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산다는 건 자신에게 집중하며 나만의 속도를 찾는 것

기사 요약글

열아홉 살 말단 공무원에서 산림청 최고 자리인 산림청장까지 40여 년간 공무원 으로 살아온 조연환 전 산림청장은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기사 내용

7급으로 승진했을 무렵엔 주경야독해 임업직 기술 고시에 합격했고, 25대 산림청 장에 오르기까지 서울과 대전을 오가느라 대도시에서의 삶은 늘 빠듯하고 바쁘게 흘러갔다. 그래서일까? 퇴임을 앞두고 인생 2 막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굳이 도시에 남아 바쁜 생활을 이어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텃밭을 일 구던 충남 금산 땅에 소박한 집을 지어 살기로 마음먹고 퇴임한 다음 날 전입신고 까지 마쳤다.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아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삶의 터전을 옮 긴 그에게 자연 속에서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퇴직을 앞두고 자연에서의 삶을 꿈꾸지만, 익숙함을 뒤로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 쉽지 않은 나이입니다.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의외로 쉬웠어요. 청 단위 중앙행정부처의 대전 이전 방침에 따라 1998년 산림청과 함께 저희 부부도 대전으로 이사하게 되었죠. 서울에서도 아파트 베란다 가득 꽃을 심어 기를 정도로 꽃을 좋아하던 아내가 그때부터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힘든 줄 모르고 아주 즐겁게 농사에 재미를 붙여가는 게 보기 좋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하루는 아내에게 “가난한 공무원에게 시집와서 평생 고생 많이 했는데, 당신을 위해서 텃밭 하나 마련해 줄까?” 물었더니 너무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말마다 틈나는 대로 공주로, 옥천으로, 보은으로 드라이브 삼아 땅을 보러 다녔죠.

 

지금 생각하면 그때 마치 연애 시절 데이트하는 기분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 우연히 지인 소개로 충남 금산에 좋은 땅을 만나서 텃밭을 꾸리게 된 거죠. 그때부터 매일 아침 저는 대전 청사로, 아내는 금산 텃밭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5년 가까이 이어왔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퇴직 후 산 좋고 물 맑은 자연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어진 것 같아요.

 

일심동체였는지, 퇴임을 1년여 앞두고 아내에게 슬쩍 “여보, 우리 퇴직하고 금산 땅에 아예 집을 짓고 살까?” 물으니 땅을 마련해 줄 때 보다 더 기뻐하더라고요.  그래서 집을 짓기 시작했고, 퇴임식을 한 다음 날 금산으로 전입신고까지 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어요.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 정착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금산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고향으로 가면 아무래도 익숙하니 시작이 수월할 순 있어요. 하지만 연고가 없는 곳에서 하나씩 체득하며 적응해 나가는 과정도 나름대로 보람이 있죠.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고 하잖아요. 살아보니 굳이 꺼릴 이유를 못 찾겠더라고요. 저희 부부가 금산으로 온 이유는 딱 하나예요. 이 땅 때문이었지요.

 

처음 보는 순간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이게 바로 우리 땅이구나’ 첫눈에 반해 버렸거든요. 사실 당시에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터라 아까시나무와 칡덩굴이 사방으로 뒤엉켜 우거져 있었고, 심지어 뱀이 벗어놓은 허물도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정남향의 양지 바른 땅 앞으로 봉황천의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풍요로운 들판과 마치 봉황새가 날아오르는 것 같은 형세의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어요.

 

그뿐 아니라 땅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마치 땅을 보듬듯 감싸 안고 있어 포근한 느낌이었죠. 바로 계약했어요. 이건 여담인데, 땅을 마련할 때만해도 제가 진급이 여의치 않아 고심이 깊었거든요. 그런데 그 뒤 불과 5년 사이에 국장에서 차장, 차장에서 청장까지 일이 술술 풀렸어요. 좋은 땅의 기운을 받은 덕분인 것 같다고 생각했지요.

