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60에 맨땅에 헤딩, 생동감 있는 미래를 얻었습니다

기사 요약글

인생이 길어졌다. 덕분에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나이에 상관없이 새롭게 도전하고 그 도전 덕분에 웃는 날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극단 ‘웃는 고양이’를 이끌고 있는 연극 제작자 오수현 씨. 극단 이름처럼 웃는 인상의 그는 연극 제작자가 되기 전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기사 내용

 

 

 

원래 퇴직 후 인생 2라운드에 대한 계획이 있었나요?

 

 

인생을 3부로 살아야겠다는게 평소 소신이었어요. 태어나서 25세까지는 배우는 기간, 26~50세는 돈 버는 기간, 51세부터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기간이라고 정했죠.

 

그래서 교직 25년을 채우던 해에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교사였던 아내도 흔쾌히 동의해줬어요. 아내 역시 몇 년 후 명예퇴직했습니다(웃음).

 

 

그동안 하고 싶던 일을 신나게 하셨겠군요.

 

 

퇴직한 이후 즐길 줄 아는 삶을 꿈꾸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지출은 아깝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죠. 하고 싶고, 가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을 탐색하고, 열심히 배우고, 직접 경험했지요.

 

역사 등 인문학 공부로 시작해 요리, 도예까지 온갖 강좌를 다 들었어요. 이런저런 것을 많이 배웠는데, 5년이 넘어가니 더 이상 배우고 싶은 게 없더군요. 그 때부터 앞으로 뭘해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연극은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요?

 

 

평소 좋아하던 취미를 일로 연장시킨 주변 친구들이 자극이 되었습니다. 제주도의 오름을 답사하며 글을 쓰는 전직 역사 교사 친구, 야생화 전문가가 된 국어 교사 출신 친구 등이 있었거든요.

 

제 자신은 무엇을 가장 좋아했었나 생각하다가 불현듯 30여 년 전 봤던 연극 <칠수와 만수>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군 제대 후 대학로에서 본 연극이었죠. 배우 문성근과 강신일이 각각 칠수와 만수로 분했던 당시 최고의 화제작(1986년 초연 당시 서울에서만 관객 5만여 명을 동원했다)이었는데, 완전히 사로잡히는 감동이 있었어요.

 

그렇게 좋아했던 연극을 왜 잊고 있었나 싶더라고요. 취미로라도 연기를 해본 적이 없으니 배우가 될 수는 없겠고, 그렇다면 연극 제작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시작할 수 있었나요?

 

 

<한국직업사전>을 찾아보니 연극 제작자의 직무는 “연극을 공연하기 위하여 제작비를 투자하며 작품, 배우, 연극 연출가 등을 섭외하고 공연 일정을 계획한다”라고 정의되어 있더군요.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거의 백지 상태였어요. 그럼에도 ‘하고 싶다’와 ‘해야 한다’라는 마음이 확고해지더라고요. 그 마음 하나가 구심점이 되어 제 삶을 움직였고 나이 60에 아주 오랜만에 맨땅에 헤딩을 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대표님을 보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1년 정도는 연극배우, 연극 연출가, 연극 기획자 등을 두루두루 만나서 조언을 구했죠. 마침 제자 중에 연극계 종사자가 있어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데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만류하더군요. 비전공자인 데다 연극계와 무관하게 살았기 때문인지 다들 첫마디가 ‘아예 시작할 생각을 말라’는 것이었어요. 연극 제작은 너무 힘든 분야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위험 부담이 높다, 수익은커녕 금전적 손실만 본다, 그러나 미치면 손을 못 뗀다는 것이 이유였죠.

 

결국 실제 제작을 하면서 경험치를 쌓을 수밖에 없었어요. 일단 2017년 12월 극단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냈습니다.

 

 

 

 

첫 작품 제작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인생 2막을 시작할 때 인간관계가 소중한 자산이 되지요. 인생은 ‘노하우(know-how)’만큼 ‘노후(know-who)’도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과 일을 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그 일에 대한 노하우도 쌓이는 법이니까요.

