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네 온천을 소개합니다.
일본의 1번 국도, 도카이도(東海道)의 길목 온천
우리에게도 익숙한 하코네 온천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명소입니다. 도쿄에서 특급열차로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데다 20가지 이상의 다양한 온천수, 거기에 후지 산을 비롯한 볼거리까지 어우러졌기 때문이죠. 덕분에 하코네는 100대 온천 랭킹에서 언제나 종합 순위 10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300여 년 전에 발견되었다는 하코네 온천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에도시대부터입니다. 당시 막부의 쇼군이 있던 에도(도쿄)와 천황이 머물러 있던 교토 사이를 잇는 도카이도가 대대적으로 정비되었는데, 그 중간에 하코네가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도쿄에서 시작한 도카이도가 해변 평야를 따라 달리다가 딱 마주치는 것이 바로 하코네 산입니다. 교토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코네 산을 넘어야 했고, 힘겹게 올라온 사람들은 하코네 산 곳곳에 들어선 온천 마을에서 쉬어 갔습니다. 이렇게 수십 개에 이르는 온천 마을을 뭉뚱그려 ‘하코네 온천’이라 부르는데, 그중에서도 중요한 온천 17개를 묶어서 ‘하코네 주나나토’, 역사가 오래된 전통 온천 7개를 묶어서 ‘하코네 나나토’라고 합니다.
교토와 에도를 연결하던 에도시대의 옛길, 하코네 구가도
온천가를 거닐고 지옥계곡을 오르다
하코네 온천들 중에서도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곳은 하코네 유모토입니다. 이곳에는 도쿄의 신주쿠에서 출발하는 급행열차인 ‘로망스카’가 도착하는 하코네 유모토 역을 중심으로 제법 번화한 온천가가 펼쳐집니다. 온천탕에서 푹 쉬고 난 후 온천가를 거닐면서 가게와 물건, 사람을 구경하는 것 또한 하코네를 즐기는 방법입니다. 서로 다른 색깔의 나무 조각을 모자이크처럼 붙여서 만든 하코네 전통 목공예품인 ‘요세키 자이쿠’를 사도 좋고, 온천 만주나 찹쌀떡 같은 길거리 음식을 먹는 것도 즐겁습니다. ‘지옥계곡’이란 별명의 오와쿠다니 계곡 또한 하코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입니다. 매캐한 유황 냄새 증기가 가득한 계곡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온천 아래 부글거리는 마그마가 느껴집니다.
하코네 등산 전차
하코네 전통 방식으로 만든 목공예품인 요세키 자이쿠
이곳을 찾았다면 특별한 온천 계란을 맛봐야 합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수에서 1시간 가까이 삶은 다음 유황 연기로 훈증한 계란은 숯처럼 까만색을 띱니다. 까만 껍질 속 흰 계란을 하나 먹으면 7년을 더 산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맛있게 느껴집니다. 오와쿠다니 계곡 입구까지 가는 길 또한 재미있습니다. 우선 하코네 유모토 역에서 등산 전차를 탑니다. 하코네의 등산 전차는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지그재그로 산을 오릅니다. 이런 방식을 ‘스위치백’이라고 부르는데, 스위스 알프스의 산악 열차도 이런 식이죠. 등산 전차에서 내리면 케이블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케이블카 종착역에 내리면 마지막으로 로프웨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케이블카라고 부르는, 줄에 매달려 가는 교통수단입니다. 로프웨이의 종점이 바로 오와쿠다니 계곡 입구입니다.
오와쿠다니 계곡
전통을 지킨다는 것
일본의 유명 온천에는 수백 년을 훌쩍 넘는 전통 료칸들이 드물지 않습니다. 하코네의 후지야 호텔은 조금 특별한 전통을 가진 곳입니다. 이곳은 1891년 외국인 전용 호텔로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도쿄에서 가까운 온천 휴양지에 자리 잡았으니 유명한 외국인들이 줄을 이었답니다. 지금도 복도에는 찰리 채플린과 존 레넌, 헬렌 켈러의 빛바랜 기념사진들이 보입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아인슈타인도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는군요.