 

 

 

 

땅을 마련하고, 터를 닦고, 집을 짓기까지 6년간 땅에 정을 붙이고 준비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땅을 계약하고 가장 먼저 업자를 불러 장마에 무너진 둑을 새로 쌓고, 길을 내고, 땅을 고르는 작업에 돌입했어요. 전지 작업이 마무리될 무렵 작은 관정(지하수를 이용하기 위한 우물)을 내고 농업용 전기까지 설치하니 제법 텃밭의 모습을 갖춰가더라고요. 아내는 매일 와서 돌을 골라내고 씨앗을 뿌리고 꽃을 심으며 정성을 다해 그동안 쌓은 실력을 발휘해 나갔죠. 그렇게 1년을 지내보니까 비가 오면 비를 피하고, 무더운 여름에 쉴 만한 그늘이 있어야 되겠더라고요.

 

낙엽송으로 정자를 짓고 ‘녹우정’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정자를 완성하고 나니 그 다음에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이 갖고 싶더군요. 이동식 주택을 알아봤는데, 예상보다 값이 꽤 나가 망설이던 차에 우연히 컨테이너 하우스를 알게 돼 그다음 해에 약 20m²(6평)짜리 컨테이너 하우스를 장만했어요.

 

컨테이너 하우스에 입주한 첫날, 마침 보름달이 떠서 창문 너머에서 환히 비추더라고요. 세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별장을 가진 것같이 행복했습니다. 저 역시 주말 뿐 아니라 평일에도 퇴근 후 모닥불을 피워놓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별을 세어가면서 밤을 보내고 새들의 지저귐에 깨어 출근하곤 했어요. 그때부터 아내는 그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지내고 싶어 했죠. 그렇게 자연에 사는 맛을 알고 나니 굳이 퇴직 후 아파트에 살 이유가 없겠더라고요.

 

제가 노후에 삶의 터전을 바꾸려는 분들에게 꼭 당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예요. 가급적 은퇴 전에 계획을 세우고 충분히 연습을 하며 적응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거죠.

 

 

자연의 삶으로 정착하고나서 무엇이 가장 많이 바뀌었나요?

 

자연에서 산다는 건, 우선은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식으로 자연의 시간에 맞춰서 살아가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자연에서는 내 몸을 움직여 일을 하면 꼭 그 성과가 나타납니다. 잡초를 뽑아주면 꽃들이 행복해서 웃고, 상추 씨앗을 뿌리면 일주일 뒤에 여린 싹들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이 너무 신기합니다. 이렇게 땅을 고르고 씨앗을 뿌리고 꽃을 가꿔가는 것 자체가 주는 행복이 너무 크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몸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식탁 위에 올라오는 음식이 농사지은 것이나 자연에서 얻은 것이 대부분이에요. 팥도, 감자도, 고구마도, 달걀도, 옥수수도요. 쌀은 이웃에서 농사 지은 것이고요. 도시에서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마트에 들르지 않아도 되고 장 보는 양도 확연히 줄었어요. 그렇게 식탁이 담백하고 건강해지니 자연스럽게 몸도 많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졌죠. 가끔 은퇴 전 사진과 비교해 보면 안색이 환해진 게 눈에 띄어요. 실제로 주변에서 얼굴이 편해지고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75세인데, 아직까지 그 흔한 혈압약이나 당뇨약도 안 먹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 역시 자연과 함께한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어느덧 16년, 이제는 익숙한 일상이 된 지금도 여전히 자연이 아름다운가요?

 

 

이제 곧 냉이를 캘 때거든요. 언 땅을 뚫고 올라온 냉이를 이른 아침에 캐서 된장 풀어 끓이면 그 향이 마트에서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냉이 지나고 나면 바로 화살나무에서 순이 올라오고 그다음엔 두릅, 그다음엔 다래순, 또 그다음에는 고사리까지, 이 모든 건 제가 농사지은 게 아니에요. 그냥 자연이 저에게 주는 거예요.

 

그리고 식물을 잘 모르니까 엉뚱한 거 뽑았다고 때때로 아내에게 혼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혼자서 불멍을 해요. 그러면 풀벌레 소리가 저를 위로하죠(웃음). 자연이 주는 이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진다고 해서 행복의 크기까지 줄어들까요? 그렇지 않더라고요. 자연은 늘 새롭고 경이롭습니다. 정말이지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똑같은 하루가 없습니다. 날마다 변화를 체감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매번 새롭거든요.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니 매일매일 설레죠.

