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내용
처음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로 시작했다고요?
2001년에 살레시오수녀원이 운영하는 마자렐로 센터에서 약 40명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영어 수업을 진행했어요. 수녀원 사정으로 수업이 폐강되었는데 하던 공부를 그만두는 어르신들이 안타까워 공부방을 마련해 주 1회씩 무료 영어 수업을 21년 째 진행하고 있어요.
어르신들이라고 해서 기초 영어 정도로 끝나지 않아요. 시대적·문화적 상황으로 학업의 꿈을 오랫동안 접고 사셨지만 배움에 대한 갈망은 크신 분들이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수업에 참여하면서 시와 소설, 수필 등 문학작품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르신들이 자원봉사자가 되어 주변을 돌보며 스스로 삶을 가꾸어가고 계시고요.
봉사 활동을 통해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큰 힘을 얻을 것 같아요.
그럼요. 어깨동무를 만들게 된 것도 그런 경험이 모태가 되었습니다. 2008년 10월 8일, 나눔에 뜻이 있는 지인 10명이 모여서 순수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단체를 결성했죠. 그리고 그 이듬해부터 (사)한국자원봉사문화 지부로 등록되어 더 체계적으로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 대상의 영어 나눔 교실을 기반으로 다문화 가정 여성을 위한 커피 소셜 모임을 운영하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35년간 형편이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의 가족을 무료 진료했던 은평구 도티기념병원에서 통역 봉사도 했지요.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병원이었는데, 의료진도 모두 자원봉사자였어요. 그때 병원의 열악한 환경을 보고 통역 봉사에서 그치지 않고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환자를 위한 휴게 공간을 만들어드리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당연히 저희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기업 후원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일반 봉사자 모집에도 열을 올렸지요. 그 결과 5개 기업과 자원봉사자 60여 명의 도움으로 휴게실을 완공해 도티기념병원에 헌정했어요.
그때 얻은 것이 정말 많았어요. 일단 환자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고, 참여했던 자원봉사자 중 일부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봉사 활동을 하는 찐 봉사자로 성장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깨동무의 대표 프로그램인 사진 멘토링의 시작이 되었던 꿈나무 마을도 그때 알게 되었지요.
꿈나무 마을은 어떤 곳인가요?
당시 700~800명의 아동이 보호받고 있던 시설인데, 도티기념병원이 그 안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곳 아이들을 만나게 됐죠. 저희 회원들이 엄마들이었고 또 교사도 있어서 공예 교실, 성교육 등 아이들을 위한 봉사 프로그램을 그 곳에서 진행했어요. 하지만 일반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아이들과 보다 체계적이고 깊은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서 우리만의 확실한 매개체가 필요했죠.
그것이 바로 카메라였군요.
그곳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어도 휴대폰이 없었어요. 그래서 휴대폰 카메라에 호기심이 많더라고요. 때마침 당시에 제가 인도 여행을 떠났는데, 한 미국 사진작가가 사창가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는 모습을 봤어요. 아이들 눈빛이 얼마나 반짝이던지,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게 해보면 어떨까 싶었지요.
패션 사진가인 김보성 작가가 재능 기부로 선뜻 힘을 보태주었고, 라이나전성기재단을 비롯한 여러 단체가 저희 뜻에 공감하고 지원해 주어 사진 촬영 교육은 물론 해마다 전시회를 여는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전시회를 통해 서울 시내에 700명의 아이가 지내는 보육 시설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된 분들도 많아졌고요.
사진 촬영을 배운 아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에서 나아가 여러모로 제한된 환경 속에서 살던 아이들에게 세상 곳곳에 있는 많은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지요.
자신이 찍은 사진을 가지고 글을 써보고, 자신의 이야기와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고요. 이런 과정을 통해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자존감 회복입니다. 상처를 지닌 아이들의 자존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습니다.
일주일간 열린 전시회에서 처음 본 사람들에게 자기 작품을 설명하고 칭찬을 듣는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엄청난 용기를 얻었다고 해요. 그 과정에서 한 친구는 사진을 계속 공부해 대학에 진학했고, 그 아이가 또 다른 아이들의 롤모델이 되어서 해마다 2~3명의 아이가 사진, 영상, 패션 등을 전공해서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21년 11월 명동성당 갤러리에서 열 번째 전시회를 열었는데, 수익금은 캄보디아 하비에르 학교의 건축 기금 일부로 후원했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어깨동무에서 사진을 배운 아이들 중 2명이 4월 말에 캄보디아로 떠나 그곳 아이들에게 사진 촬영을 가르쳐주는 멘토로 활동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시작한 일인데 상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넓게 확장되고, 또 이어지고 있어서 저희도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런 부분이 어깨동무의 가장 큰 자부심이겠네요.
그럼요. 회의 때도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저희가 한 일이라곤 아이들이 가진 상처에 같이 마음 아파하며 울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같이 웃은 것뿐인데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아이들과 함께 저희도 성장했어요.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때때로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며 의기소침해지기도 하 잖아요. 그럴 때 마다 저희와 함께한 아이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용기가 생기고 힘이 솟습니다. 나누면 얻는 것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더 애정을 갖고 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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