 

교직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선배가 있는데 베스트셀러 동화작가였죠. 선배를 만나 연극을 제작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자신의 작품을 해보라고 하더군요.

 

 

시작은 그런대로 순탄했군요.

 

 

그런 셈이죠. 그 선배가 판타지 동화 <고양이 학교> 원작자인 김진경 시인입니다. <고양이 학교>는 2001년 첫 책이 출간된 이후 2007년까지 총 3부 11권이 나왔습니다. 이 중 1부는 프랑스 · 일본 · 중국 · 대만 등에서도 번역 출간됐고, 2006년에는 국내 동화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아동 청소년 문학상인 앵코 티블상을 받았지요.

 

이렇게 첫 작품인 <고양이 학교>가 시작됐고, ‘웃는 고양이’라는 극단 이름도 이때 얻었어요. 원작 중 1부 1권 이야기인 ‘수정 동굴의 비밀’을 가족 뮤지컬 형식으로 제작했는데, 제작비는 제 퇴직금으로 충당했어요.

 

연출자, 기획자, 배우들을 모았고 5개월 정도 제작 및 연습 기간을 거쳐 2018년 5월, 극장 초연을 가졌지요.

 

 

첫 작품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교직 생활은 학사일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시계추처럼 정확하게 반복되는 일정을 따르죠. 매년 비슷한 업무를 비슷한 시기에, 그리고 대부분 예측 가능한 선에서 해나갈 수 있어요.

 

그러나 연극 제작은 해보지 않은 것들,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물론 예상치 못한 문제들과 자주 맞닥뜨려야 했지만 그런 문제들조차 뜨겁고 설레는 경험이었습니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첫 작품을 제작했어요.

 

 

예상치 못한 문제는 어떤 것들이었나요?

 

 

경험 미숙에서 오는 중대한 판단 착오가 있었어요. 공연 시간을 잘못 배정했죠. 평일 오후 5시 공연이었는데 그 시간에는 핵심 관객층인 유치원생, 초등학생이 대개 학원에 있다고 하더군요. 관객 동원에 실패해 큰 손실을 봤어요.

 

물론 처음 제작한 작품이기에 제작비를 회수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수업료라고 여겼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 다음 작품은 순조로웠나요?

 

 

두 번째 작품은 신인 연출가 겸 극작가의 제안으로 시작했어요. <반디>라는 작품으로, 독립운동가인 유관순 열사의 친구였던 남동순 선생의 이야기지요.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가가 되었고 해방 후부터는 평생을 고아를 위한 사회사업에 헌신한 분인데,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고, 2010년 작고하셨어요. 그분의 일대기를 그린 <반디>는 2019년 12월 무대에 올랐지요.

 

 

교육적인 내용을 다룬 작품이네요.

 

 

<고양이 학교>는 환경 문제, <반디>는 역사 문제를 다룹니다. 교사였던 이력 때문인지 교육적인 주제에 관심이 큽니다. <반디>라는 작품을 통해 제가 주력해야 할 주제가 정해졌어요. 앞으로는 순수 창작극이 면서 우리나라의 숨은 역사 인물을 재조명하는 작품을 중점적으로 제작할 생각입니다.

 

 

 

혹시 후회한 적은 없나요?

 

 

연극은 배고픈 직업이라고 하죠. 한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데 길게는 2~3년, 짧게는 4~5개월도 걸립니다. 공연을 올려도 수익은 커녕 얼마나 손실을 줄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요. 모아놓은 돈을 노후 자금으로 써야 하지 않느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연극을 통한 수입은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저는 굶지 않습니다(웃음). ‘왜 연극 제작이냐’고 묻지 않고 묵묵히 지지해주는 아내에게 늘 고마울 뿐입니다. 연극 제작이 남들에게 추천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저에게는 나이 60에 시작한 새로운 인생입니다.

 

한참 늦게 시작했지만, 이제라도 할 수 있어서 마냥 좋습니다. 생동감 있는 미래를 샀다고 생각해요. 현재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두 편입니다. 이 두 작품은 반드시 제작하겠다는 사명감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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