 

 

자연에서는 몸을 움직이는 만큼 얻게 된다는데,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겨울에는 새벽 5시쯤 일어나요. 2층 서재에 올라가서 2시간 정도 책을 보고 글도 쓰면서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온전히 저만의 시간을 보내죠. 7시쯤 1층으로 내려오면 아내도 그즈음 일어나 함께 아침 식사를 차립니다. 저는 쌀과 콩을 씻어 밥을 안치는데, 고구마와 감자, 달걀을 씻어 밥솥에 함께 올려 찌곤 해요. 밥이 되어가는 사이 사과 하나를 깎고, 우유를 데워 먹죠. 제가 밥을 준비할 때 아내는 찌개나 국을 끓여요. 그렇게 상을 차려 8시부터 9시까지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커피까지 한 잔 마시죠.

 

아침을 먹은 다음에는 뭘 하겠어요? 새벽에 일어났으니 노곤하잖아요. 이때 30~40분 정도 한숨 자는 게 큰 낙이에요. 그리고 10시쯤 찬 공기가 데워지면 정원과 텃밭에 나가 거름도 주고 정리도 하죠. 이후 점심을 간단히 차려 먹은 다음에는 천변 길을 1시간 정도 산책하고, 4시 반쯤 저녁 준비를 해요. 이른 저녁을 먹는 이유는 제가 9시면 잠자리에 들기 때문이지요.

 

 

계절마다 일과가 좀 다른가요?

 

 

여름에는 좀 달라요. 더워지기 전에 일을 해야 하니 4시쯤 일어나 1시간 정도 서재에서 시간을 보내고 늦어도 5시에는 밭에 나가죠. 여름엔 새벽에 일을 하고 들어와 아침을 먹기 때문에 더 꿀맛입니다. 그리고 낮에는 볕이 뜨거우니 집에서 빈둥대고 쉬다가 해 질 무렵에 다시 나가 물을 주고 일을 하죠.

 

정성껏 땀 흘려 일하면서도 재촉하는 이가 없으니 그 시간 안에서 또 충분히 여유를 즐기며 살고 있어요. 하지만 비가 와서, 너무 더워서, 일하기 싫어서 등 이런저런 핑계를 찾아 할 일을 차일피일 미루며 게으름을 피우면 결국 자연은 보복을 하더라고요. 특히 여름에는 정말 하루 이틀만 밭에 안 나가도 잡초가 얼마나 자라 있는지, 아주 혹독하게 벌을 받습니다.

 

 

 

 

아내는 꽃 농사, 남편은 글 농사. 서로 추구하는 행복의 지점이 다른데,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내는 꽃을 가꾸고 식물을 키우는 행복이 큰 사람이에요. 오늘은 무슨 꽃이 피었고, 어떤 식물에 새싹이 움텄는지 제게 늘 이야기해줘요. 그런데 사실 저는 무슨 꽃이 피었는지, 꽃 이름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진짜 혼도 많이 났어요. 쑥부쟁이도 모르냐, 모란하고 목단도 구분 못 하느냐 이런저런 핀잔을 듣다 보니 예전에는 분명히 성실하고 능력있는 남편이었던 것 같은데, 한순간에 무능한 남편이 되어버리더라고요.

 

아무래도 산림청장을 지냈으니 사람들은 으레 제가 나무도 꽃도 정말 잘 알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저하고 오래 사귄 사람들은 꽃과 식물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제가 아니라 아내에게 묻죠. 실제로 퇴임하고 천리포수목원장을 지낼 때 아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꽃을 원 없이 보니 정말 행복해하더라고요. 그때 아내의 권유로 숲해설가 교육을 함께 받고 일주일에 한 번씩 ‘조연환·정정순과 함께하는 천리포 수목원 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아내가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에 얼마나 정성을 쏟는지 옆에서 보며 알게 되니 그 소중함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었어요. 식물을 좋아하는 아내를 두어서 때로는 힘들지만, 그래서 행복하죠. 저는 아내와 달리 자연에서 글 소재를 찾고 고민을 합니다. 정말 자연 속에는 너무나 많은 글감이 있어요. 시를 쓰거나 글을 써서 SNS에 올리고 사람들과 공유하고 소통하고, 그걸 한 권으로 엮어 시집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과분하게도 녹색문학상까지 받았죠. 처음엔 아내가 휴대전화만 들여다본다고 타박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내가 먼저 제 글을 읽어주고 글감도 함께 찾아주곤 해요.

 

 

처음 이곳에 오자마자 시골 집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고요.

