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내 인생의 즐거운 역사

기사 요약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2011년 대구 세계 육상선수권대회를 거쳐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까지 참여한 황보순철 씨는 자원봉사로 국제 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함께 봉사한 청년들 에게 존경과 부러움의 시선을 받았다는 자원봉사계의 히어로를 만났다.

기사 내용

 

 

 

국제 대회 자원봉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1984년에 우리나라가 컬러 TV로 바뀌면서 휘황찬란한 화면으로 LA 올림픽을 시청하는데, 자원봉사자들의 밝은 얼굴을 보며 막연히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 후 1986년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국제 대회 자원봉사의 길에 들어섰어요.

 

 

대회 때마다 많은 추억을 쌓았겠네요.

 

 

아시안게임 때 스물한 살이었는데,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AD 카드 발급하는 일을 하기 전까지는 주로 관중 안내를 맡았어요. 서울올림픽 때 술을 가지고 입장하려는 분들을 막느라 고생했고, 보안 검색을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설명하느라 애 좀 먹었죠. 돌아보면 다 추억이네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스타가 되셨다고요.

 

 

다양한 연령과 국적의 자원봉사자가 모였는데, 국제 대회를 거치며 모은 AD 카드 11장 덕분에 주목을 받았죠. 그 카드들은 제 인생을 보여주는 역사이자 보람이에요. 하지만 평창 동계 올림픽 자원봉사에 지원할 때는 좀 머뭇거려지기도 했어요.

 

 

무슨 이유가 있었나요?

 

 

면접장을 둘러보니 지원자들이 대부분 학생이더군요. 제가 자원봉사를 시작할 때 나이 정도였어요.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닌지 고민이 깊었는데, 제 경험을 전수하고 동기 부여를 해주는 일도 또 다른 자원봉사라는 면접관의 설득에 마음을 바꿨죠.

 

일부러 그동안 착용한 AD 카드를 모두 들고 평창에 갔어요. 청년 자원봉사자들을 앞에 두고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박수가 터져 나오더라고요. 감격적인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평창이 특별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요?

 

 

아들과 함께 참여해서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아들은 강릉에서, 저는 평창에서 자원봉사를 했어요. 일이 바빠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같은 옷을 입고 만나니 감회가 남다르더라고요. 설에는 평창에서 세배를 받았죠(웃음).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만큼 봉사를 꾸준히 할 수있었던 비결은 뭘까요?

 

 

설을 맞아 거래처 사장님께 현장 사진과 함께 짧은 새해 인사를 보냈어요. 놀라서 답장이 왔는데, ‘황보 사장 얼굴이 이렇게 밝았냐’는 거예요. 평소에 웃지 않았던 걸 반성하면서도 자원봉사를 정말 즐기고 있다는 걸 느꼈죠. 즐겁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래 지속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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