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석을 따라 거닐며 역사를 배우고 사랑하는 사람들

기사 요약글

분무기와 칫솔, 걸레, 물티슈 등 청소 도구를 든 중년 8명이 종로 정독도서관에서 ‘김옥균 생가’라고 쓰인 표석을 열심히 닦고 있다. 언뜻 환경 정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인가 싶은데, 그들의 다음 발걸음 역시 인근의 또 다른 표석 앞. 깨끗하게 닦고 문지르며 이곳의 흥미로운 역사 기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매일 오가는 이 길이 100년 전, 500년 전에는 어떤 곳이었고 누가 걸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아서 오늘도 책 속을, 길 위를 함께 거닐며 기록하는 사람들. 치열한 학구파 같고, 사색하는 시간 여행자 같은 어른들의 모임이다.

기사 내용

 

 

 

모임 이름만 듣고 도서관이나 학교 세미나실 같은 곳에서 뵙게 될 줄 알았는데, 거리에서 청소 도구를 들고 계시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물론 그런 곳에서도 모이지만, 저희의 주요 활동 중 하나가 거리에 있는 표석을 답사해서 오기나 오류는 없는지 모니터링하고 환경정화를 하는 거예요. 표석이 세워져 있다는 것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역사적으로 기려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표석을 보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정독도서관에만 해도 ‘김옥균 집터’ ‘성삼문 선생 살던 곳’ ‘중등교육발상지’ ‘동아일보 창간 사옥 터’ ‘화기도감 터’ ‘장원서 터’ 등 6개의 표석이 있어요. 한 공간에 여섯 가지의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지만, 그저 옛 경기 중·고등학교 터 정도로만 아는 사람이 많지요. 그래서 더 잘 보이도록, 방치되지 않고 더 귀하게 보존되도록 저희가 표석을 공부해 널리 알리고 환경 정화 활동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역사와 문화에 진심인 분들이네요.

 

 

‘전국역사지도사모임’은 2015년에 서울의 5대 궁궐과 성곽길, 서울미래유산, 지역 골목길 등 역사 문화적 공간에서 해설사로 활동하는 60여 명이 모여 만든 커뮤니티예요. 지금은 전국으로 확대되어 1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령층은 40~60대, 그 중에서도 50대가 주축이지요. 규모가 점점 커지다 보니 좀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운영할 필요성을 느껴 올해 하반기에는 비영리 민간 단체로 만들려고 준비 중입니다.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보니 아무나 회원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회원 자격 제한을 두지 않아요.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회원 대부분 해설사이긴 하지만, 직업인으로서가 아닌 그저 관심 분야가 비슷한 사람들이 같이 공부하면서 내면을 채우고, 또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함께 한다는 보람으로 모임에 참여하고 계시거든요.

 

 

다양한 역사적 기록 중에서 표석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활동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10여 년 전 서촌을 거닐 때였어요. 좁은 보도에서 ‘세종대왕 나신 곳’이란 표석을 발견했는데, 제 눈을 의심했죠.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세종대왕인데, 길가에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표석 하나 덩그러니 있는 모습을 보고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날을 계기로 표석에 관심을 갖고 답사를 다녔어요.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원은 프랑스의 역사가 담긴 묘지예요. 우리의 왕릉도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문화유산과 시민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행히 잘 보존되고 있거나 작은 흔적이라도 있는 곳들은 미래유산 같은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아예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곳들은 표석이 전부거든요. 후손에게 오래 기억되어야 할 역사적 사실을 묵묵히 기억하고 있는 표석이 단순히 길에 놓인 돌 하나로 보여지지 않는 이유지요. 그렇게 표석을 따라 걷는 역사적 여정을 기록해서 작년까지 네 권의 표석 시리즈 책을 냈고, 도보 프로그램도 40여 개 정도 만들어서 여러 지자체와 함께 진행했습니다.

 

 

 

이제 표석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나가면서 꼭 눈여겨보라고 얘기해 주고 싶은 표석을 꼽는다면요?

 

 

정독도서관에서 안국동까지 북촌을 거닐다 보면 10여 개의 표석을 찾을 수 있어요. 조선어학회, 제중원, 장원서 등 역사책이나 사극에서 한 번쯤 들어본 낯익은 이름의 표석이지요. 그중 장원서는 성종 때 흥미로운 기록이 있어요. 한겨울 장원서에서 성종에게 영산홍을 바쳐요. 그때 성종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고 핀 꽃은 원하지 않으니 앞으로 올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15세기인데 겨울에 어떻게 꽃이 피었을까요? 온실이 있었다는 거지요. 유리온실이 아니라 구들과 기름 먹인 한지를 이용해서 온도, 습도, 채광까지 조절했다고 합니다. 3주 정도면 씨앗에서 싹이 텄다고 해요. 유리온실을 최초로 만든 독일보다 무려 170년 정도 빠릅니다. 서대문 농업박물관에 가면 모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북촌에서 내려와 인사동에 가면 지금의 태화빌딩 자리에 ‘삼일독립선언유적지’라는 표석이 있습니다. 민족 지도자 33인이 독립선언문을 읽었던 곳으로, 3·1운동이 시작된 곳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당시 이곳의 땅 주인은 이완용이었고, 을사늑약을 체결할 때 을사오적과 이토 히로부미가 드나들던 곳입니다. 애국도, 매국도 모두 기억하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앞으로도 표석을 따라 걷는 여정은 계속되겠지요.

 

 

최근 우리 모임에서 표석과 함께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노거수’입니다. 오래되고 큰 나무라는 뜻이지요. 표석이 있는 곳엔 대부분 이런 노거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 창경궁 선인문 앞에 회화나무가 있는데, 선인문은 중종 때 연산군이 쫓겨나갔고, 숙종 때 사약을 받은 장희빈의 시신이 실려나간 문이죠. 그리고 영조 때는 사도세자가 갇힌 뒤주가 놓여 있던 곳이기도 하고요. 선인문 앞의 회화나무는 이 모든 역사적 사실을 지켜보고 현재까지 살아 있는 유일한 생명일 거예요.

 

앞으로 이러한 노거수를 통해 우리 역사를 공부하고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활동을 해보려고 합니다. 역사도 공부도 끝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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