 

 

컨테이너 하우스를 들인 다음부터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지인들을 초대해 텃밭에서 기른 상추와 씀바귀를 뜯어 삼겹살 잔치를 열었어요. 모닥불을 피워놓고 이야기도 많이 나눴죠. 

 

그렇게 제가 국장, 차장, 청장을 지내는 동안 일주일에 한두 팀씩 금산에 다녀갔던 것 같아요. 도시의 아파트 같았으면 어떻게 그 많은 손님을 치를 수 있겠어요. 그들도 바쁘게 살다가 경치 좋고 공기 좋은 이곳에서 여유롭게 즐기다 가는 시간을 참 좋아했어요.

 

그리고 은퇴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자연에 사니 친구들이 절로 발걸음을 하고 찾아오더라고요. 너무 고맙고 반갑죠. 그럴 때면 밭에서 딴 오이를 송송송 채썰어 넣고 소박하게 국수 한 그릇 말아 대접하더라도 제가 손수 땀 흘려 농사지은 작물들을 사람들과 나누니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이웃과 나누는 재미 역시 제가 자연에 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이겠죠.

 

 

시골살이의 행복을 좌우하는 건 좋은 풍광보다 이웃이라는데,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문을 닫으면 딱 우리만의 공간이잖아요. 옆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몰라도 생활하는 데 크게 지장이 없지만 자연에서는 달라요. 스스로 먼저 좋은 이웃이 되면 이웃도 나에게 좋은 이웃이 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저희가 처음 이 땅을 매입했을 때, 여기에 진입로가 없었어요. 위쪽으로 오가는 분들은 차나 경운기를 세워두고 논두렁으로 걸어가는 수 밖에 없었죠. 길을 좀 내어달라는 요청에 기꺼이 길을 내드렸죠. 앓던 이가 빠졌으니 정말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내가 먼저 가까이 가려고 해도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부분이 있구나 느꼈죠. 공통의 관심사가 없다 보니 대화를 나누기도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꾸준히 두드렸죠. 일손이 바쁠 땐 이웃 밭에 가서 일을 거들고, 저녁에는 반찬 두어 가지 챙겨 막걸리 한잔하자고 찾아가곤 했어요.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나니 이제는 도리어 그들이 저희 부부에게 더 많이 베풀어줍니다. 가을에 햅쌀 도정했다고 쌀 한 자루를 가져다주고, 두부를 만드는 날엔 따끈따끈한 두부도 한 접시 내어주고요. 도시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오고 가는 돈독한 정이 생겼죠.

 

 

 

 

2047년 소멸될 지자체에 지금 살고 있는 충남 금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지속 가능한 시골살이를 위해 따로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얼마 전 금산이 고향이거나 금산으로 귀촌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금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을 조금 더 아름답고 밝고 행복한 마을로 만들어보자는 뜻으로 뭉쳤죠. 제가 이사장을 맡았고, 100여 명의 회원이 매달 한 번씩 둘레길을 걷고 금산의 인문·역사·문화를 배워가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저 역시 몰랐던 금산의 구석구석을 살피게 되고 이곳의 자랑과 전통을 알게 되면서 그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좀 더 보탤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게 되더라고요.

 

 

지역사회 활동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 바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이에요. 제가 산림청장을 지낼 때 대통령께서 저희 부부를 청와대 관저로 초청해 주신 적이 있어요. 그때 내외분과 북악산을 등반했는데, 올라가는 3시간 동안 대통령을 그만두면 시골에 내려가 살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어릴 때 뛰어놀던 그 시냇물을 깨끗하게 복원해서 어린아이들이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그런 시골을 만들고 싶다고요.

 

실제로 대통령께서 퇴임 후 고향 마을로 내려가셨잖아요. 저는 마을 주민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아주 편안하게 지내시는 줄로만 짐작했죠. 그런데 돌아가신 뒤 <바보 농부 바보 노무현>을 읽어보니, 고향 마을 앞 냇물을 정화하기 위해 낚시꾼들과 싸우고 농민들에게 농약 치지 말라고 일일이 설득하러 다니는 과정 하나하나 마음고생이 너무 심하셨더라고요. 결국 2~3년 동안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서 오리 농법으로 쌀을 생산하는 데 성공하셨지요.

