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권의 책 읽기’ 이후 직장인에서 미술해설사로

기사 요약글

본업 외에 미술해설사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피지영 씨.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타이틀을 얻게 된 노하우를 묻자, 책 1000권을 읽으면 뭐든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사 내용

 

 

 

1000권의 책 읽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는 서울대병원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는데, 예전에 7년 동안 보건복지부의 한 사업 홍보팀으로 파견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복귀 후 약간 여유가 생기는 시점에 우연히 원내의 사이버 미술 강의를 듣게 됐습니다. 이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됐지요.

 

그 전까지는 20여 년 동안 옆길로 새지 않고 평범하게 직장 생활하면서 술 좋아하고, 프로야구에 빠져 살던 중년이었는데, 그 강의를 듣고 멋있는 강의를 해보고 싶다, 미술사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생겼습니다.

 

 

책 외에 공부하는 다른 방법이 많았을 텐데요.

 

 

전문적으로 미술사를 배우기 위해 대학원에 가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는데 미술에 대해 전혀 모르니 일단 책부터 읽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통해 미술 공부를 하니 자연스럽게 역사, 성경, 신앙, 철학으로 범위가 넓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작정하고 닥치는 대로 1000권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매일 한 권씩, 3년 계획을 잡고 2015년 5월 20일부터 시작해서 2018년 5월 4일에 끝냈지요.

 

책은 꿈을 이뤄주기도 하지만 꿈을 찾아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책 읽기를 시작한 것도 책을 통해 얻은 해법이었어요. 다양한 자기 계발서에서 ‘책을 1000권 읽으면 인생이 바뀐다, 강의도 하고 글도 써보면 비로소 공부한 것이 내 것이 된다’는 메시지가 저에게 인사이트를 주었어요.

 

미술사를 공부해 보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된 책 읽기가 보다 구체적으로 1000권 읽기, 유럽에 가서 작품 감상하기, 사람들 앞에서 강의 하기, 책쓰기 등 새로운 목표로 저를 이끌었어요.

 

 

어떻게 그 많은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나요?

 

 

책 한 권을 읽는 데 빠르건 느리건 6~7시간 정도 걸려요. 읽는 시간은 누구나 비슷한데 시간을 어떻게 할애하느냐가 다릅니다.

 

현대인이 하루에 심심풀이로 휴대폰을 쓰는 시간이 대략 3시간 20분이라고 하더군요. 특히 프로야구 마니아였던 저는 하루 4시간을 꼬박 중계방송 보는 데 썼죠. 이 시간을 모두 책 읽는 시간으로 바꿨습니다. 출퇴근할 때는 물론 점심시간까지 도시락을 먹으며 책 읽기에 투자했어요. 물론 어떤 날에는 점심 약속이나 저녁 약속이 있을 수도 있죠. 그럴 때는 주말에 아침부터 도서관에 가서 밀린 책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에 일곱 권은 반드시 끝냈죠. 책 읽기에 빠지니 나중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책을 보기도 했어요. 책을 통해 제가 새롭게 채워져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1000권의 책 읽기라는 목표를 달성한 뒤 다음 과정은 무엇이었나요?

 

 

그 다음 달에 3개월 무급 휴가를 신청하고 아내와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관광 비자로 머물 수 있는 최대 기간이 3개월이었어요. 지난 3년간 책에서 본 미술관, 박물관 속 작품들을 눈과 마음에 모두 담기에는 다소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여행 계획을 짜고 90일간의 숙박, 교통, 미술관·박물관 입장권 등을 모두 예매한 뒤 일정대로 움직였지요.

 

 

돈도 꽤 들었겠어요.

 

 

3개월 치 월급과 여행 경비를 모두 합하면 4000만 원 정도 투자한 셈입니다. 아내가 밥솥까지 들고 가 직접 아침, 저녁을 해줬고 낮에는 미술관에서 살았습니다. 저녁에는 숙소에 돌아와 글을 썼죠.

 

좋아하는 술을 줄이고 프로야구도 끊은 채 3년 동안 오직 책만 보던 제 모습을 봐온 아내인지라 무급 휴가로 떠나는 이 여행을 흔쾌히 허락해 줬습니다. 유럽 여행을 떠날 때 목표는 책을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여행을 하는 90일간 매일 밤 글을 썼고, 느슨해지지 않으려고 페이스북을 통해 자체 마감을 했습니다.

 

홍보 일을 오랫동안 해와서 글 쓰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전문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교정·교열, 사진 작업, 편집까지 하다 보니 장장 4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책 읽기와 여행, 글쓰기를 통해 내면을 채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강의까지 도전했습니다.

 

 

아인슈타인에 대한 책에서 “남에게 가르칠 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는 구절을 읽는데 머리가 번쩍하더라고요. 곧바로 가족, 친척, 직장 동료 20여 명을 불러 미술사 강의를 해봤습니다.

 

강의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했는데 제 측근들이라 그런지 반응이 좋았고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더 큰 강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강의 콘텐츠를 만들어 6개월 뒤에 제가 일하는 서울대병원 대강당에서 점심시간 한 시간 동안 미술사 강의를 진행했어요. 병원 자유 게시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알렸음에도 직원을 포함해 환자, 환자 가족 등 많은 분이 강의를 들으러 와주셨어요.

 

 

성공적인 데뷔였네요.

 

 

무작정 용기를 낸 첫 번째 강의 덕에 사람들 앞에서 제가 공부한 미술사를 알려주는 데 자신감이 좀 붙었습니다. 이후 정기적으로 원내, 부서별 워크숍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고, 평소에 자주 가던 은평구립 도서관에도 재능 기부로 미술사 강의를 해보고 싶다고 먼저 제안하기도 했죠.

 

이를 시작으로 지역 도서관, 평생교육원, 식약처, 정부종합청사, 경북대 MBA 등 다양한 곳에서 100여 차례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료도 연봉의 5%는 될 정도였죠. 좋아서 하는 일치고 부수입이 쏠쏠했는데, 솔직히 돈은 상관없다는 생각이었어요.

 

강의를 시작한 첫해에는 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원내에서 하는 강의는 지금도 돈을 받지 않고 있고요. 그래도 좋았어요. 그저 제가 잘 아는 것을 남에게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제겐 큰 가치가 있는 일이에요. 강의료로 커피 쿠폰을 준다고 해도 기꺼이 하러 갑니다.

 

현재는 평생교육원, 도서관 같은 곳에서 강의할 경우 공공 기관 기준의 강사별 등급에 따라 보수를 받는데, 저는 강의당 7만~13만 원 정도 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결실은 미술해설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얻게 된 것일 텐데요, 일로 해보니 어떤가요?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미술해설사는 남에게 제대로 알려줄 수 있을 만큼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재미있지 않으면 못 할 일입니다. 그래서 이 길을 가려고 마음먹은 분이라면 스스로 재미를 느낄 일인지 정확히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라도 간접경험을 먼저 해보면 좋은데, 가장 쉬운 방법이 책 읽기라고 생각합니다.

 

의지를 갖고, 온전히 시간을 내서 1000권만 읽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확신해요. 저는 다시 1000권 읽기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미술사는 물론, 제 삶도 더욱 풍요롭게 채워볼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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