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뜰한 손끝으로 얻은 새 명함

기사 요약글

코로나19를 지나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깔끔하고 아늑한 주거 환경과 효율적인 공간 활용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절실히 체감했다. 정리와 수납은 일상에서 누구나 하는 청소가 아닌, 탁월한 재능이자 전문적인 기술이 되었고, 이와 함께 살뜰한 살림꾼이던 주부들이 당당히 이 분야의 전문가로 새로운 명함을 얻게 되었다. 박희경 씨와 심봉옥 씨 또한 그들 중 한 명이다.

기사 내용

 

 

 

박희경 대표님은 정리수납컨설턴트라는 직업이 생소하던 시기에 일찌감치 그 분야에서 자리를 잡았다고요.

 

 

저는 원래 은행과 텔레마케팅 영업을 하던 직장인이었어요. 그러다 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면서 소위 경력 단절 여성이 되었죠. 그러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서 여유가 생겨 다시 일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마침 집 근처에 여성인력개발센터가 있어 그곳에서 뭔가 배워보기로 했는데 정리수납컨설턴트 전문가 과정이 있더라고요. 어떤 일을 하는 건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남편이 유통 관련 일을 해서 세제든 식용유든 대량으로 한 박스씩 가져오곤 했는데 좁은 집에 어떻게 정리할까 매일 궁리하고 연구하는 게 제일이었거든요. 꼭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배워두면 실용적이겠다 싶었죠.

 

실제로 전문가들에게 체계적인 정리 방법과 수납 기술을 배워보니 너무 재밌고 적성에 맞더라고요. 새로운 직업을 찾았다는 생각에 신나게 배웠습니다.

 

 

이후 사업으로까지 연결된 계기가 있나요?

 

 

정리수납컨설턴트 1급 자격을 따고 친정집, 친구 집을 돌며 열심히 실습을 했어요.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어요. 우연히 제 블로그를 본 한 주부가 컨설팅을 의뢰한 거죠.

 

그 당시 60만 원을 받고 배운 것을 십분 발휘해 집 안을 싹 정리해 드렸습니다. 그분이 본인 블로그에 제가 일한 내용을 소개했고, 이후 100건이 넘는 의뢰가 들어왔어요. 그땐 정말이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더라고요. 그렇게 경력을 쌓으면서 2013년에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어엿한 대표가 되었습니다.

 

 

창업을 하려면 기본 투자 비용이 필요할 텐데요.

 

 

‘사업’ 하면 큰돈이 들 것 같지만 정리수납컨설턴트는 휴대폰, 인터넷만 있으면 얼마든지 운영이 가능합니다. 저는 블로그와 SNS로 홍보하고, 의뢰가 들어오면 직접 현장에 나가 견적을 뽑아요.

 

짐을 보고 몇 명이 며칠간 정리해야 할지 정하고 나면, 정리수납컨설턴트 자격증 보유자들이 모인 단체 카톡방에 일정을 공지하죠. 해당 날짜에 일할 수 있는 분들이 모이고 저와 함께 출장을 나가 짐을 정리하는 식이에요. 일이 있을 때만 헤쳐 모이기 때문에 따로 사무실도 필요 없고요.

 

 

수익은 어느 정도인가요?

 

 

컨설팅 비용은 20만 원에서 500만 원까지 규모에 따라 제각각이고, 평균 30~40%가 대표인 제 몫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주일에 두세 건 이상 꾸준히 의뢰가 들어오니 제겐 무척 고마운 직업이죠. 수익도 그렇지만 이 일을 하면서 느낀 보람과 자긍심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함께 일하시는 분들은 저처럼 주부가 대부분인데 파트타임으로 시간을 조율하면서 하루 10만 원은 너끈히 벌 수 있으니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자부심이 듭니다. 그뿐 아니라 공간을 말끔히 정리하고 나면 집주인들의 표정부터 달라지는데, 그분들에게 심리적 위안과 만족을 드린 것 같아 제 기분이 더 좋아질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해볼 생각입니다. 딸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직업이에요.

 

 

 

 

심봉옥 대표님은 ‘드레스북’이라는 의류 수납 아이템을 개발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드레스북을 생각하게 되었나요?

 

 

대학을 가면서 떨어져 살게 된 아이가 주말에 집에 오면 “엄마 내 옷은? 양말은 어딨어?” 이렇게 물었어요. 매번 찾아줄 수 없어서 고민하다가 빳빳한 박스를 칼로 대충 잘라서 판을 만들어 옷을 정리했습니다. 옷을 책처럼 정리해 놓으면 편하게 찾아 입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이가 보더니 신기하고 편하다면서 “엄마, 이거 특허 내자”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당시엔 창업은 안중에도 없었고 그저 성가시게 옷을 안 찾아줘도 되니 편하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우연히 발견한 살림 아이디어 정도였는데 어떻게 창업으로까지 연결하게 되었나요?