 

대통령까지 하신 분도 시골을 살리기 위해 이렇게 고생하셨는데, 저는 산림청장 하고 와서 주민들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받기만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무엇인가 이 마을과 지역사회에 작은 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모임을 만들고, 산림 아카데미도 만들어 귀촌 과정을 안내해 주고 요긴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 조연환 전 산림청장 영상 인터뷰 #1 보러가기

 

 

 

 

누구나 한 번쯤은 자연인을 꿈꾸지만, 과연 누구나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자연에서 누리는 행복이 너무 커요. 하지만 모두에게 다 좋은 건 아닐 겁니다. 분명 어려움도 있어요. 예를 들어 파리, 모기는 물론이고 도시에서 본 적 없는 곤충과 벌레들이 사시사철 함께하고 뱀도 있지요. 매일 보는 건 아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뱀을 안 보면 참 좋겠다 기도할 정도거든요. 그리고 하루는 고라니가 일궈놓은 텃밭을 망쳐놓은 적도 있었죠. 그러니 벌레나 곤충, 야생동물에 공포심을 가진 분이나 알레르기 질환이 있는 분은 일상생활 자체가 너무 힘든 거죠.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불편한 분도 있어요. 이런 분들은 적응하기 어려울 겁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게 있어요. 나뿐 아니라 함께 지내는 가족들의 자발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배우자가 끝끝내 반대하는데도 우격다짐해서 내려왔다가 결국 실패하는 경우를 종종 봤어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도 사랑하는 님이 없으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마지막으로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아무런 준비 없이 와선 적응하기 힘들 수밖에 없어요. 자연의 이치를 배워야 하고 준비해야 하거든요. 텃밭을 가꾸지 않더라도 내 집 앞에 우거지는 넝쿨 정도는 낫으로 쳐낼 줄 알아야 시골생활이 가능하겠지요.

 

 

요즘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방식이 점차 다양해지고 확장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연에서 사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그 소득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고, 생활 터전만 자연에 두고 자연을 즐기고 누리며 사는 방식이 있죠. 사실 자연에 살면 도시만큼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아요. 그래서 소득이 적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죠.

 

그래서 요즘에는 자연에서도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교직을 끝내고 오신 분들이 전공을 살려 화실을 꾸리기도 하고, 마음껏 색소폰을 연주하며 동호회를 이끄는 분도 있죠. 그리고 카페를 운영하시는 분도 많아요. 그런데 그 기능이 도시와는 조금 달라요. 사랑방 역할을 하죠. 또 좋아하는 책들을 모아두었다가 작은 책방을 열기도 하고요. 아마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의 모습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다양해질 거예요.

 

 

 

도시를 떠나 자연의 속도로 천천히 살아도 괜찮을까요?

 

 

치열한 경쟁을 하며 도시에 살다가 그걸 다 내려놓고 자연에 살다 보면 도시에서와는 결이 다른 또 다른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게 돼요. 시골에서는 돈에 치이고 시간에 쫓겨 하지 못했던 취미나 진짜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보는 환경을 충분히 만들 수 있어요. 그게 자연에서 누리는 행복이죠.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춰 전전긍긍하며 살 필요 없이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며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면 되는 거죠.

 

 

자연인을 꿈꾸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고 망설이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자연에 살겠다 마음먹었다면 어디가 좋을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살고 싶은 지역을 정했다면 바로 땅을 구입해도 되지만, 지역을 알아가는 연습을 하고 싶다면 마을 이장이나 면사무소, 마을 주민을 찾아가 1~2년 정도 텃밭을 일궈볼 만한 땅이 있는지 문의해 보세요. 아마 충분히 빌릴 수 있을 거예요. 한 달살이로 시작해도 좋고, 1~2년 정도 지낼 만한 집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죠.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갖춰놓고 시작할 필요는 없으니 하나씩 일궈보세요. 도시보다는 훨씬 관대하고 정직한 자연의 시간에 속도와 방향을 맡기고 서두르지 않고 성실하게 말이죠.

 

 

 

[이런 기사 어때요?]

 

>> [전성기TV] 연고 없이 귀농하는 사람은 여기를 꼭 가보세요

 

>> [추천정보] 귀농귀촌 정보 한눈에!

 

>> 라디오 작가에서 정원 디자이너로, 시골의 발견

 

 

댓글
댓글