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구순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삽니다

기사 요약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정보를 많이 습득하는 것은 물론, 의학적으로 봤을 때도 독서는 뇌신경을 늘 활성화 상태로 만들죠. 그래서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고요. 시대의 지성이라 불린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님도 향년 89세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종이와 펜을 놓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컴퓨터 작업이 어려워질 만큼 몸 상태가 악화되자 펜을 들고 직접 노트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셨죠. 콧수염과 나비넥타이가 인상적 이었던 김동길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님도 94세로 별세하시기 2년 전까지 책을 집필했어요.

기사 내용

 

 

 

그래도 노후에는 쉬엄쉬엄 일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렇게까지 활발하게 이시형을 일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저처럼 외국 유학까지 다녀오며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어찌 보면 저는 특혜를 받은 사람이지요. 그렇게 원하는 공부를 한 만큼 사회에 환원하고 공헌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늘 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은 아파도 안 되고 게을러서도 안 되죠.

 

그렇게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우선순위로 두면 무엇보다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고, 일하는 게 즐거워져요. 어느 정도 힘든 것은 각오하게 되죠. 그런 연유로 저의 일과는 상당히 규칙적입니다. 저에게도 세로토닌, 즉 절제가 필요한 셈입니다.

 

사회에서 계속 제가 필요한 곳에 쓰이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서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아요. 한 달에 한두 번, 그것도 맥주 반 잔 정도가 전부인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만도 한데요.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다만, 나이가 들고 노화가 찾아오면서 생리적으로 느려지는 건 어쩌지 못 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반사신경이 조금 느려지는 것이 느껴져서 정확히 70세가 되던 해에 운전면허증을 스스로 반납했어요. 자동차 사고는 순간적으로 일어나고 나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치명적으로 다치게 할 수 있는 일이까요.

 

허리 디스크가 있어서 운동도 욕심부려서 많이 하지 못해요. 적당하게,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매일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컨디션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해요. 과신하지 말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잘 듣고, 그 신호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해요.

 

 

컨디션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루틴이 있나요? 박사님의 일과가 궁금합니다.

 

 

하루를 조금 빨리 시작하는 편이에요. 오전 5시쯤 일어나 방 안에서 가볍게 40분 정도 운동하면서 몸을 깨우죠. 스테퍼, 스쿼트, 팔굽혀펴기, 한쪽 다리로 서기 등 가벼운 운동을 하고 명상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는 당근 주스나 뮤즐리, 살짝 데친 채소를 샐러드처럼 가볍게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셔요. 채소는 되도록 익혀 먹는 편인데, 우리 몸이 항산화 물질을 더 잘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죠. 아침뿐 아니라 점심과 저녁도 비슷한 수준으로 소식하고 있습니다. 밥 한 술 먹는 정도죠.

 

40~50년 전부터 통합의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소식을 실천하고 있는데, 이제까지 감기 몸살 한 번 걸린 적 없어요. 저녁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후 6시 정도에 먹고, 늦어도 밤 11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어요. 그래야 이튿날 아침까지 12시간 정도 위장을 쉬게 할 수 있답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런 루틴을 꾸준히 지키면 우리에게 참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어요.

 

 

박사님처럼 평생 현역으로 사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노후에 일을 하는 삶과 일하지 않는 삶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뇌과학적 측면에서 차이가 분명히 납니다. 뇌는 가소성이라는 것이 있어요. 환경에 따라 뇌세포와 뇌 부위가 계속 성장하거나 쇠퇴하는 유동성을 말하는데, 한마디로 뇌는 생각대로 변한다는 겁니다. 많이 쓰면 그만큼 지속적으로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겨나면서 뇌 가소성이 활발하고, 반대로 안 쓰면 무용지물이죠.

 

‘나는 아직 젊다’ ‘이 정도 일은 문제 없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지만, ‘일하기 싫다’ ‘스트레스 때문에 죽겠다’ 싶으면 진짜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하기 싫어지는 거예요. 바로 이러한 뇌 가소성만 봐도 내가 할 일을 찾고 그 일을 열심히 하는 그 자체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이지요.

