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특별한 날, 인생의 선배

기사 요약글

서비스업 분야에 재취업하기 어렵다는 공식을 과감히 깨뜨린 사람이 있다. 노경환 대표는 호텔리어로 갈고닦은 서비스 정신으로 ‘시니어 웨딩카 운전원’을 창직했고, 사회적 기업 ‘더 퍼’를 세웠다

기사 내용

 

 

 

이전에는 호텔리어로 일하셨다고요.

 

 

20년 동안 호텔리어로 일했는데, 갑작스럽게 은퇴를 하게 되었죠. 은퇴 준비를 전혀 못 했지만 마음 한편엔 ‘여태껏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들이 예상보다 빨리 닥쳤습니다. 수입이 끊겨 돈이 궁해지니 비로소 현실이 보였고, 어떻게든 재취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은퇴자를 위한 재취업 시장이 정말 좁더라고요. 저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는 더 갈 데가 없었고요.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못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감은 낮아지고, ‘설 곳’은 물론 ‘기댈 곳’조차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대리운전을 시작했습니다.

 

 

대리운전도 일종의 서비스업이라 나름 노하우가 있었을 텐데요.

 

 

사람들이 대리운전을 ‘막장 직업’이라 하더라고요. ‘마지막 직업’일 만큼 힘들고 어렵단 얘기죠. 직접 해보니 힘든 점이 참 많았어요. 일단 대리운전을 폄하하는 인식이 있다 보니 저보다 한참 어린 손님들의 무례한 행동을 참는게 곤욕스러웠죠.

 

운전이 마음에 안 든다며 시비를 걸거나, 조수석에 앉아 신발을 벗고 글로브 박스 위에 발을 올려놓기도 하고요. 이 외에도 술에 잔뜩 취해 대리 부른 것도 기억 못 하는 사람,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는 사람 등 별의별 사람이 많았어요.

 

 

뼈아픈 경험을 했군요.

 

 

그런데 이때 저를 힘들게 하는 손님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저처럼 은퇴 후 대리운전에 뛰어든 이가 많더라고요. 제가 은퇴 후에 느낀 허탈함, 황망함, 난감함, 쓸쓸함을 그들도 고스란히 느끼고 있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옷을 격식 있게 차려입고 일하러 나간 적이 있어요. 그날 손님들의 반응이 이전과 현저히 다른 겁니다. 무시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고 자세를 바로잡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때 느꼈어요. ‘나’라는 상품을 고급화하는게 중요하다는 걸요.

 

그날 이후 동료들에게 웬만하면 점퍼 입지 말고, 운동화 신지 말라고 얘기해 줬어요. 내가 누추해 보이면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까지 무시당한다고 말이죠.

 

제 말에 공감한 동료들이 차림새를 단정하게 하는 것을 시작으로 저처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문득 대리운전 일에 만족할 게 아니라 은퇴자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힘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것이 웨딩카를 운전하는 웨딩쇼퍼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요?

 

 

아들의 결혼식 때문이었어요. 아들이 자기 결혼식 날인데도 새벽부터 부랴부랴 직접 운전하는 것을 보니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요.

 

결혼하는 사람의 웨딩카는 친구나 직장 동료가 운전해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은 다르더군요. 운전을 부탁하는 것은 신세 지는 일이고 결례이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때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반짝 떠올랐죠. ‘은퇴한 사람들이 웨딩카 운전 서비스를 제공하면 어떨까?’ 하고 말이죠.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좋은 날 , 시니어들이 안정감 있게 운전해 주면 그들도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제 아이디어를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어요. 그러자 ‘젊은 사람들은 꼰대가 운전하는 걸 싫어한다’는 반응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기성세대들 생각이었어요. 막상 젊은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은퇴자들을 응원하는 착한 소비’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는 선택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아이디어가 승산 있겠다 싶어 사업을 구체화했죠.

 

 

그래도 창업은 만만치 않은 과정인데요.

 

 

일단 큰 자금이 필요한 일이니 가족들의 동의가 절대적인데, 아내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래도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무작정 인터넷에 ‘창업’이라는 단어로 검색했더니 생각보다 창업에 대한 지원이 많더라고요.

 

상상우리에서 진행하는 ‘창업아카데미교육’에 참가하면서 창업에 대한 모호함이 섬세함으로,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바뀌었어요. 5개월간 교육을 받았는데, 이 수업이 없었다면 저는 창업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곳은 일반 창업이 아니라 사회적 기업 창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제 취지와 잘 맞았죠.

 

일단 사회적 기업에 대해 배우고, 자신의 전문성과 아이디어를 사회적 기업이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결과를 창출할지 배웠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웨딩카 서비스지만 궁극적으로 은퇴한 시니어와 경력 단절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사회적 가치 창출을 창업 목표로 삼았어요.

 

 

그것이 지금의 ‘더쇼퍼’군요. 처음 창업했을 때 세운 목표를 이루어가고 있나요?

 

 

처음에는 저 혼자였지만, 지금은 10명 넘는 직원이 힘을 합쳐 일하고 있어요. ‘쇼퍼(chauffeur)’란 고급 승용차에 귀빈을 태우고 일반 운전기사가 해내지 못하는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수 운전기사를 뜻하는 단어예요. 이 일이 단순 대리운전이 아니라 전문성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죠.

 

웨딩쇼퍼는 결혼식 당일에 신랑 신부는 물론 양가 부모님과 은사님을 미용실, 결혼식장, 공항까지 모시는 ‘맞춤 이동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신랑 신부가 직접 신청하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결혼 선물로 저희 서비스를 신청하기도 하지요.

 

특히 놀란 건 제 창업 목표인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취지에 공감해 신청한 젊은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요즘 세대의 ‘착한 소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 세대보다 훨씬 생각이 바르고 똑똑하다는 것을 느꼈죠.

 

점점 늘어나는 손님들을 보며 자신감이 생겼고, 웨딩카 서비스에서 부모님을 병원까지 모셔다드리거나 중요한 클라이언트를 모시는 서비스까지 확장했습니다.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보입니다.

 

 

저는 이제 현장에서 일하지 않고 예약을 받고 직원들에게 일을 배분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나름 원칙이 있는데, 신랑 신부의 동선을 확인해서 최대한 교집합이 있는 웨딩쇼퍼를 선정합니다. 예를 들어,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라면 천주교 신자인 웨딩쇼퍼를 매치하는 식이죠.

 

우리 웨딩쇼퍼들은 공통적으로 이 일에 대해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사회에 공헌한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부모 세대로서 자녀 세대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다들 뿌듯해합니다.

 

 

[이런 기사 어때요?]

 

>> [전성기TV] 퇴직 앞둔 45세 이상이라면, 무료로 새출발 카운슬링 받으세요

 

>> 축복의 순간을 빛내주는 자부심

 

>> 지금 내 차의 블랙박스, 사고 현장에서는 무용지물?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