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인생은 재밌어서 하는 일로

기사 요약글

정언랑 씨는 스스로를 ‘스마트폰으로 인생이 바뀐 여자’라고 소개한다. 처음 생긴 스마트폰에 장착된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짤막한 글을 쓰다가 ‘캘리그래피 브랜딩’이라는 사업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스마트폰으로 끄적인 ‘낙서’에서 시작됐다.

기사 내용

 

 

 

‘낭낭공방’이라는 이름이 재미있네요. 모든 글자에 ‘ㅇ’ 받침이 들어가니 부를 때 뭔가 명랑한 느낌입니다.

 

 

제 이름을 따서 지은 건데, 제 이름에도 모두 받침이 들어가네요(웃음). 좋게 봐주신 것처럼 그냥 명랑하게 시작했어요.

 

남들보다 조금 뒤늦게 스마트폰을 샀는데, 전용 펜이 하나 있더라고요. 붓의 두께나 질감, 색상의 농도까지 아주 디테일하게 선택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완전 신세계였죠.

 

처음엔 잘 못 쓰다가 신기해서 하루 이틀 재미로 하다 보니 종이에 하는 것과 다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심심할 때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지요. 그야말로 낙서였어요. 다만 종이에 하는 것과 달리 저장 기능이 있으니 그 낙서가 시간이 지나면서 차곡차곡 쌓이더라고요.

 

그래서 SNS에 하나씩 올렸는데 팔로워들이 ‘혼자 보기 아깝다’면서 칭찬을 많이 해주었어요. 제 느낌이나 생각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간에 한 낙서를 머그잔이나 타일, 천 등에 옮기는 작업을 했어요. 그게 제 인생의 변곡점이었죠.

 

 

단순한 재미 이상의 의미도 있었다고요.

 

 

몸이 좀 아파서 병상에서 보낸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그리고 SNS에 올린 것이 저에겐 치유였어요.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기운을 차리는 데 큰 역할을 했죠.

 

저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데, 그 시기에 그동안 살면서 보고 느끼고 이해한 것들이 응축되어 나왔던 것 같아요. 제가 살아온 경험이 ‘정언랑화’되어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었고, SNS를 통해 사람들에게 닿게 된 셈이죠.

 

 

원래는 어떤 일을 했나요?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뒤 학원 강사, 보험 텔레마케터로 근무했고, 이후엔 대학원에서 배운 음성학을 기반으로 콜센터 서비스 강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중년 대상으로 코칭을 진행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경험도 낭낭공방의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중년들에게 어떤 코칭을 해주었나요?

 

 

큰 주제는 ‘자기 되돌아보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중년쯤 되면 자기 인생에 데이터가 쌓이게 마련인데, 그걸 단순한 경험으로 흘려버려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했어요. 그 속에 분명 은퇴 준비에 아주 유용하게 쓰일 소스가 있을 거고, 그걸 찾기 위한 첫 번째가 바로 ‘자기 알기’예요. 의외로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분이 많더라고요.

 

저는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서 스스로 정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역할을 했고, 저 역시 그분들과 함께 저를 바로 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수업 마지막 시간에는 그렇게 찾아낸 각자의 키워드를 머그잔이나 텀블러에 새겨 선물했더니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 제가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라 본인에게 가장 필요한 ‘그 말’을 선물했다는 점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셨어요.

 

 

자신만의 콘텐츠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경험을 사업으로 확장했습니다.

 

 

처음에 사업을 해보겠다 했을 때 컵 한두 개 팔아서 무슨 돈이 되겠냐며 만류하는 사람들 때문에 선뜻 결심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SK의 창업 지원 공모전 소식을 들었고 ‘스마트폰으로 작업한 그림이나 사진을 컵이나 텀블러 등에 새겨주는 온라인 공방’이라는 사업 아이템으로 공모전에 도전했습니다. 창업에 필요한 기곗값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었죠.

 

생전 해본 적 없던 사업 계획서를 쓰며 뭔가 내 안에 있는 에너지를 다 토해낸 기분이 들었어요. 마침내 2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모전 최종 심사를 통과해서 2000만 원의 상금과 3000만 원의 기술개발 자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특별한 기술 같지도 않은데 유사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심사위원의 예리한 지적에 “손쉽게 배워 나만의 직업을 가질 수 있으니 사회적으로 오히려 더 좋은 현상 아니냐”고 반문한 저의 두둑한 배포도 우승에 한몫한 것 같고요.

 

 

자신이 좋아하고, 남들도 좋아해준 일로 돈까지 벌고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창업 이후 식당 메뉴판 디자인부터 인테리어, 브랜딩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로 낭낭공방의 역할이 확장되었어요. 제 아이디어가 현실로 구현되는 것이 신나서 한 작업인데 알고 보니 그게 브랜딩이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결과물이 옥수동의 ‘부부요리단’이에요. 제가 디자이너 출신도 아니고 마케터도 아닌데, 제 감성이 통한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젊을 땐 ‘해야 해서’ 일을 했는데 이제는 ‘재미있어서’ 하니까 결과물도 좋고, 무엇보다 제 만족도가 무척 높습니다. 자신을 잘 들여다보면 즐기면서 돈 벌 방법이 나온답니다. 제가 확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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