 

 

 

 

정년 연장이 해마다 뜨거운 이슈입니다. 우리는 과연 몇 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기대 수명은 평균 83세예요. 하지만 건강 수명은 그보다 10년 정도 짧은 73세죠. 결국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한계 수명까지 10년 정도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하지 못하고 그저 병을 앓다가 환자로 죽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어요. 바로 그 10년을 장수의 늪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초고령 사회에 장수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노후 계획을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할까요?

 

 

80대 이상 초고령 인구가 200만 명을 넘어섰어요. 역사상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오래 살게 된 거죠.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준비 없이 장수 시대를 맞이했다는 겁니다. 가족의 부양 의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정부의 복지 지원 정책은 아직 미비해 자칫 세대 간 갈등과 혐오까지 빚어지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그 갈등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일본 오키나와, 그리스 이카리아 등 세계 5대 건강 장수촌 ‘블루존’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어요. 모두 섬에 자리하고 있어 블루존이라고 하는데, 그곳은 노인들이 존경의 대상이라고 하더군요. 노인들이 존경받는 이유는 평생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것이고요.

 

외부와 통제된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자급자족하는 삶이 몸에 배어 있어 생존을 위해 나이 80이 넘은 노인들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나이 들어서도 솔선수범해서 성실하게 사는 모습은 절로 후대에 귀감이 될 수밖에 없죠.

 

 

60대 이후에 계속 일을 하더라도 젊을 때와 같을 수는 없을 텐데요.

 

 

물론 노인들이 하는 일이 젊은이들의 일과 똑같을 수는 없겠죠. 일단 정년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면 이전과 같은 직장 생활을 다시 하기 힘들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이야기합니다. 반드시 은퇴 전 현역에 있을 때 은퇴 이후의 준비를 끝내둬야 한다고, 평생 현역으로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시점이 60대라고요. 평생 버팀목이던 직장에서 나와 뭘 해야 할지 막막하고 헛헛한 마음에 허송세월하기 십상이죠.

 

그리고 은퇴 이후 뭔가를 시작하려 할 때 현실적인 수입도 좋지만 ‘보람’ 있는 일을 찾는 것도 오래갈 수 있는 비결이에요. 미미하나마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기술을 이 사회를 위해 쓰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시너지가 날 겁니다.

 

 

원할 때까지 일하는 노년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래 살수록 건강, 돈, 관계가 제일 중요해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사회적 유대 관계를 잘 맺으면 건강과 돈을 관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어요. 지금 대한민국에 싱글족이 600만 명 정도 되는데, 이들은 특히 인간관계를 잘할 수 있는 훈련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의 경우에는 취미 클럽이 굉장히 잘되어 있어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직장, 모임 등 소속되어 있던 곳이 하나 둘 사라지기 마련인데, 슬리퍼를 끌고 나가서 만나도 흉이 되지 않는 친구를 최소한 3명 정도는 사귀어두는 것이 결국 사회적으로 소외되지 않고, 노후에 원하는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겁니다.

 

 

노후의 일자리도 큰 숙제입니다. 경제 시장에서 노년층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저는 노인력(老人力)이라고 표현해요. 나이를 먹지 않고선 절대 얻을 수 없는 경험과 지혜, 그리고 슬기가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변화에 민감하고 의사 결정도 빠르죠. 그것이 득이 될 때도 있지만 실이 되는 상황도 있을 겁니다. 바로 그런 ‘젊은’ 조직에 신중한 ‘늙은’ 피를 수혈한다면 비로소 균형감이 생길 거예요.

 

외국을 보면 수상이나 대통령이 굉장히 젊잖아요. 과연 젊은 패기로만 국정 운영이 가능할까 싶지만, 그 뒤에 경험 많은 원로들이 내각을 이루고 있죠.

 

 

노년에도 자신의 쓸모를 찾아 현역의 삶을 살고 싶은 이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모험심, 용기를 젊은이들의 특권으로 생각하는데, 그건 사실 나이와 관계가 없어요. 도리어 그동안 삶에서 체득한 경험치가 쌓여 있는 노인의 경우 회복 탄력성이 좋고, 설사 실패하더라도 청년들에 비해 잃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치명률이 낮다고 볼 수 있죠.

 

영화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보면 자수성가한 백만장자와 한평생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정비사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위해 모험을 떠납니다.

 

바로 그겁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머지않은 만큼 과감하게 용기를 내서 하고 싶었던 일들에 도전해 보세요. 그러한 도전 하나하나가 노후의 삶을 보다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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