백여 년 전 처음으로 외국 손님들을 맞는 후지야 호텔은 만반의 준비를 갖췄습니다. 특히 서양 손님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문의 손잡이도 높이 달고 옷장도 넉넉하게 만들었답니다. 호텔 후원은 서양식 정원을 꾸몄고 야외 수영장까지 갖추어놓았죠. 지금 보면 서양의 호텔보다 훨씬 높이 달린 손잡이와 방에 비해 지나치게 큰 옷장이 어색해 보이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낡은 두꺼비집과 함께 ‘근대화산업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얼핏 불편해 보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후지야 호텔은 하코네에서 외국인과 일본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첫날 저녁으로 먹은 가이세키 요리에서 후지야 호텔의 수준과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음식의 맛과 메뉴의 밸런스, 스타일과 서비스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저녁의 프랑스 요리는 실망스러웠습니다. 비린내 나는 생선, 말라버린 스테이크가 눈을 의심하게 할 지경이었으니까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제대로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품위 있게 나이 드는 것이 얼마나 녹록지 않은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후지야 호텔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계속되는 스케치 작업
후지야 호텔의 가이세키 레스토랑
땅끝 카페에서 즐기는 ‘초일류 경치’
전통은 에도막부가 관리했다는 옛길에도 남아 있었습니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일부러 거친 판돌로 포장하고 빗물이 빠지는 배수로까지 제대로 갖춘 길은 옛 모습 그대로 이방인을 맞이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이 길을 따라 도쿄와 교토를 오가는 여행자들이 사라졌지만, 이들에게 따끈한 감주와 두툼한 찹쌀떡을 내던 찻집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일본식 화로 앞에서 먹는 감주와 찹쌀떡은 허기진 여행자의 배 속을 따뜻하게 채워주었습니다. 하코네 온천에서 옛길까지 둘러본 뒤, 하코네의 주변 지역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하코네와 이웃한 미나미아시가라 시의 불교 사찰인 다이유잔 사이조지에서 정진 요리를 맛보았습니다. 스님들의 수행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정진 요리는 소박하지만 정갈했습니다. 환영의 의미를 담았다는 붉은색 발우에 참깨 두부와 버섯 조림, 맑은 국과 밥 등이 깔끔하게 담겨 나왔습니다. 연일 화려한 가이세키 요리로 부담스런 속이 편안해졌습니다.
하코네 남동쪽의 마나즈루 반도는 태평양과 맞닿아 있습니다. 반도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지중해풍의 카페에는 ‘손님은 일류, 맛은 이류, 점포는 삼류, 경치는 초일류’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습니다. 카페에 앉아보니 과연 초일류라 할 만한 경치가 펼쳐졌습니다. 온천에서 풀어진 몸과 마음이 태평양을 향해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온천에서 시작한 여행이 바다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참선 체험
다이유잔 사이조지
하코네와 그 주변에서 먹어봐야 할 것
감주와 떡
에도시대 도카이도를 따라 걷던 여행자들을 위한 요깃거리. 13대 300년째 영업 중인 아마자케 차야에서 지금도 맛볼 수 있다.
빙어튀김
후지 산이 비치는 하코네의 호수 ‘아시노코’의 특산물은 빙어다. 테이블에서 직접 튀겨 먹을 수도 있다.
가마보코(어묵)
하코네와 이웃한 오다와라의 특산품. 밀가루 없이 90% 이상의 생선 살로 만든 오다와라 어묵은 종류 또한 다양하다.
검은 계란
유황 증기가 가득한 ‘지옥계곡’인 오와쿠아니에서 온천수로 삶은 달걀. 하코네 온천을 대표하는 명물이다.
정진 요리
화려한 가이세키가 질린다면 일본 사찰의 담백한 정진 요리는 어떨까?
하코네 인근의 다이유잔 사이조지의 정진 요리가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