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엄홍길, 산에 감사한 마음, 학교 건립으로 보답하다

기사 요약글

흔히 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힘들고 위험하다고 한다. 자칫 정상 정복에 도취해 내려오는 길을 우습게 여기다가 오히려 다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엄홍길 대장은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인생에서 잘 내려오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나눔의 길이었고, 산에 대한 경건한 마음과 감사함을 보답하기 위해 자신을 받아주었던 히말라야 오지에 학교를 세우며,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고 있다.

기사 내용

 

 

 

 

이제는 산악인보다 자선사업가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네팔에 학교 세우는 일을 꾸준히 하고 계시죠?

 

 

네팔은 제게 두 번째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네팔 오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짓기 위해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한 것이 2008년입니다.

 

제게 학교를 짓는 일은 히말라야의 8000m 봉우리 16개를 모두 정복한 다음에 올라야 할 17번째 봉우리와도 같았어요. 처음엔 제가 오른 고봉의 개수만큼 16개의 학교를 짓는 것이 목표였는데,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어느덧 네팔 동북부 테라툼에 열아홉 번째 휴먼스쿨을 짓고 있습니다.

 

 

특별히 나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쭉 생각해 온 일이에요. 그동안 히말라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는 일이랄까요. 8000m 이상을 흔히 신의 영역이라고 부르는 건, 인간의 의지로는 도저히 컨트롤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내 발로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이 받아주는 것이지요. 극한 상황에 내몰릴 때마다 ‘제발 저를 받아주세요. 그 은혜 모른 척하지 않겠습니다. 언젠가 꼭 갚겠습니다’라고 기도를 많이 했어요. 그 약속을 지키는 것뿐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함께 산을 오르다 희생된 동료들을 기리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예요. 첫 번째 학교를 세운 팡보체는 히말라야에 함께 오르다 추락해 사망한 친구의 고향이기도 해요. 해발 4000m쯤 되는 곳입니다.

 

 

산에 보답하는 방법은 많았을텐데 왜 학교였나요?

 

 

그동안 여러 나라, 여러 산을 다니면서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많이 봤어요. 당장 먹을걸 주는 것보단 장기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게 인생에 훨씬 도움이 되겠더라고요.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공간이고, 그 꿈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대충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기후나 온도를 고려해 적합한 외관을 짓고 책상, 의자, 칠판은 물론 아이들이 많은 곳에는 학교 외에 놀이방도 지었습니다.

 

학교 하나 지어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황량한 산 한가운데 번듯한 학교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깨끗하고 놀이 시설도 있으니 수업이 끝나도 아이들이 집에 가지 않더라고요.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후원자 모으러 뛰어다니고, 복잡한 서류 들여다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산은 ‘세계 최초’라는 성공과 성취감을 안겨주었지만, 생사를 오간 고통과 눈앞에서 동료를 잃는 황망함도 안겨준 곳이죠. 그런데 산악인으로 은퇴한 이후에도 왜 산을 떠나지 못하시나요?

 

 

그렇게 태어나서요(웃음). DNA에 그런 기질이 숨어 있나 봐요. 그냥 앉아 있질 못하겠어요. 산에서 걷든가, 뛰든가 뭐라도 해야 제가 사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도봉산에서 음식 장사를 하셨는데, 그 덕분에 산을 놀이터처럼 여기고 살았어요. 학교에 가려면 1시간 넘게 산길을 걸어야 했죠. 암벽을 타기 시작한 건 중학생 때부터고요. 제대하고 나서는 높은 산에 오르고 싶은 열망 때문에 몸살을 앓았어요. 에베레스트산을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그래서였죠.

 

산에 가면 늘 죽음이 곁에 있어요. 언제 땅이 꺼질지, 언제 산사태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죠. 한 발자국이 생과 사를 가르는 상황에서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1초 뒤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그럴 때는 모든 걸 내려놓고 산에 맡겨야 해요.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정상이지요. 그렇게 수없이 산을 오르며 깨달은 것은 깃발을 꽂고 나서 그다음이 정말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점에서 깃발을 꽂고 난 다음의 인생으로 나눔의 길을 택하신 거군요.

 

 

맞아요. 승리에 도취돼 경거망동하다 보면 죽거나 다치죠. 과욕 부리지 말고, 붕 뜬 마음을 잘 다스려 천천히 산을 내려와야 비로소 내가 올랐던 그 정상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제게 나눔은 산에서 잘 내려오는 방법, 내게 주어진 성공의 가치를 가장 잘 음미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안정적인 방법이에요. 또 하나의 도전이라기보다는 당연한 선택이라고 할까요.

 

제 첫 번째 전성기가 20년 넘게 히말라야를 쏘다니며 산을 탔던 때라면, 두 번째 전성기는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사는 지금이 아닐까 생각해요. 인생에 전성기가 두 번이나 있었으니 참 감사한 삶이지요. 그래서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보답하고 싶습니다.

 

 

엄홍길휴먼재단

- 전화번호 : 02-736-8850

- 홈페이지 : www.uh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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