 

 

딸이 특허 내라고 한 말이 계속 마음에 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만든 의류 정리 종이판을 들고 무작정 특허청에 갔어요. 특허청 직원이 서류를 달라고 하는데, 준비해야 할 서류가 뭔지도 몰라 멀뚱히 서있으니 직원분이 어찌나 당황해하던지요.

 

그 정도로 창업이나 특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주부였어요. 이후 공익 변리사를 소개받고 상담을 한 후에 특허를 낼 수 있었습니다. 특허를 냈더니 다양한 곳에서 메일이 왔는데 그중 하나가 서원대학교 창업보육센터였어요. 그곳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드레스북으로 본격적으로 창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창업보육센터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나요?

 

 

아이디어를 어떻게 개발하는지부터 특허 내는 방법, 사업 계획서 쓰는 법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멘토링을 해줍니다. 흔히 은퇴 후에 요식업 창업을 많이 생각하잖아요. 음식 맛있고 친절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멘토링을 받고 나니 고려해야 할 게 많다는 걸 알았어요. 아이디어가 사업 아이템이 되게끔 체계적으로 도와줘요.

 

 

기존에 없던 제품이라 생산부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박스 재질의 종이로 만드는 거라 문구류 생산 공장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인터넷으로 검색해 봐도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10년 전쯤 발행된 ‘문구 시장이 줄어든다’는 주제의 기사를 찾게 됐고, 무작정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이런 제품을 만들려고 하는데 문구 공장을 소개받고 싶다고 했더니 한 사장님의 연락처를 알려주더라고요. 바로 수중에 있던 60만 원을 들고 공장에 가서 제작을 의뢰하고 샘플을 받아왔어요.

 

 

 

 

초기 투자 자본이 60만 원이었던 셈이네요.

 

 

그렇죠. 일단 샘플을 받아와서 집에서 리본을 붙이는 등 마감은 직접 했어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줬더니 반응이 좋더라고요. 사업해도 되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돈을 받고 판매하기에는 아직 시장성이 약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특허청 서울사무소에 갈 일이 있었는데 층수를 착각해 엘리베이터에서 잘못 내렸어요. 특허청이 몇 층인지 물어보려고 들어간 곳이 마침 여성발명협회였죠. 그런 기관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렇게 우연히 여성발명협회를 만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보완해 시장성을 높였고, 각종 대회와 박람회에도 출품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박람회에서 드레스북을 본 홈 핑 담당자가 연락을 해와 홈쇼핑에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원리가 워낙 간단해 도용 문제도 있지 않나요?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복제품이 많지만 적극적인 방어는 안 하고 있어요. 복제품이 나왔다는건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의미니까요. 처음에는 저도 쓰레기를 만드는 건 아닌지 고민했어요. 하지만 내가 만든 제품에 스스로 애착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굉장히 열심히 사용했죠.

 

간혹 중고 시장에 드레스북이 나올 때가 있어요. 사용하기 귀찮다는 평이 있는데, 저는 드레스북이 하나의 문화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뿐 아니라 옷을 정리하는 습관과 문화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창업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드레스북이 알려지면서 각지에서 연락이 많이 오더라고요. 제품 문의부터 ‘이런 아이템이 있는데 이것도 특허를 낼 수 있겠냐’ ‘이런 아이디어는 어떠냐’ 등 다양한 질문을 하는데, 저는 공익 변리사 기관을 추천하고 대학의 창업보육센터에서 상담을 받으시라고 권해요. 저도 그렇게 시작했으니까요.

 

또 중소기업벤처센터 민원실도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에요. 길을 몰라도 친절하게 안내받을 수 있는 곳이 꽤 많으니 창업을 준비하는 많은 분이 용기를 내고 찾아보면 좋겠어요.

 

 

앞으로 어떤 목표가 있나요?

 

 

예전에는 주방 세제 하면 ‘퐁퐁’을 떠올렸잖아요. 그런 것처럼 ‘옷 정리’ 하면 누구나 ‘드레스북’을 바로 떠올릴 정도로 고유명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늘 생활 속에서 아이디어를 찾곤 하는데, 지금은 또 다른 옷 정리 제품을 준비 중이에요. 제 나이 예순에 드레스북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일흔을 바라보고 있네요. 동년배들에게 꼭 말하고 싶어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두 번째 삶의 힌트가 있고, 자신만 포기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도전해 볼 만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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