칼럼니스트 겸 교수 손진호 / 와인오케이닷컴 대표 유경종

손진호 교수는 박사과정을 밟던 역사학도였다.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논문을 준비하다가 와인에 매료돼 인생의 방향을 급선회하게 된다.

"향이나 맛을 평가하는 자질이 없었다면 거기서 그쳤을 텐데 제가 프랑스인들만큼 잘한다는 걸 알고 흥분이 되더군요."(손진호 교수)

그렇게 지금은 프랑스 역사에 바탕을 둔 와인 강의와 관련 서적을 저술하며 와인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 그는 '술친구'로 주저 없이 제자 한 사람을 꼽았다. 비스트로 와인 북카페와 와인 정보 사이트인 '와인오케이닷컴(wineok.com)'을 운영하는 유경종 대표다.

"2004년부터 와인 관련 서적을 출판하면서 저자와 전문 번역가를 찾다가 교수님을 소개받았어요. 번역도 의뢰하고 함께 <와인구매가이드>라는 책을 기획해서 출판도 했습니다."(유경종 대표)

이 직설적인 제목의 <와인 구매가이드>는 1, 2권 합쳐서 18쇄를 찍어 <신의 물방울>처럼 와인을 다룬 만화책을 제외한 와인 전문 서적으로는 가장 많이 팔리는 성과를 올렸다. 유경종 대표는 손진호 교수가 당시 강의하던 중앙대학교에서 각각 1년 과정인 소믈리에 과정과 마스터 과정을 들었으니 제자이면서 동시에 사업적 파트너가 된 셈이다. 많을 땐 일주일에 세 번도 만나서 와인과 세상사를 나눈다. 손진호 교수는 와인 마시는 것이 일이고 주로 저녁 강의가 끝나면 제자들과 '교재 연구 차원'에서 와인을 마시지만 유경종 대표와 마시는 와인은 특별하다.

"서로 취한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와인이 긴 시간 동안 대화하면서 천천히 마시는 술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지 않아서 좋지요. 와인 자체를 소재로 얘기하다가 사업 아이템이 떠오르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그러다 시시콜콜한 개인사나 세상사도 나누고요. 그러니 이만한 술친구가 없습니다."(손진호 교수)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